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정신과, 일곱 번째 이야기>

[정신의학신문 :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살인범의 심신 장애, 그들의 형 감량 요구

어금니 아빠로 불리는 30대 남성은 딸의 친구를 성폭행 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하였습니다. 피의자는 재판 과정에서 정신장애 3급, 지적장애 3급 등으로 인한 심신 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벌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어금니 아빠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인천에 거주하는 10대 김모 양은 초등학생을 계획적으로 유괴하고 잔혹하게 살해하였습니다. 그녀 또한 범행 당시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인한 심신 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김모 양은 대법원에서 20년형이 확정되었습니다.

최근 피의자 김모 씨는 강서구 소재 PC 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하였습니다. 가족이 범행 당시 우울증을 앓았다며 감형을 주장한 것에 대해 시민들이 크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현재, 엄정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 100만 명을 넘고 있습니다.

앞의 두 살인 사건 피의자에 대해 법원은 심신 미약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는 공주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을 받을 예정입니다.

 

남겨진 가족들의 겪을 심리적 고통

살인 피해자들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친구, 이웃, 직장동료들은 비견할 수 없는 비통함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슬픔을 느끼는 대상은 단연 가족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살해되었다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요?

아마도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존재의 부재에 대한 우울감일 것입니다. 항상 곁에 있었던 가족이 한순간에 없어진다면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잃고 허무함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범죄 피해자 가족들은 죄책감 또한 강하게 느낍니다. 범죄를 예측하거나 막지 못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심하게 질책하며 과도한 책임을 부과합니다. 이런 지나친 죄책감은 자살 사고, 더 나아가서는 자살시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와 함께 강렬한 분노감도 느낍니다. 부모, 배우자, 자녀가 갑자기 사망하였으나 살인범은 멀쩡하게 살아 있다면 강렬한 분노감을 가질 것입니다. 최근 살인 범죄에 대해 법원은 20년형, 무기 징역 등을 선고했습니다. 설령 사형이 선고된다 하더라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마지막 사형 집행 1997년 12월 30일) 무기 징역 또한 복역 중에 감량이 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다면 살인범은 다시 감옥에서 일상으로 돌아와 생활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살인 피해자 가족들은 조절하기 힘든 분노의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유가족들은 살인범에 대한 복수에 집착하기도 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유가족의 정신질환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유가족들은 조사과정에서 끔찍하게 살해된 유해를 보게 됩니다. 또한 고인의 마지막 장면을 사진, CCTV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합니다. 살인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면 TV, 신문, SNS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됩니다. 따라서 다수의 살인 피해자 가족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게 됩니다. 환자들은 살인사건의 장면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고 살인 사건 장소를 피하게 됩니다. 또한 신경이 예민해지고 집중을 하지 못하며 수면장애도 생깁니다.

- 주요우울장애: 가족을 허망하게 잃은 슬픔에 하루 종일 우울감에 빠집니다. 무기력함 때문에 외출을 하지 못하고 살인 피해자 가족이라는 시선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리게 됩니다. 사고 장면의 반복적인 재생, 무기력함, 집중력 저하 등으로 일에 집중하기 힘들고 따라서 생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지나친 죄책감과 책임감 때문에 자살 생각을 합니다. 안타깝게도 유가족들 중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경우가 다수 발생하고 있습니다.

- 알코올 사용 장애: 우울감, 분노감, 죄책감을 느끼는 살인 피해자 가족들은 감정을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알코올 중독에 빠집니다. 가족들은 살인 사건이 반복적으로 떠올라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술을 마셔 억지로 잠을 청합니다. 음주는 일시적으로 수면을 유도하지만 곧 내성이 생겨 더 많은 용량의 술을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알코올 사용 장애에 걸리게 됩니다. 연구에 의하면 남성은 여성에 비해 알코올 사용 장애에 더욱 취약한 경향을 보였습니다.

 

살인 피해자 가족을 위한 지원 실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면 평균 7~10명 정도의 가족들이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범죄피해자 보호법이 제정되어 유가족들은 심리 상담,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유가족에 대한 장기적 심리 상담 및 충분한 경제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실정입니다. 살인 사건으로 가족 구성원들은 건강 악화, 자살시도, 실직, 이혼 등으로 가족 해체의 위기를 겪습니다. 살인은 단순히 한 명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희생자 가족 삶까지 파괴하는 잔인한 행동입니다. 

 

우리 사회는 살인 피해자 가족에게 적절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나요? 우리는 살인자의 인권 보호에 앞서 이 질문에 대해 깊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모사랑 정신건강의학과
가톨릭중앙의료원 수련의, 전공의
(전) 포천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자문의
(전) 의정부 청소년 쉼터 상담의
대한정신건강재단 해피마인드 상담의, 대기업, 보건소 등에서 다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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