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나라 어디에선가, 살인사건은 늘 일어난다. 그 모든 살인사건이 화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살인사건은 늘 화제가 된다. 그리고 이런 사건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정신질환자로 인해 위협받는 국민 안전을 한탄하며 분노한다.

“도대체 흉악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의 형을 왜 줄여주는 거야?”

‘심신장애(심신상실과 심신미약)’라는 단어는 이제 모든 시민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심신장애에 대한 오해 때문에, 건전한 토론에 사용되어야 할 에너지가 분노로만 흐르는 듯해서 안타깝다. 그래서 ‘심신장애’의 의미와 적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 형법 제10조 제1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
- 형법 제10조 제2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1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형법 제10조는 심신 장애인에 대하여 형법적으로 어떻게 다룰지 규정하고 있다. 사물을 변별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책임능력이라고 한다. 즉, 형법 제10조는 ‘심신장애’로 인하여 책임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형사책임을 면제(제10조 제1항)하거나 감경(제10조 제2항)해주는 규정이다.

 

만약 건강한 70대 할아버지가 길을 가던 사람을 때렸고, 그 사람이 사망한다면 이 할아버지는 위 규정을 적용받을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온전한 자기 정신으로, 그 사람을 사람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선택으로 때린 것이기 때문에 심신장애를 적용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정신지체로 약 3살 어린이 정도의 지능을 가진, 20대 청년이 돌을 던져 지나가던 사람을 맞춰 다치게 했다면 어떨까? 이 20대 청년이 실제로 ‘심신장애’로 3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것이 인정되어 형법 제10조의 심신장애가 인정된다면 형사 처벌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신장애 적용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의견이 나눠지기 시작하는 것은 다음 단계부터다.
 

사진_픽사베이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70대 할아버지가 집에서 일하시는 요양 보호사를 때려 사망 사건이 일어났다면, 이 경우에는 심신장애 규정을 적용할 수 있을까?

치매는 기억을 잃어가는 병이다. 기억이 중간중간 사라지기 때문에, 사람은 종종 자신의 상상력으로 기억의 빈 공간을 채우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이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요양 보호사가 훔쳐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치매 환자에게는 이런 생각이 나름 합리적일 것이다. 여기에 있던 물건이 없어졌는데, 내가 잘 모르는 외부인이 집 안에 있으니 말이다. 이 외부인이 간병인인지 아닌지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하다면, 간병인이 아니라 도둑으로, 사기꾼으로 완전히 오해하기도 한다. 만약 이런 이유로, 치매의 병적인 증상으로 인해, 간병인이 아니라 도둑으로 인식하고 때렸다면, 심신장애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간병인을 도둑으로 인식하고 때리는 행위 전체를 10으로 볼 때, 그중 치매 증상이 2를 기여하고, 본인의 온전한 정신이 8을 기여했다고 법원이 판단한다면, 치매 증상으로 인한 2에 해당하는 형은 감해질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어떤가? 이런 경우의 심신장애 적용이 합당하다고 보는가.

 

이제 마지막 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70대 할아버지가, 길에서 지나가던 사람을 죽였다. 이 경우는 어떨까?

치매의 예에서 이미 눈치 채신 분이 있겠지만, 각각의 정신질환의 특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어야, 심신장애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조현병의 특성 중 일부를 설명하겠다.

조현병은 환청, 망상 등이 오랜 기간 존재하는 병이다. 

환청은, 주로 사람 목소리가 들리며, 욕설이나 비난, 환자의 행동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증상이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하루에 10회 이내로 짧게 들리기도 하지만,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끊임없이 들린다.

“그래 봤자 환청이지, 실제 소리랑 구별할 수 있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환청이 환청인 이유는, 환자는 그 소리가 실제로 들리지만,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가 실제로 환청을 들을 때, 소리를 인식하는 부분의 뇌가 활성화된다. 즉, 우리의 뇌가 환청과 실제 소리를 구별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게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이다. 

이 설명을, 현실에 적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치료받지 않는 조현병 환자가 길을 걷는다. 길을 걷다가 누군가 자신을 욕하는 남자 목소리를 듣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환청이 들렸구나 생각하고 다시 길을 걷는다. 그런데 또다시 욕설이 들린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쪽 골목에서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보면서 한 남학생이 나타난다. 혼란스러워진다. 환청인 것 같기는 한데, 저 남학생이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남학생을 빤히 보니, 남학생도 환자를 빤히 본다. 학생은 찌뿌둥한 표정을 지으며 환자를 스쳐 지나간다. 환자는 남학생의 뒤통수만 보인다. 그런데 다시 욕이 들린다. 환자는 이제 깨닫는다. 남학생이 자신에게 욕을 했구나. 남자 목소리가 들렸고, 학생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곱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입모양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몰래 욕을 하면서 나를 놀리고 있구나. 못된 놈.’ 환자는 학생을 따라가 때린다. 자신이 먼저 공격받았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이 자신을 비열한 방법으로 놀렸기 때문에 더 화가 난다.
 

사진_픽사베이


환청 때문에 학생을 공격자로 잘못 판단한 뒤 학생을 때렸다면, 이 경우도 심신장애 규정을 적용받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치매의 예에서 이미 설명한 대로 본인의 선택으로 범죄를 저지를 부분도 있지만, 조현병 증상으로 인한 영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위의 예들을 보면서, 당신이 어느 정도까지 심신장애 적용이 적절하다고 판단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경우에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억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소중한 사람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심신장애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은 중요하다.

심신장애를 판단하기 위해 짧게는 2주, 길게는 4주라는 정말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의뢰를 받은 정신과 전문의가 환자의 증상에 대해 완전히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검사와 면담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4주라는 기간 동안, 한 병동에 있는 수십 명의 사람과 함께 생활을 하게 하고, 관찰을 한다.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존재하지를 않는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4주 동안, 연기를 해서 그 모든 사람을 속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4주라는 기간도 특혜가 아니라, 올바른 판단을 위한 필요한 절차이다.

심신 장애인에 대한 처벌을 면제 또는 감경토록 규정한 형법 제10조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 조항을 악용하는 사람들과, 그 악용하는 사람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또 심신장애를 적용한 이후에, 후속 조치로 올바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논의와는 별개로,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조의와 애도를 표한다.

 

치료를 받은 조현병 환자가 길을 걷는다. 길을 걷다가 누군가 자신을 욕하는 남자 목소리를 듣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환청이 들렸구나 생각하고 다시 길을 걷는다. 그런데 또다시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소리가 작아 무슨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쪽 골목에서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보면서 한 남학생이 나타난다. 소리가 작게 들려서 그리 신경이 거슬리지는 않는다. 시비를 걸고 싶지도 않다. 학생은 멍하니 환자를 스쳐 지나간다. 더 이상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환자는 남학생의 뒤통수만 보인다. 환자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