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읽어주는 영화, 열한 번째 이야기

[정신의학신문 : 의정부 성모사랑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유길상 전문의]

 

월요일 아침, 중요한 회의를 위해 아침 일찍 나왔는데 도로는 꽉 막히고 예상치 않게 차까지 고장 났다면 짜증날 듯하다. 부랴부랴 차를 수리하여 직장에 도착했는데 회의는 끝나버린다면 허탈하겠지? 그런데 직장 상사가 지난 달 성과가 좋다며 많은 동료들 앞에서 칭찬한다면 기분은 급전환되어 약간 들뜰 것 같다. 이렇게 인간은 감정은 팔레트 위의 물감처럼 다양하고 봄날의 날씨와 같이 변화무쌍하다. 그렇다면 인간의 감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사진_인사이드 아웃(수입 및 배급_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2015년, 픽사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은 인간의 복잡한 감정에 대해서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11살의 주인공 라일리는 부모님과 함께 추운 겨울이 긴 미국 미네소타에서 아이스하키를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감정의 컨트롤 타워에서는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등 서로 다른 색깔의 다섯 감정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들은 라일리의 핵심 기억을 만들고 다채로운 기억의 섬을 형성하며 라일리를 성장시킨다.

 

그림_변연계(닥터단감 / 유진수 외과 전문의)

실제 인간의 뇌에서는 해마(hippocampus) -> 뇌궁(fornix) -> 유두체(mamillary body) -> 시상전핵(anterior nucleus of thalamus) -> 대상회로(cingulate gyrus) -> 해마(hippocampus)로 이어지는 파페츠회로(Papez circuit)을 통해 감정과 기억이 처리된다. 강렬한 감정과 통합된 핵심 기억들은 해마(hippocampus)에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었다가 인출된다. 감정 컨트롤 타워의 해부학적 위치는 파페츠회로(Papez circuit)를 포함한 변연계(limbic system)로 추정된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라일리는 아버지가 샌프란시스코에 새로운 직장을 얻어 이사를 가게 되면서 위기를 맞게 된다. 그녀는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려 노력하지만 같은 반의 동료들은 호의적이지 않다. 더욱이 날씨가 따뜻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즐겨하던 아이스하키도 쉽지 않다. 한편 감정의 컨트롤 타워에서는 우연한 실수로 기쁨과 슬픔이 본부를 이탈하여 기억의 저장 공간으로 떨어진다. 그곳에서 기쁨과 슬픔은 라일리가 겪었던 경험 중 일부가 삭제되는 과정을 보기도 하고 방어기제를 상징하는 정찰병에게 쫓기다 붙잡혀 어두운 무의식에 갇히기도 한다.

 

사진_인사이드 아웃(수입 및 배급_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기쁨과 슬픔이 위기를 탈출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존재는 빙봉이다. 빙봉은 유아기 시절 라일리가 좋아했던 코끼리, 솜사탕, 돌고래 등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상상 속의 친구(fantasy)다. 영유아기 시절 어머니는 배고픔, 외로움, 분노 등의 다양한 욕구와 감정들을 조건 없이 충족시켜준다. 하지만 24시간 어머니가 이용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라일리의 빙봉처럼 힘들었을 때 위로해주고 심심할 때 언제든 함께 놀 수 있는 상상의 친구를 만든다. 이러한 역할은 성장과정에서 젖꼭지, 인형, 담요 등의 이행 대상(transitional object)을 통해서 나타날 수도 있다.

 

라일리는 잃어버린 행복을 찾기 위해 혼자 미네소타로 돌아가는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어머니 지갑에서 돈을 훔쳐 미네소타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도덕과 윤리 등 초자아(superego)를 상징하는 정직섬이 무너져버리는 순간이다. 라일리는 미네소타로 향하다 마음을 고쳐 다시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_인사이드 아웃(수입 및 배급_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라일리는 부모님과 아이스하키를 함께한 경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오면서 즐겁게 사진을 찍었던 경험 등 즐거웠던 기억을 회상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부모님의 응원에 힘입어 씩씩하게 현실에 적응한다. 발달 초기 다양한 경험은 성인이 된 후에 감각, 가치관, 인격 등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라일리가 일상생활 중에 시도 때도 없이 껌 광고 음악을 흥얼거리는 모습은 초기 경험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행복한 기억은 청소년으로 성장하여 위기를 맞이한 순간 좌절과 역경을 이겨내는 데 자양분의 역할을 하였다.

 

감정은 경험과 함께 형성되고 기억의 형태로 저장된다. 일부의 감정은 의식 수준에서 기억할 수도 있고 일부의 감정은 무의식의 깊은 심연에 저장되어 우리가 알아차릴 수 없다. 그러면 부정적인 감정은 없어져야 할까? 영화에서 기쁨은 슬픔을 작은 원 안에 통제하려한다. 하지만 슬픔은 통제되지 않고 돌발적인 모습을 보였다.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하고 부정하며 축소화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시간이 흐른 후에 우울, 분노, 공허함, 현실 부적응 등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부정적 감정 또한 우리 삶의 일부분이다. 부정적 감정을 수용하고 여러 감정들과 통합한다면 영화 속의 슬픔처럼 긍정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다.

 

당신의 변화무쌍한 감정과 오래된 기억이 궁금한가? 그러면 주말 한가로운 시간에 인사이드 아웃 영화 감상을 추천한다.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모사랑 정신건강의학과
가톨릭중앙의료원 수련의, 전공의
(전) 포천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자문의
(전) 의정부 청소년 쉼터 상담의
대한정신건강재단 해피마인드 상담의, 대기업, 보건소 등에서 다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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