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환의 [시(詩)와 함께하는 마음공부] (15)
[정신의학신문 : 여의도 힐 정신과, 황인환 전문의]
어디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고 여긴 청년들이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합니다. 있는 돈을 다 끌어모으고 대출을 받고 심지어 빚까지 내면서 대박의 꿈을 좇아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는 겁니다. 이런 걸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하는 사람들)’ 또는 ‘빚투족(빚을 내면서까지 투자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네요. 최근의 주식 시장 과열과 부동산 시장의 투기 현상은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이런 극단의 심리는 정상이 아닙니다.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서글픈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지식인과 현자들이 청춘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청춘을 노래하며 청춘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한 번 흘러가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소중한 나날들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을 좋아합니다. 힘들 때, 우울할 때, 낙심될 때, 고민이 있을 때 이 시를 읊거나 떠올리면 마음이 맑아지고 기운이 샘솟습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한다.
장밋빛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굳센 의지, 풍부한 상상력, 타오르는 열정을 가리킨다.
청춘이란 인생에서 깊은 샘의 청량함을 말한다.
청춘에 대한 시인의 정의는 국어사전과 다릅니다.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이것만 청춘이 아니라는 겁니다. 청춘은 나이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그에 따르면 청춘은 마음가짐입니다. 장밋빛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 이것은 젊은이의 육체적 특징입니다. 나이가 들면 수려한 외모나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시인은 이 같은 육체적 특징에 의해 청춘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굳센 의지, 풍부한 상상력, 타오르는 열정, 이것에 의해 청춘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굳센 의지, 풍부한 상상력, 타오르는 열정, 이것이 있으면 청춘이고 없으면 청춘이 아니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청춘의 특징은 청량함입니다. 청량하다는 건 맑고 깨끗하고 서늘한 걸 말합니다. 너무 뜨겁거나 차거나 미지근한 건 청량한 게 아닙니다. 청춘은 순수하고 싱그러운 겁니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따르고 싶은 마음을 물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도 일흔 살 노인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꿈을 잃어버릴 때 마음은 늙는다.
세월은 주름살을 늘려 주지만
열정을 잃으면 곧 마음이 시든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에 떨어지고
정신은 가벼운 먼지가 된다.
이 부분에서 나이상으로 청춘의 시기가 지난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습니다. 용기와 모험심이 있다면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청춘이지만, 두려움과 안이함에 갇혀 있다면 이십 대 젊은 나이라도 청춘이 아닙니다. 80세, 90세 심지어 100세가 넘은 분들이 계속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은 육체적으로는 기력이 쇠잔해 가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매일 새로운 활력이 솟아날 겁니다. 평생 청춘인 분들입니다. 이에 반해 두려운 나머지 뭐 하나 제대로 도전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면서 보신에만 연연한다면 대학생이라도 노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시인은 늙는 게 뭔가 하고 묻습니다. 물리적으로 한 해 한 해 나이를 더해가는 게 늙는 게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꿈을 잃는 게 늙는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더 이루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기대할 것도, 바라는 것도, 도전할 것도 없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늙은 겁니다. 세월이 흐르면 얼굴이 주름살이 생겨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수술을 해봐야 헛일입니다. 흉하기만 합니다. 정말 가슴 아파해야 할 것은 마음에 주름살이 생기는 겁니다. 마음에 주름살이 든다는 건 열정이 식어가는 것이죠. 아무런 의욕도 없는 겁니다. 시들어버린 마음은 먼지처럼 가볍습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휘날릴 뿐입니다. 기력은 땅에 떨어집니다. 주변이 온통 고뇌와 공포와 실망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184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해 교육, 정치, 종교 등 다양한 방면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인 사무엘 울만이 ‘청춘’이라는 시를 쓴 건 그의 나이 78세일 때였습니다. 그는 노년에도 소외된 사람들과 학대받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헌신을 했습니다. 그의 시는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애송되며 꿈과 희망을 선사했습니다. 자신의 삶과 시와 그로 인한 영향력이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참 보기 드문 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기 힘들고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으며 도무지 희망을 발견하기 어려울 때 아무리 청춘이라고 해도 좌절과 절망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럴 때 찾아올 수 있는 것이 무기력증(Lethargy)입니다. 온몸이 축 처지고 나른한 피로감이 이어집니다. 집중력의 저하로 능률이 떨어지고 의욕이 없어집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취감을 맛보기 힘든 부진한 상태가 계속됩니다. 신체적으로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고, 약물에 의해 무기력증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우울하거나 불안할 때, 낙담과 상실감이 길어질 때 발생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기억력 장애, 수면 장애, 위장 장애 등의 동반 증상이 따라오기도 합니다.
“정말 지쳤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몸이 늘어지는 거죠? 통 의욕도 없고 기운도 없어요. 살맛이 안 나요.”
무기력감을 호소하는 환자들은 대개 이런 식으로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우울증의 초기 증세 또는 동반 증상으로서의 무기력증은 일상생활이나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증상이 2주일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무기력증 환자에게는 부정적인 인지가 형성됩니다. “나는 뭘 해도 안 돼.”, “다 필요 없어. 해보나 마나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미리 알아서 포기하는 것이죠.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줄어들다 보니 점점 고립됩니다. 가족과의 대화도 귀찮아집니다. 혼자서 외톨이가 되는 셈입니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급해지면서 과민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때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의 대처가 아주 중요합니다.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은 낙오자가 아닙니다. 게을러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지치고 힘들어서 그런 겁니다. 손을 잡아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게 필요합니다. 더 심해지기 전에 전문의와 상담을 거쳐 필요하다면 약물 치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일상생활을 활력과 활기를 되찾을 수 있는 방향으로 바꿔 나가는 게 좋습니다. 무기력감이 심할 경우 만사가 귀찮아져 식사를 소홀히 한 채 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좋지 않습니다. 식사를 자꾸 거르면 몸은 더 처지고 나른해집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밤에 잠을 자기 어렵습니다. 수면 장애는 무기력감을 더 부추깁니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운동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명상 또는 요가를 하는 것도 좋은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근래 들어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서글픈 청춘들이 증가하고 있는 거죠. 마음이 쓰립니다.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에 부풀어 인생의 봄날을 한껏 즐길 수 있는 세상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사방에서 흥겨운 청춘가가 들려왔으면 좋겠습니다.
시절이 아무리 어지럽고 세월이 모질어도 인생의 봄날인 청춘은 청춘다워야 합니다. 청춘을 청춘답게 살아야 더 나이가 들어서도 청춘의 감각과 정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마음껏 꿈꾸고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도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부르는 청춘의 연가(戀歌)는 중단되어서도 가뭇없이 사라져서도 안 됩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사무엘 울만은 그걸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현실의 높은 벽 때문에 자꾸 무기력감이 찾아들려 하면, 사무엘 울만의 시를 읊어 보십시오. 한결 기분이 나아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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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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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자신의 글을 통해 작은 생각의 변화를 이끄는
선생님의 노력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