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황인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근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매체들은 사용자 검색 데이터를 기반으로 컨텐츠를 개인화하는 알고리즘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내가 보고 싶은 정보만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용자 편의는 향상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의견에 노출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도 있지요. 오늘은 그 현상에 대해 이야기 나눠봅니다.
‘필터 버블(Filter Bubble)’은 이용자들이 인터넷 정보제공자가 제공한 맞춤형 정보를 이용하면서, 필터링 된 정보만을 접하게 되는 현상을 지칭합니다. 미국의 시민단체 무브온(Move on)의 이사장인 엘리 프레이저(Eli Pariser)가 쓴 ‘생각 조종자들(원제: The Filter Bubble)’에 등장하는 단어이지요.
필터 버블이라는 용어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에 맞는 정보만을 반복적으로 접하며, 자신이 믿는 세계가 유일한 진실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단순한 정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인지 구조와 신념 형성 과정까지 영향을 미치며, 사회 전반의 의사소통 단절과 갈등 심화를 불러올 수 있는 심리적 함정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필터 버블은 인터넷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과거 행동과 선호 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형 정보만을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관점의 정보 접근이 제한되면서 발생합니다. 이는 정보의 다양성 상실로 이어지고, 사용자 스스로는 자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유도한 정보 경로를 따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 환경이 뇌의 신념 체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 기존의 신념과 비교하고, 일치하는 정보는 쉽게 수용하지만, 그렇지 않은 정보는 거부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입니다. 필터 버블은 이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며, 결국 사용자는 점점 더 자기 확신에 빠지게 되고, 다른 관점에 대한 인지적 유연성을 잃어가게 됩니다.
알고리즘, 그리고 ‘신념 설계자’의 역할
알고리즘은 본래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선호’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사실상 인간의 인지 구조에 개입하는 설계자가 되는 셈입니다. 특히 SNS 플랫폼의 경우, ‘좋아요’, 클릭률, 체류 시간 등을 기준으로 사용자 맞춤형 정보를 반복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정보의 메아리 방(Echo Chamber)을 형성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메아리 방 속에서 신념은 더 단단해지고, 다른 생각에 대한 인내심은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즉, 정보의 편향적 노출이 심리적 거리감을 극대화하며, 사회적으로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구조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필터 버블 속에서 우리의 뇌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첫째, 개인의 인지적 방역 전략이 필요합니다. 정보 다양성 확보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다양한 출처의 정보를 접하고, 자신의 신념과 다른 관점을 수용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둘째, 감정적 반응 점검하는 것입니다. 분노, 불안 등과 같은 정보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자각하고, 감정과 정보를 분리하는 훈련이 중요합니다. "나는 왜 이 정보를 믿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의 사고 과정을 되돌아보는 메타인지 훈련이 효과적입니다.
셋째, 플랫폼과 알고리즘 설계자의 윤리적 책임도 중요합니다. 사용자에게 다양한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알고리즘 구조를 고민하고, 단기적인 클릭률이 아닌 장기적 정보 다양성과 신뢰도를 지향해야 합니다. 일부 플랫폼에서는 이미 필터 버블을 완화하기 위한 정보 균형 지표를 도입하거나, 중립적 정보 제공 영역을 확대하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필터 버블은 기술의 산물이지만, 그 영향을 받는 것은 인간의 뇌와 사고입니다. 알고리즘이 신념을 만드는 시대, 우리는 스스로를 정보의 소비자가 아니라 신념의 설계자로 자각해야 합니다. 뇌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가질 때, 편향과 왜곡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의 시대일수록, 사고의 자유를 함께 지켜 나갈 수 있길 응원합니다.
여의도힐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황인환 원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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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자신의 글을 통해 작은 생각의 변화를 이끄는
선생님의 노력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