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가 읽어주는 영화, 스물네 번째 이야기>

와인 좋아하시나요? 저는 가족 혹은 지인들과 와인을 즐겨 마십니다. 와인 산지는 이태리, 스페인, 미국, 칠레, 호주, 뉴질랜드 등이 있습니다. 여러 산지 중에서 당연히 프랑스가 가장 유명합니다. 프랑스에는 여러 와인 생산지가 있는데 그중에 한 곳이 부르고뉴입니다. 

인생, 가족, 성장, 독립과 관련된 영화가 있어서 소개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제목은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입니다.    

# 독립, 부모의 품을 떠나는 치열한 과정

우리는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러 발달 과업을 거칩니다. 언어를 배우고, 걷고 뛰고, 학교에 입학합니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힘든 입시 과정을 거치고, 서로 다른 환경을 가진 이성을 만나 사랑을 합니다. 직장에 취업해, 직장 상사에게 된통 혼나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하나씩 과업을 수행해 나갑니다. 어떤 사람은 이 과정을 수월하게 마치고, 어떤 사람은 더디고 힘겹게 경험합니다. 더러는 좌절하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은 중요한 발달 과정 중 하나 입니다.  

# 부모로부터 주어진 각자 다른 숙제 

영화는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삼형제가 가족의 터전인 와이너리에 모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 첫째 아들 장: 장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혼이 많이 났습니다. 본인이 잘못해도 혼이 났지만 동생을 잘 돌보지 못한다는 이유로도 질책을 받았습니다. 장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부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둘째와 셋째에게는 너그러웠던 반면, 첫째에게는 너무도 가혹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을 느끼고 부르고뉴를 훌쩍 떠납니다. 그리고 호주에 정착하여 본인 방식으로 가족과 와이너리를 만들어 갑니다. 10여년 만에 고향을 찾은 장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유달리 엄격했던 이유를 깨닫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본인만의 터전인 호주로 다시 돌아갑니다. 

- 둘째 딸 줄리엣: 줄리엣은 삼형제 중 가장 아버지를 의지하고 따랐습니다. 와인을 가장 사랑하고 와인 생산에 재능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유산인 와이너리를 맡게 됩니다. 하지만 포도를 재배하고 수확하고 와인을 만드는 과정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녀는 해충을 위해 농약을 살포할지, 포도 수확은 언제 하는지, 어떤 사람을 고용할지 등 모든 것을 결정을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 중에, 여러 사람의 의견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합니다. 줄리엣은 일련의 사건을 거친 후에, 본인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기로 결정합니다. 

- 셋째 아들 제레미: 제레미는 부르고뉴 유명 와인 생산자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처가의 덕으로 아무런 걱정 없이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제레미는 장인어른의 허락 없이는 아무런 결정을 할 수 없습니다. 제레미는 결혼하며 장인어른과 같은 집에서 살고, 주말 오전에는 무조건 장인어른과 함께 식사를 해야 했습니다. 제레미는 와인에 대해 경험도 풍부하고 지식도 훌륭합니다. 하지만 장인어른은 제레미와 일을 하며 끊임없이 사위를 무시합니다. 제레미는 이런 장인어른 태도에 극심한 스트레스와 분노를 느낍니다. 제레미는 결국 참다가 폭발하여 장인어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합니다. 

첫째 장은 아버지의 강압적인 양육 태도에 상처를 받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신대륙에 본인만의 세계를 창조하였습니다. 

둘째 줄리엣은 비교적 허용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유산인 와이너리를 물려받고 우왕좌왕하다가, 자신만의 와인 양조 스타일을 찾았습니다. 

셋째 제리미에게 장인어른은 아버지의 변형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장인은 경제력, 인맥 등으로 사위를 틀에 가두고 조종하려 했으나 제레미는 이를 용감히 거부하였습니다. 

삼남매는 우여곡절이 있엇지만 결국 부모의 품을 떠나 멋진 성인으로 성장하였습니다. 

# 부모로부터 독립을 실패한 대표적 사례: 사도세자 

사도세자의 아버지는 영조입니다. 영조는 굉장히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가 자신을 이어 조선의 왕이 되어야 했기에 엄격하게 훈육하였습니다. 사도세자는 매우 총명했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끊임없이 노력했으나 번번히 실패하였습니다.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병적인 괴롭힘에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고, 결국 아들은 뒤주에 갖혀 쓸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사도세자는 아버지를 넘지 못하고 고꾸라져버린 것입니다. 

# 부모로부터 독립을 성공한 대표적 사례: 야구선수 이정후 

이정후는 현재 대한민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입니다. 내년에는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예정입니다. 이정후 아버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야구선수 이종범입니다. 이정후는 성장 과정에서 아마도 끊임없이 아버지의 과거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야구를 배우는 과정 중에서 아버지와 비교를 당했을 것입니다. 아버지인 이종범은 아들이 야구를 배울 때, 절대 참견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고 합니다. 이런 태도는 아마도 아들이 시련을 겪었을 때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정후는 엄청난 압박감을 이겨내고 성공하였습니다. 이제 이정후의 방망이는 아버지도 가지 못한 메이저리그로 향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 했을 때 우리는 한 단계 더 도약하여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녹녹치 않습니다. 우리는 자녀가 이 발달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때로는 응원하고, 때로는 묵묵히 기다려줘야 합니다. 

여러분은 부모로부터의 독립과정은 어땠나요?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는 현재 어떤 독립 과정을 겪고 있나요?

성모사랑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유길상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