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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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착한 사람인가요? 나쁜 사람인가요? 이 질문에 답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착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는 나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착한 것 같지만 어떤 때는 생각지 못한 나의 나쁜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하니까요. 이렇게 우리 안에는 두 가지 면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양면성은 문학계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많이 다뤄져 왔습니다. 

1896년 출간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ewis Stevenson)의 단편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100여 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선과 악이라는 인간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지킬박사는 인간 안에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본능이 모두 숨어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습니다.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약물을 개발해 인격을 분리하게 된 그는 낮에는 신사답고 친절한 지킬의 모습을, 밤에는 범죄를 일삼고 거친 본성을 숨기지 않는 하이드의 모습을 한 채 살아갑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하이드에 점점 잠식되는 자신을 보며 위기감을 느낍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는 선과 악, 빛과 그늘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에서 이를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 ego)’의 개념을 통해 설명했습니다. 무의식의 세계를 관장하며 충동적이고 생물학적 본능에 충실한 원초아, 반대로 양심과 도덕, 이상적 원칙을 따르는 초자아, 그리고 현실 세계를 살며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의 갈등을 조절하고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하는 자아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사회화를 거치며 우리는 원초아, 즉 본능과 무의식이 지배하는 상태, 생물학적 욕구와 쾌락 만족에만 충실한 상태로부터 자아, 초자아를 발달시킵니다. 사회규범과 도덕률,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키며 나의 욕구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고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지요. 이 과정을 통해 원초아가 원하는 방식대로 충족하기는 어려운 원초적 욕구를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방식으로 대체하거나 지연시키면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됩니다.

본성(nature)과 양육(nurture), 즉 타고난 기질이나 유전과 같은 생물학적 조건과 학습, 환경과 같은 후천적 조건이 상호작용하면서 ‘나’라는 존재로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선과 악이라는 이중성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잠재된 수많은 요인이 후천적 요소와의 결합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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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신경과학자이자 캘리포니아 대학교 정신과 및 인간행동학 교수인 제임스 팰런(James H. Fallon)은 사이코패스들의 뇌를 분석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합니다. 자기 가족들의 뇌 스캔 사진을 분석하던 중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뇌를 발견했는데, 뜻밖에도 그것이 바로 자신의 뇌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 그는 당연히 그 사진이 가족의 사진이 아니며, 다른 데이터와 잘못 섞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뇌 사진이리라고는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죠.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는 본인의 뇌였습니다.

이 사실에 팰런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지만,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지고 태어난 자신이 어떻게 교수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무탈하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그의 저서 <사이코패스 뇌과학자: 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책에 잘 담겨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부모님과 가정환경,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 교육과 같은 요인들이 자신이 사이코패스로 성장하지 않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았습니다. 사이코패스는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며 호기심이 많고 대담하며 타인에게 잘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특징으로, 좋지 않은 환경에서는 반사회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전적으로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뇌의 특징이 있더라도 안정적이고 풍부한 양육환경, 후천적 학습을 통해 사회에 위협이 되는 방식이 아닌, 역동성과 변화를 가져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그는 전측두엽의 기능 저하, 전사 유전자와 같은 고위험 변이 유전자, 유년기의 정서적/신체적/성적 학대라는 세 가지 요인이 사이코패스를 만들어 낸다고 하는 ‘세 다리 이론’을 제안했습니다. 자신에게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요인이 있었지만, 세 번째 요인인 학대의 경험이 없었기에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본 것입니다. 

물론 사이코패스를 이 세 가지 요인으로 모두 설명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비판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사이코패스가 태어나는 것이 아닌,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며 위험요인을 가진 이들을 생애 초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 이론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원초아를 갖고 태어난 우리가 학습과 사회화, 발달과 성숙을 거쳐 자아, 초자아를 가진 존재로 성장해 타인과 어우러져 살아가듯이, 사이코패스를 비롯해 잠재적 위험성을 가진 채 태어난 사람들이라도 좋은 환경과 학습을 통해 충분히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와의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활용해 사람들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과 관련된 컨텐츠를 보다 보면 한 가지 우려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한 사람 거르는 법’, ‘손절해야 할 사람 유형’, ‘인생에서 피해야 할 사람’처럼 사람들을 단편화하고 한 가지 특징만을 가진 존재처럼 나누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입니다. 

물론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은 정신건강을 위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타인을 ‘좋은 사람 vs. 나쁜 사람’, ‘가까이 할 사람 vs. 피해야 할 사람’처럼 쉽게 이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내가 나를 좋은 사람 혹은 나쁜 사람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양면성을 가진 존재임을 인정하며, 나와 타인의 가장 좋은 점이 발휘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겠습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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