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중 두 번째 이유가 ‘가짜 이유를 진짜 이유로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떠한 현상의 실제 이유를 알지 못하고, 가짜 이유를 진짜로 착각하게 되면, 당연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명제가 삶에 적용되는 방식만 이해하게 되면,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결정적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 내용을 통해 상기 명제가 우리 인생에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래 내용에는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굿 윌 헌팅’은 1997년에 개봉한 조금은 옛날 영화인데요. 하지만 요즘 말로 소위 ‘갓띵작’입니다. 꼭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맷 데이먼이 ‘윌’이라는 주인공으로 나오고, (故)로빈 윌리엄스가 정신과 의사(극중 이름: 숀)로 분해서 나오는 영화입니다. ‘윌’이라는 주인공은 부모님에게 버림받고, 양부 밑에서 성장을 합니다. 하지만 양부의 가정 폭력이 심해 어릴 때부터 맞으면서 성장합니다.

성인이 된 윌은 MIT에서 청소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윌은 머리가 명석하여 수학, 법학, 역사학 등을 꿰뚫고 있는 천재이지만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MIT 수학 교수가 세계에서 몇 명밖에 풀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를 학생들에게 풀어보라고 칠판에 적어놓습니다. 교수는 아무도 풀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어느 날 정답이 적혀 있는 칠판을 발견하게 되고, 누구인지 찾지만, 학생 중에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윌’이라는 청소부가 그 문제를 풀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윌’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려 합니다. 하지만 ‘윌’은 계속 엇나가는 태도를 보이게 되고, 정신과 의사인 로빈 윌리엄스(숀)에게 치료를 의뢰하면서 영화 내용이 전개됩니다.
 

<굿 윌 헌팅> _ 미라맥스


영화에 나오는 상담과정 중 한 장면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정신과 의사(숀)가 윌에게 청소부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이유를 묻습니다. 윌은 숀에게 쏘아붙입니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시냐고, 청소부 일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 모르냐고, 청소부가 없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냐고.”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숀은 윌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나도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도 벽돌공이셨다. 그런데 하나만 물어보자. 청소부 일을 하려면 가까운 곳 어디든 가능했을 텐데, 굳이 40분이라는 시간을 걸려서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라고 불리는 MIT까지 가서 청소부 일을 했니? 청소부 일이 고귀해서만은 아닌 거 같구나.”라고요. 이 말에 윌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 합니다.

윌이 청소부 일을 하고 있는 진짜 이유가 ‘청소부 일은 고귀해서’일까요? 만약 그 이유가 진짜 이유라면 숀의 의문처럼 굳이 먼 거리를 가서 MIT에서 청소부 일을 할 이유가 없겠지요. 사실 윌은 MIT를 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그런데 왜 MIT에 진학하지 않고, 그곳에서 청소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윌이 그런 선택을 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과거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제목의 8번째 연재에서 진화 심리학의 기본 원리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사실 원리는 간단합니다. 과거에 형성된 심리 기제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똑같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윌이 청소부 일을 선택하면서 사는 심리의 기저에도 똑같은 원리가 작동하겠지요. 과거의 윌에게 어떤 심리 기제가 형성되었기에 윌은 그러한 선택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2~3살의 윌로 돌아가봐야겠지요?

2~3살의 윌은 부모님에게 버림을 받고 양부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데요. 양부가 때릴 때마다 무엇으로 맞을지 선택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윌은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심정으로 렌치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여하튼 안 좋은 일들이 계속 생기고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이유’를 찾는 동물입니다. 아이도 예외는 아닙니다. 안 좋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으니, 3살짜리 윌도 그 이유를 찾으려 노력을 할 것입니다. 양부와 나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윌이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많지 않습니다. 하나는 ‘양부가 나쁜 사람이어서 이런 일이 일어나.’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내가 문제가 있어서 이런 일이 일어나.’입니다. 중요한 것은 ‘3살짜리 윌에게 전자의 결론이 편할까요? 후자의 결론이 편할까요?’입니다.

오프라인 강의에서 여쭤보면 의외로 꽤 많은 분들이 후자의 결론이 더 편할 거라고 대답하십니다. 네, 맞습니다. 3살짜리 윌에게는 ‘나에게 문제가 있어.’라는 후자의 결론이 훨씬 편합니다. 왜 그럴까요? ‘양부가 나쁜 사람이어서’라는 전자의 결론을 한 번 살펴볼까요? 이 결론 뒤에 따르는 합리적인 행동은 무엇일까요? 네, 맞습니다. 양부를 떠나는 것이지요. 나는 문제가 없고, 양부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떠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3살짜리 아이에게 이런 결론은 어떻게 다가올까요? 네, 죽음의 공포와 맞닿아 있는 불안을 야기합니다.

‘지금은 복지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서 3살짜리 아이가 가출을 하더라도 죽지는 않지 않나요?’라고 반문을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은 먼 과거에서 형성이 되었습니다. 수백만 년 전에도 가정 폭력은 있어왔습니다. 수백만 년 전에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3살짜리 아이가 ‘이건 아빠 때문이야, 그러므로 나는 아빠를 떠나야겠어.’라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개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네, 거의 100% 사망했습니다. 반대로 ‘이건 내 잘못이니까, 어떻게든 아빠 옆에 붙어있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행동했던 개체는 그나마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습니다. 결국 후자만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조상의 후손인 우리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는 훈육의 방법으로 아이를 집 밖에 쫓아내는 방법을 쓰곤 하였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이야 집에서 쫓아내면 땡큐죠. 아무런 타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3살짜리 아이는 다릅니다. 집에서 쫓아내진다는 것은 죽음의 공포와 맞닿아있는 경험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한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이것과 관련된 장면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를 구조하기 위한 내용이었는데요. TV 프로그램 담당자가 아이와 따로 만나 면담을 합니다. 그 자리에서 아이는 ‘아빠 싫어. 엄마 싫어. 아빠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맨날 때리기만 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프로그램에서는 아이와 부모를 격리시키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리고, 부모를 만나 설득 끝에 부모와 아이를 격리시키기로 하였습니다.

격리를 시키는 과정에서 아이의 반응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고 생각합니다. 면담 과정에서는 그렇게 부모가 싫다고,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표현했던 아이가 울고불고 난리가 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빠 어디 갔어? 아빠는 왜 안 타? 아빠한테 보내줘.’라고 합니다. 아이에게는 때리는 부모라도 있는 것이 부모가 아예 없는 것보다 훨씬 안정감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3살짜리 윌은 자신을 자책하면서 양부 옆에 붙어 있었던 겁니다. 그게 불안을 덜 야기하니까요. 3살짜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 형성되었던 ‘죄책감’이 성인이 되어서도 똑같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뱀을 무서워하는 심리기제는 과거에 연유하였지만, 뱀을 만나기 어려운 현재에도 ‘뱀공포 심리기제’가 여전히 작동하는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그래서 윌은 MIT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윌에게는 ‘나는 부족하고 잘못된 사람이야.’라는 심리가 내재되어 있는데, 우수한 학생들이 가득한 MIT에 진학을 하게 되면 ‘내가 부족하다’는 것이 들킬 가능성이 높아 불안한 것입니다. 나보다 확실히 못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나의 죄책감’이 들킬 염려가 거의 없습니다. 윌은 그렇게 나보다 확실히 못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살아갑니다.

 

사실 윌의 죄책감은 직업 선택에만 영향을 준 것도 아닙니다. 영화에 나오는 상담과정 중 일부인데요. 윌은 숀에게 여자 친구와 헤어질 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숀은 왜 헤어지려고 하느냐고 물어봅니다. 이때 윌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지금 여자 친구는 너무 완벽해요. 똑똑하고 예쁘고 대화도 잘 통하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겠어요? 결국 실망하지 않겠어요? 실망하기 전에 떠나는 게 맞아요.”라고요. 이 이유는 진짜일까요?

숀이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네가 별로인 걸 들키는 게 두려운 게 아니고?” 맞습니다. 윌은 자신이 별로인 걸 들키는 게 항상 두렵고 불안합니다. “난 별로인 사람이야. 난 잘못된 사람이야.”라는 엄청남 죄책감이 어린 시절부터 뿌리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 친구와 깊게 사귈 수가 없습니다. 깊어져서 그런 불안감이 드러나기 전에 헤어지는 것이 윌에게는 가장 안정적인 기분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렇게 윌은 결국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헤어집니다.

 

어렸을 때 형성된 ‘윌의 죄책감’이 현재 윌의 직업 선택과 이성 관계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의 백미이자 클라이맥스인 마지막 장면에서 알 수 있습니다. 숀은 윌이 어렸을 때 받았던 학대에 대해 자세히 듣습니다. 그리고 딱 한 마디만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It’s not your fault.”라고요. 윌은 알고 있다고 반응합니다. 하지만 숀은 동의하지 못한다는 듯이 윌에게 점점 다가가며 “It’s not your fault.”라고 이야기합니다. 윌은 감정이 차오릅니다. 괴롭다는 듯이 안다고 외칩니다. 숀은 꿋꿋이 더 다가가며 “It’s not your fault.”라고 이야기합니다. 윌은 크게 화를 냅니다. 알고 있으니까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나한테 더 이상 이렇게 하지 말라고요. 그래도 숀은 끝까지 윌에게 다가가 알려줍니다. “It’s not your fault.”라고요. 그렇게 꼿꼿하던 윌은 숀을 끌어안고 펑펑 울기 시작합니다. 숀은 다 잊어버리라며 윌을 꼭 안아줍니다. 이 장면이 끝나고 윌은 여자 친구를 찾아 떠납니다. 윌은 더 이상 죄책감 때문에 여자 친구를 멀리할 이유가 사라진 겁니다. 과거에 살고 있던 윌의 마음에서 벗어나 현재에 살 수 있게 숀이 도와주었던 겁니다.
 

영화 <굿 윌 헌팅> 中


윌이 이야기한 ‘청소부 일은 고귀하니까.’, ‘여자 친구에게 실망하기 전에 헤어지는 것이 맞아.’라는 것들은 다 결국 가짜 이유였습니다. 그것을 진짜라고 합리화하게 되면 윌은 평생 그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청소부 일은 고귀하니까 청소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MIT를 가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은 어찌하나요? 실망하기 전에 헤어지는 것이 맞으니까 여자 친구와 제대로 사랑하지도 못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여자 친구와 진실되게 사랑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은 어찌하나요?

‘here & now’에서 나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찾은 이유들은 가짜입니다. 그것을 인정해주지 못하면 내 인생은 살아가던 대로 살아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there & then’에서 형성된 진짜 내 마음을 알아주어야 그제야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될 수 있습니다. 과거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 감정, 행동의 기저에는 과거에 형성된 심리기제가 여전히 ‘나도 모르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작동하고 있는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해주어야 할 일입니다. 윌이 꼭 끌어안은 것은 숀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 죄책감에 휩싸여 살 수밖에 없었던 불쌍한 나를 안아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아니 느끼고 나니까 그 마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행위의 주체는 ‘과거’입니다.”라고 말씀드린 메시지가 조금은 더 다가와지시나요? ‘진짜 이유, 가짜 이유’라는 단어를 계속 강조했었는데요. 조금은 더 이해가 되시나요? ‘here & now’에서 찾은 이유들은 거의 가짜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우리는 ‘주체성의 고집, 아집’ 때문에 늘 그렇게 합리화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진짜 이유는 ‘there & then’에 있습니다. 이것을 찾아주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 내 인생인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윌처럼요.

MIT를 가고 싶으나, 청소부 일을 하고 있는 윌은 어땠겠습니까? 진실한 사랑을 하고 싶으나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있는 윌은 어땠겠습니까? 이건 영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 감정, 행동, 여러 선택들에 영향을 주고 있는 내 안의 마음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신가요? 그것도 알지 못하면서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요? 단언컨대 절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겁니다. 가짜 이유를 진짜 이유로 착각하지 말고, 내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진짜 이유들을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 연재에서도 말했듯이, 100명이 넘는 상담 이야기를 통해 그 여정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내 이야기일 테니까요.

 

※ 본 연재는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강의 내용을 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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