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본 내용은 실제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가공된 내용입니다. 내담자의 동의를 얻어 작성되었습니다.

 

내담자: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정 학생을 미워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 되뇌지만 그 학생이 너무 신경 쓰이고 거슬려서 자꾸 화가 납니다. 제 감정이 잘 컨트롤되지가 않습니다. 그 학생만 보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저도 모르게 체벌을 하게 되곤 합니다. 그러고 나면 제 마음도 편치가 않습니다. ‘내가 너무 심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죄책감도 생기더라고요. 이런 조절되지 않는 감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힘이 들어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상담자: 그 학생은 어떤 학생인가요?

내담자: 음... 뭐든지 자기 멋대로 하려는 아이입니다. 학생들에게 청소를 시키면, 막상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친구들에게 “여기 쓸어라, 저기 닦아라” 명령만 하고, 친구들이랑 놀 때도 항상 자기가 대장 하려고 하고 다 자기 멋대로 하려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눈꼴 시렵고, 보기가 거북합니다. 그러다 보면 잔소리를 하게 되고. 잔소리를 해도 잘 듣지도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체벌도 하게 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교사로서 그런 학생들을 지도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평등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그냥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로서 그런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담자: 필요한 일을 하는 건데, 왜 마음이 불편하신가요?

내담자: 그.. 그러게요. 저도 제 마음이 왜 불편하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드리는 것 같습니다.

상담자: 다른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내담자: 저랑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그 학생은 뭐든 제멋대로라고요. 다른 선생님들도 그 학생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으세요. 그렇죠. 뭐든 자기 멋대로 하려고 하고, 선생님 말도 잘 안 듣고 그러니까요. 그 아이는 미움받을 짓을 하기는 해요. 저만 미워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사진_픽사베이


상담자: 그러면 다른 선생님들도 그 학생 때문에 그렇게 많이 힘들어하세요?

내담자: 그렇지는 않아요. 다른 선생님들은 그냥 냅두래요. “이런 학생도 있고, 저런 학생도 있지”라고 하면서요. 그래도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선생님으로서 학생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지도를 해야지, 방관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그 학생도 나중에 올바르게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담자: 그러면 지난 10년 동안 선생님을 하시면서 그렇게 잘 해결이 되었나요?

내담자: (....) 딱히 그러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돌아보면, 그런 학생들이 1~2명씩은 꼭 있었어요. 요즘 어머니들이 너무 오냐오냐 키우니까 그런가 봐요. 그러게요. 그런 학생이 없었던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맞아요. 항상 새 학년이 들어와도 그런 학생이 1~2명씩 꼭 있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네요. 그러네요. 맞아요. 그 학생들은 제가 아무리 지도를 해도 바뀌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요즘 애들이 문제인 거 같아요. 요즘 애들은 예전 같지 않아서 다 제멋대로 하려고 하는 거 같아요. 얼마 전에 가족 모임이 있었는데 제 조카 녀석도 보니까 다 제멋대로 하려고 하더라고요. 언니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를 않아요. 그걸 보고 있는데 얼마나 짜증이 나고 화가 나던지. 언니는 그걸 보고 또 오냐오냐 하고 있어요. 요즘 부모들의 교육방식이 문제인 거 같아요.

상담자: 제멋대로 행동하는 조카를 보고서는 왜 화가 나셨죠?

내담자: 우리 학교 애들이랑 똑같아요. 다 자기 멋대로 하려고 하고. 저는 그런 걸 보고 있으면 너무 화가 나고 짜증이 나더라고요.

상담자: 조카가 하는 행동을 보고서는 왜 화가 나셨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학생들은 평등해야 돼’라는 교육관 때문인 거 같지는 않습니다. 

내담자: (멈칫) 조카가 커서도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 안 되니까...

상담자: 그러면 조카의 행동 수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내담자: (멈칫) 글쎄요.. 노력은........ 그냥 보고만 있었어요. 언니가 있는데, 제가 끼어들 수는 없잖아요.
 

상담자: 처음에 제 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을 봤을 때 화가 나는 이유는 학생들 사이에서 상하관계없이 모두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하셨었습니다. 그런데 조카에게 화가 나는 상황은 그것과는 별개의 상황으로 보입니다. 조카가 자신의 엄마에게 제멋대로 하려는 것은 평등의 문제는 아니니까요. 선생님은 커서 그렇게 행동할 수 있으니 걱정이 되어서 그랬다고 하셨지만, 그걸 위해 특별한 조치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정말 그런 아이들과 똑같이 자랄까 봐 걱정이 되셨다면 거기에 맞는 조치가 동반되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왜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면서 스스로 힘들게 하고 있었나요?

내담자: 그러네요. 왜 그랬을까요? 그냥 그래요. 그냥 그런 걸 보고 있으면 짜증 나고 화나고 그래요. 뭐가 그렇게 잘나서 아직 어린 학생들이 제멋대로 구는 건지 모르겠어요.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요. 저는 어렸을 때 한 번도 제 마음대로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저희 아버지는 엄청 권위적이셨어요.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는데... 제 맘대로 뭔가를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해봤어요.

그래서 저는 제 직업마저도 제 맘대로 정할 수 없었어요. 선생님이 된 것도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에요. 그쵸. 아버지가 원하셨던 거예요. 아버지께서 제가 선생님이 되기를 원하셨었어요. 저는 원래 음악을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사실 음악이 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여자는 선생님이 되는 게 좋다”라고 하면서 제가 선생님이 되기를 바라셨어요. 그 상황에서 제가 ‘저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그 한마디를 못했었어요.

바보 같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바보 같은데, 그 당시에는 그랬었어요. 어린 마음에 알고 있었던 거 같아요. 말을 꺼내봤자 전혀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냥 아버지 말을 따르는 게 마음이 편했어요. 괜히 아버지 뜻에 반해서 제 의견을 말할 수 없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해봤자 라는 게 학습이 되었던 거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답답하고 바보 같은데...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모르겠는데... (울면서) 너무 억울해요. 그렇게 살아왔던 제 자신이 너무 불쌍하고 억울해요. 왜 억울한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다 억울해요. 가슴이 너무 답답해요. 자기 멋대로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어렸을 때 제 자신이 너무 불쌍하고 가여워요. (가슴을 두드리며) 나는, 나는 한 번도 내 얘기도 못 해보고, 하라고 하는 대로만 살아왔는데. 한 번도 내 마음대로 해 본 적이 없는데. 쟤네들은 뭐가 그렇게 자기 멋대로인 거야. 난, 난 뭐가 되냐고.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던 난 뭐가 되냐고... 제가 너무 불쌍해요. 그렇게 살아온 제가 너무 불쌍해요.

 

상담이 끝나고 내담자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내담자: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제 안에 이런 생각과 감정이 자리 잡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더더군다나 학생들과 관련된 일에 아버지 문제가 관련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습니다. 사실 저는 아버지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버지랑 따로 살기도 하고 이제는 제게 강요하는 일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다 해결이 된 줄로만 알았습니다. 오래전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저에게 이렇게 큰 감정으로 남아있는 줄 몰랐습니다. 지금이라도 제가 제 편이 되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에 했던 ‘미안해’라는 말은 정말 진심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진짜 내 이야기’가 뭔지 알 거 같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부짖고 있는 제 마음을 제가 보살펴주고 보듬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많은 분들이 내 인생인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며 힘들어하십니다. 위 상담사례를 보고 나니 ‘왜’ 내 인생인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는지 짐작이 가시나요?

위 내담자 분은 ‘학생들은 평등해야 해’라는 생각으로 살아오셨습니다. 이런 가짜 이유로 계속 살게 되면 이 분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10년 동안 ‘짜증과 화’, 그리고 ‘죄책감’ 같은 힘든 감정이 반복되었는데, 갑자기 그런 아이들이 완전히 사라져서 그 감정에서 해방되는 그런 세상이 올까요? 아니면 평생 그런 힘든 감정을 지속하면서 살아가게 될까요?

‘나도 알지 못했던 진짜 내 이야기’를 마주하고 나니 변화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지금 현재는 아버지와 같이 살지도 않고, 아버지의 잔소리가 심하지도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아직도 과거의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내가 그 마음을 보듬어주고 현재에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서커스에서 아기 코끼리를 작은 나무 막대에 묶어놓으면 아기 코끼리가 도망가려고 애를 써보지만 실패를 하게 되고 무기력을 학습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 아기 코끼리가 커서 성인 코끼리가 되었는데도 작은 나무 막대에 묶어놓으면 이 코끼리는 도망을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미 성체가 되어 몇 번만 힘을 쓰면 그 나무 막대를 뽑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나는 현재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위 선생님 이야기도 코끼리 이야기와 똑같지 않나요? 아니, 우리 모두도 그러합니다. 아직 우리의 마음은 어렸을 때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것들이 그대로 머물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바라봐주고, 해결해 가는 것이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이고, 부모로부터 정서적 독립을 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현재에서 이유를 찾으면 가짜일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늘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죠. 진짜 이유를 찾아가다 보면 우리 인생이 좀 더 자유로워지고 좀 더 내 마음대로 될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진짜 내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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