심리학 렌즈 (15)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글에는 넷플릭스 지옥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드라마 지옥을 통해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드라마 지옥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그 안에서의 사람들의 반응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궁극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새진리회’라는 종교 단체이다.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해결의 궁극적인 지점에는 종교가 있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인간의 역사이기도 했다. 드라마 지옥에서도 관련한 이야기가 나온다. 정진수(유아인 분)와 민혜진(김현주 분)의 대화를 들어보자.

 

정진수: 형사님, 예전 고대 사람들은 일식이 신의 분노 때문이라고 생각했데요. 그래서 하늘에 있는 큰 개가 해를 베어 물었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큰 개를 잡겠다고 사냥꾼들을 출동시키고 그랬다네요.

민혜진: 사냥꾼이 더 낫지 않아요? 일식을 신의 분노라고 생사람이나 잡는 제사장보다는요.

정진수: 제사장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준 거 아닐까요? 원래 인간들은 의미가 없으면 자멸해버리는 족속들이잖아요.⌟

 

분명 고대 사람들에게는 일식이라는 현상은 초자연적인 현상이었을 테다. 이해를 할래야 할 수가 없었을 테니까. 인간은 지도가 없는 것보다 틀린 지도라도 있는 것을 편안해한다. 그리고 이럴 때 쉽게 쓸 수 있는 치트 키가 있으니, 그것은 신이라는 존재이다. ‘신의 의도이다’라고 설명을 해버리면 한 큐에 모든 것이 해석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반문을 가지면 믿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원천봉쇄를 해버리면 되니, 세상에 이렇게 편한 치트 키가 없다.

게다가 사람들은 미지의 세계를 빈 공간으로 두는 것을 견디지 못해 한다. 정진수의 대사에도 그 지점이 잘 드러나 있다. 인간들은 의미가 없으면 자멸해버리는 족속들이니, 제사장이 사람들에게 의미를 준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렇게 종교가 융성했다. 과학이 발전하지 못한 우리 선조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미지 투성이에 불안하고 공포스러웠을까를 상상해본다면 충분히 납득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어떤 시대, 어떤 문화를 불문하고 종교가 존재하고 있는 것일 테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문제는 과학이 발전하면서 ‘신의 의도’로 설명했던 부분이 실제와 충돌한다는 지점에 있을 것이다. 지도가 없는 것보다 틀린 지도라도 있는 것이 나은 것은 틀림이 없지만, 옳은 지도가 나타났을 때 옳은 지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빈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대표적인 사건은 과학의 힘으로 지동설이 대두되었을 때, 기존 지도였던 천동설과 충돌이 되었던 사건일 테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하나님은 지구를 굳은 반석 위에 세우시고 영원히 움직이지 않도록 하셨다’라고 한 성경 말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지동설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을 종교재판으로 처벌을 하였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서 뒤돌아서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렇기에 지동설이라는 옳은 지도가 나타났지만, 천동설이라는 틀린 지도의 존재 때문에 많은 시간과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의학의 발전을 가로막았던 가장 큰 이유가 종교였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세 시대에는 하나님이 창조한 신성한 인간을 과학이라는 잣대로 연구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대 사회에는 과학에 의해 발견된 옳은 지도로의 치환이 많이 일어났다. 하지만 마지막 보루처럼 남아 있는 분야가 인간의 죽음에 대한 부분인 것 같다. 새진리회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세를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죽음과 내세에 대해 해석하고 설명하지 않은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힘이 ‘인간이 가진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지점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화살촉 캐릭터를 보면 이 지점에 대해 잘 들여다볼 수 있다. 화살촉은 새진리회를 가장 급진적으로 따르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죽음에 대한 고지를 받게 된다. 누구보다 믿음이 신실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고지를 받게 되자, 혼란스러운 마음에 은둔해서 살아간다. 그렇게 힘없이 살아가던 화살촉의 눈에 생기가 돌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새진리회로부터 ‘당신의 죽음은 신의 의도를 전하기 위함이고, 그러므로 당신은 메시아’라는 해석을 듣게 된 것이다. 화살촉이 배영재(박정민 분)를 죽이려고 할 때 내뱉었던 대사가 이를 잘 드러내 준다.

 

“정신? 나는 살면서 이렇게 정신이 맑은 적이 없는데. 내가 왜 태어났는지 왜 죽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어. 이거를 알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어. 나는 지금 신과 가장 가까운 인간이야.”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상에 가짜 지도라도 채워 넣었을 때의 강력한 힘이 느껴지지 않은가? 그렇게 힘없이 은둔형 외톨이처럼 살아가던 사람에게 눈에 총기를 불어넣어 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것이 가짜 지도라는 걸. 죽음에는 아무 의미도 없고, 그 누구의 의도도 들어가 있지 않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아무 의미 없는 빈 공간에 의도를 부여했다면 ‘그 의도는 누구를 위한 의도인가?’라는 점이다. 결국은 신의 의도를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의 의도가 ‘신의 의도’라는 포장지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의 심리 분석’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심리적 갈등을 투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종교인에 의해 벌어지는 많은 범죄들을 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의 뜻’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입막음을 하는 모습들이 번번이 포착된다.

사진_넷플릭스 '지옥'
사진_넷플릭스 '지옥'

 

연상호 감독이 지옥이라는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진짜 의중을 필자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작품 마지막에 나오는 택시기사의 말이 연상호 감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니었나 추측해본다.

 

“저는 신이 어떤 놈인지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어요. 제가 확실히 아는 건 여기는 인간들의 세상이라는 겁니다. 인간들의 세상은 인간들이 알아서 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변호사님?”

 

그렇다. 여기는 인간의 세상이다. 그런데 존재를 증명하기도 힘든 신이라는 존재를 끌고 들어와 인간의 주장과 비교를 하는 건 누구를 위한 것이 될까? 결국은 ‘신의 뜻’을 독점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새진리회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또한 도덕성을 잃은 일부 종교인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가 발전하면서 ‘신의 의도’는 점점 지워져 왔다. 일식 현상이 그랬고, 지동설이 그랬고, 진화론도 그랬다. 심지어 과학적으로 의문의 여지가 없는 진화론조차도 일부 종교인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간의 세상은 인간의 힘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지동설, 진화론도 시간이 지나 다른 근거가 쌓이면 기각될 수도 있다. 과학은 반대되는 증거가 쌓이면 언제든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기본이다. 과학은 인간의 세상을 인간의 언어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해석을 하고 틀리게 될 경우 언제든 새로운 지도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종교는 한 번 만들어놓은 지도를 웬만해서는 바꾸지 않는다. 신의 뜻을 인간이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말이다. 하지만 빈 공간을 빈 공간으로 둘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진정 건강한 능력이다.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영원불변의 종교에서 틀린 것을 틀린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과학으로 힘을 조금씩 내어주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사실 방송 녹화 때도 종교라는 주제에 대해 제작진이 많이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 종교를 조금씩 지워 가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과격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래 왔고, 이후의 역사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 종교는 왜 건드리면 안 되는 성역인지 모르겠다. 공고한 성역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성역 안에서의 기득권에게만 도움이 될 뿐. 이 글에도 많은 악플이 달릴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그래도 말하고 싶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본 글은 쿠키건강TV 마인드온 - 정신과의사 이일준의 심리학 렌즈 42회 ‘드라마 지옥으로 보는 심리’ 방송분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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