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 10월 14일 강서구에서 발생한 PC방 살인사건의 국민청원이 19일 현재 40만 명을 돌파했다. 청원의 내용은, 21세 아르바이트생을 무참히 살해한 가해자가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심신 미약을 핑계로 감형이 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언제까지 우울증, 정신질환, 심신 미약 때문에 처벌이 약해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지금보다 더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고 주장했다.

꽃다운 청년의 무고한 죽음에 분개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는 한 시민의 노력과 그에 동참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건설적인 토론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다.

먼저, 우울증 약을 먹는다고 해서 모든 이가 심신 미약으로 감형이 되지는 않는다. 피고인이 심신 미약을 주장하는 경우, 법원은 피고인의 정신감정을 의뢰한다. 의뢰를 받은 정신과 전문의는 피고인을 정신과 폐쇄병동에 2주에서 한 달가량 입원을 시켜, 검사와 면담, 관찰을 한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형사사건은 주로 법무부에서 운영하는 국립법무병원에서 정신감정을 하게 된다.
 

사진_픽사베이


이 정신감정은, 피고인이 앓고 있는 병의 정확한 진단과 정도, 어느 정도의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지, 또 범죄를 저지를 당시 정신 질환이 영향을 얼마나 미쳤는지 등의 내용을 포함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우울증의 증상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이나 선택에 의해 범죄를 저질렀다면 이런 내용을 정신감정 보고서에 적고, 이것을 보고 법원이 심신 미약 적용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우울 증상은 거의 모든 정신 및 신체 질환에서 나타날 수 있으며, 우울 증상이 있는 대부분의 경우에 우울증 약을 처방한다. 가해자가 우울증 약을 먹고 있어도, 주 진단명이 우울장애가 아니라, 다른 정신질환일 가능성도 있다. 또한 우울 장애 때문에 타인에게 수십 회의 칼부림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울 장애의 기본 증상 중 하나가 의욕 없음, 흥미 없음인데,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실제로 흉기를 준비해와 실행하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대한 정신감정에서, 우울증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결론이 나오기 어려우며, 이런 결론을 법원이 고려하여 판결할 것이다.

 

심신 미약의 정당성에 대해서 과거에도 수차례 논의가 있었다. 심신 미약의 적용범위가 너무 넓으며, 특히 음주가 동반된 사고에서 심신미약이 적용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 현재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음주 행위는 남이 자신의 입에 술을 넣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의 의지로 술을 마시는 것이다. 따라서 술에 취해 자신의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술에 취한 상태를 본인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심신 미약 적용이 아니라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외국에서는 음주가 동반된 범죄에 대해서는 가중처벌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은 음주, 알코올 중독과는 다르다. 자신이 선택해서 정신질환에 걸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해서 심신 미약은 필요하다.

문제는 심신 미약을 악용하는 것이다. 청원에서도 언급했듯이, 자신의 범죄에 대한 처벌을 줄이기 위해서 심신 미약을 이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심신 미약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심신미약이 아닌데 심신 미약을 주장했을 때 가중처벌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로 정신질환이 있고, 정신질환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를 가해자들의 처벌을 그냥 줄여달라는 것은 아니다.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 당시에는 대부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 않다. 이들이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럴 형편이 안 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집은, 집안에 범죄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최소한 병원에 입원이라도 시킨다. 하지만 환자와 늙은 어머니 둘이 사는 집에서는, 노모는 돈을 벌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는 방치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환자는 정신질환이 악화되어 범죄를 저지르고, 심신 미약을 근거로 형이 경감되며, 형이 끝난 뒤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만, 환자를 돌볼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다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따라서 심신 미약을 적용한 경우에는 지금보다 더 강력한 사후 조치가 필요하다. 바로 법원의 치료명령이다. 현재도 치료명령 제도는 있다. 하지만 치료를 명령한 이후 실제로 명령을 잘 이행하는지 관리할 인원이 없으며,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큰 처벌은 없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시민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이며, 정신질환자의 범죄가 반복될수록, 정신질환자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더 크게 만들게 된다. 실제로 치료받는 정신질환자는 일반 인구보다 범죄율이 더 낮은데도 말이다.

정신질환자가 위험하다는 편견이 지속될수록, 정신질환이 있는 분들은 자신의 병을 숨기게 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낙인이 찍히는 두렵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자가 위험한 것이 아니다. 치료받지 않는 정신질환자, 치료받을 수 없는 환경이 위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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