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가 읽어주는 영화, 스물 네번째 이야기>

오펜하이머: 인간이 가진 모호함과 양면성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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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트퍼 놀란, 새로운 인물 연대기 영화를 선보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최근 3년 만에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그는 인터스텔라, 인셉션, 테넷 등 새로운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큰 충격과 논쟁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이번 영화 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의 생애, 갈등, 번뇌에 대한 내용입니다. 815일 광복절에 개봉하여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감상, 비평할 때는 여러 시각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제작 측면에서는 이야기의 전개, 인물의 감정 묘사, 촬영 기법, 무대 장치 등을 중심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과학자의 양자 역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소개, 대량 살상 무기의 개발 과정이 나오기 때문에 과학자의 윤리 의식,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도 영화를 보면 고민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저는 정신과 의사이니, 오펜하이머 인물의 심리에 대해서 한 번 분석을 해 볼까 합니다.

 

# 오펜하이머, 원자 폭탄 개발 이후 곤란한 상황에 처하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과학자들이 독일보다 빨리 원자폭탄을 발명하기 위해 맨해튼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당시는 양자역학이 태동하여 급격하게 발전하는 시기로, 원자 분열로 발생한 엄청난 에너지를 폭탄으로 사용할 방법을 미국과 독일이 동시에 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히틀러의 나치 정부가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할 경우, 세계가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미국 대통령에 경고합니다. 그리고 미국이 조속히 핵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할 것을 건의합니다. 영화의 구성은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과학자들이 외딴 연구소에 모여 극비리에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과정과, 맨해튼 프로젝트 이후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자로 몰려 청문회에서 심문받는 과정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3시간이라는 긴 상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스토리 전개와 긴장감을 주는 심리묘사로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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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펜하이머, 복잡하고 애매하며 모순적인 인물

 

원자폭탄 개발로 2차 세계대전을 끝낸 오펜하이머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요? 저는 그를 애매하고 모순적인 인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는 미국이라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 미국의 2차 대전 승리를 위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그는 공산주의 성향 인물들과 어울렸습니다. 그의 친동생과 아내, 내연녀 등 많은 지인들이 좌파 성향이었습니다. 그는 한때 여러 좌파 운동에 참여했고 스페인 내전 때는 좌파 성향의 정부에 수차례 지원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공산당원은 절대 아니라고 반복적으로 말하였습니다. 그의 정치 성향은 과연 어느 쪽이었을까요?

 

오펜하이머는 핵폭탄개발을 적극적으로 찬성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 핵폭탄 투하를 결정을 후회하였습니다. 강력한 무기인 핵폭탄이 장기간 이어진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지만, 핵폭탄으로 무고한 민간인의 살상과 전쟁 이후의 경쟁적인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우려하였습니다. 오펜하이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핵폭탄과 비교할 수 없는 살상력을 가진 수소폭탄이 개발되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자의 윤리와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서 깊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생활은 결코 도덕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키티>라는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지만, 결혼 전에 만났던 <진 태트록>을 결혼 생활 중에도 간간이 만나 애정을 나누었습니다. <진 태트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 때 심한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핵무기로 고통 받은 많은 민간인에 대해 강한 연민과 죄책감을 느꼈지만, 본인의 욕망으로 인해 상처받을 아내와 내연녀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과연 도덕적인 인간이었을까요? 그의 모순된 행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오펜하이머가 평생 천착했던 학문은 양자역학입니다. 양자역학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 매우 작은 물질 운동에 관한 물리학 분야입니다. 양자는 입자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양자가 어떤 운동의 성격을 가질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확률적으로만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기존 고전물리학으로는 이 모순된 현상을 설명할 수 없기에 양자역학이 처음 나왔을 때 모든 물리학자들이 당황했습니다. 천재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조차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펜하이머는 그가 그토록 사랑한 양자역학과 같이 굉장히 모순되고 애매모호한 성격의 소유자인 듯합니다.

 

# 인간 누구나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애매모호함과 모순성

 

그러면 오펜하이머의 괴짜 같은 양면성이 그만의 예외적인 특징일까요? 저는 이런 애매하고 모순적이며 복합적인 성향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익명의 군중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고 싶지만, 그 가운데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성장 과정 중에서는 부모님의 간섭을 싫어하여 되도록 빨리 독립을 원하지만, 동시에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과 지지를 받고 싶어합니다. 이렇듯 인간이란 존재는 한 가지의 이론과 특징으로 설명하기 힘든 애매모호하고 모순적이며 다층적인 성향을 가진 듯 합니다. 몇 년 전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에세이가 인기를 끌었던 것도 이런 인간의 심리를 잘 표현했기 때문 아닐까요?

 

때로는 본인의 마음이 종잡을 수 없고 일정하지 않아 혼란스러우신가요? 그렇다면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길 바랍니다.

 

 

성모사랑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유길상 원장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모사랑 정신건강의학과
가톨릭중앙의료원 수련의, 전공의
(전) 포천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자문의
(전) 의정부 청소년 쉼터 상담의
대한정신건강재단 해피마인드 상담의, 대기업, 보건소 등에서 다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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