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나는 언제나 완성되어가는 중이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잣대를 찾아 헤맨다. 내가 지금 잘 지내고 있는 것인지, 이게 어느 정도 ‘정상’, ‘일반’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재고 따지기 위해. 아무 기준 없는 스스로의 응원은 공허하기 때문에, 반에서 몇 등, 사내에서 우수사원이, 평가에서 인센티브가 모두 안정적으로 중-상위권이기를 기대한다. 그러다 말도 안되게 느린 사람이나 중간 아래 인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소스라친다. 그 즉시 평가하기 바빠진다.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즉, 내가 중간 이상은 된다는 증거인 것 만 같아서 열렬하게 비판하고 슬쩍 빠진다.
누구에게나 어떤 면이든 느린 면이 존재한다. 누구에게는 시간관념이, 누구에게는 학업 속도가, 누구에게는 취업과 결혼이, 또 어떤 누구는 잘 다니던 회사에서 갑자기 느려지기도 한다. 모두 공공연하게 자신의 거북이 같은 면을 무시하고 숨기기 바쁘다. 가장 쉬운 방법이 조금 더 느려 보이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뜯어보는 일 일 것이다. 그렇게 뒤로 자꾸만 숨는다.
나도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다. 아직 공황장애가 일상에 치명적일 정도로 존재한다. 또 새 조직에 적응이 느리고, 밀린 원고는 줄어들지 않고, 성격은 또 불 같아서 마음 속에서는 전쟁같이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나지만 그것은 스트레스로 남을 뿐 어떤 것도 말끔히 해결되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조직에 적응을 빨리 하는 것 처럼 행동하고, 공황장애가 오지 않도록 외출이 거의 없으며, 밀린 원고 목차는 책상 옆 보조 책상으로 옮겨 두었다. 그렇게 피하고, 연기하고, 숨기고… 나는 도대체 언제 1인의 사람 몫을 해낼 것인지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에게 모질게 군다.
내 안의 속 마음은 또 억울해서, 10년 전보다, 5년 전보다, 훨씬 인간 답게 살고 있지 않냐고 반항심을 가득담아 묻고 또 묻는다. 치료를 받는다고, 치료가 5년이 지나고 10년이 다 되어가도 낫지 않을 수도 있지 않냐고 삐뚤어진 마음이 되어버린다. 나의 ‘나아짐’은 당연히 여기고, 계속 부족하고 불편한 부분들만 상처를 건들 듯 자꾸 찌른다.
매일 몇 번 씩 한 줌의 약을 먹어도, 그렇게 매주 상담을 하고 그게 쌓여서 병원과 상담, 약은 내게 일상을 지키게 하는 최소한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정이 되어버렸다. 그 긴 기간, 몇 번의 이사를 감행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조건이 ‘병원으로의 접근성’이다. 집을 보러 나서기도 전에, 지도앱에 병원까지의 거리를 검색해보는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나는 그렇게 나를 지켰고, 답답하고, 느리고, 이해 되지 않는 어떤 단점들은 잘 숨기는 방법들을 연구해왔다.
발전만 있는 삶이 가능하겠냐 하면 나는 아니라고 당당히 대답하겠지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그런 종류를 압박해왔다. 용건이 있는 통화는 직전에 메모장에 용건을 정리해두고 전화를 걸고, 걸려오는 전화는 내가 놓치는 것이 생길까 한 마음에 얼른 메모와 펜을 집어 든다. 전화 하나만 봐도, 나는 뚜렷하게 발전을 이루었다기 보다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방어책을 여럿 만들어 둔 것이다. 누구에게나 걸려오는 어떤 평범한 전화처럼 들리도록. 이 삶이 5년이 더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나는 지금 먹는 약에서 단 한 알도 줄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주변에서 질리고, 지치고, 포기하는 이들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황이 와도 나는 하는 수 없다. 그래왔듯 그러는 수 밖에.
느리고 부족하고 불편한 내 삶에 조금씩 요령이 생기고, 굳은 살이 박혀 꽤 평범해 ‘보이는’ 수준으로 살 수 있도록 하루 씩 쌓을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판단해도 나는 죽는 그 날 까지 완전한 생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 만 같다. 누구의 도움을 받아, 어제까지 하지 못하던 일을 오늘 하게 되는, 완성으로 가는 길만이 존재할 것 같다. 내 생이 얼마나 길거나 짧을지 예측하지 못하더라도, 또 5년이 또 10년이 지나면 또 어떤 부분이 완성으로 나아갈지, 두려움에 씌어진 기대가 있다.
나에게는 완성의 삶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나 자신을 채찍질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할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이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부터 계속, 내 삶을 누리는 그 언제나, 완성을 향해 간다는 것. 그 사실로도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