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일러스트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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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의 등장과 함께, 우리는 다양한 혜택과 편의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AI는 일상적인 검색부터 복잡한 업무 지원, 심리상담까지 영역을 넓히며 ‘베스트 프렌드’, ‘가장 좋은 고민 해결사’, ‘똑똑한 조수’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과 함께, 우리가 AI와 공유하는 정보가 얼마나 안전하게 지켜지고 있는지, 그리고 AI가 인간 고유의 역할을 대체하지 않을지 하는 불안 역시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챗GPT를 비롯한 AI 서비스들에서 이용자 검색 기록 등이 유출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많은 이들이 이런 불안을 더 크게 느꼈는데요. 마치 일기장이나 고백록처럼 AI와 나누었던 대화들이 공유되면서 일부 사용자의 범죄 기록이나 지나치게 개인적인 일까지 공유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보 유출 불안'은 우리 내면의 '심리적 경계(Psychological Boundary)'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심리적 경계란 나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고, 나의 사적인 영역을 지키려는 내면의 노력을 의미합니다. 이 경계가 무너지면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가 나인지'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AI에게 제공한 정보가 나의 일부가 되어 어디선가 사용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결국 우리 자아의 정체성을 흔들고 불안을 가중시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고받는 수많은 대화와 질문, 심지어는 가장 사적인 고민까지도 AI라는 거대한 존재에게 털어놓는 시대에, ‘과연 내 정보는 안전한가?’, ‘AI에 너무 의존하다가 인간 고유의 능력은 퇴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들은 이제 누구나 한 번쯤은 품어보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일상적으로 AI를 활용하면서 우리는 때로 '내가 과연 AI 정도로 유능한 존재인가' 하는 자존감과 효능감의 위협을 느끼기도 합니다. AI가 내놓는 완벽하고 논리적인 결과물들을 보며, 상대적으로 나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이 새삼 크게 다가오는 것이죠. 이러한 감정은 무의식적으로 우리 내면에 'AI가 나를 대체할 수 있다'라는 위기감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또한, AI와의 대화는 '상호작용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AI는 우리의 말을 감정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답변을 내놓습니다. 그 과정에서 반박하거나 우리가 제기한 시각과 다른 관점은 잘 내놓지 않고 우리의 생각을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응답할 때도 많습니다. 이는 내 생각과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듯한 수용감, ‘내가 틀리지 않았다’라는 자기 확신과 함께 우리에게 큰 만족감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소통 방식에 익숙해지면, 감정적 교류와 공감이 필요한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감정적인 소통이 줄어들수록 우리는 고립감과 외로움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내 생각에 반대하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경향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AI는 그 유용성과 편리함만큼이나 우리에게 또 다른 불안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AI는 우리 삶에서 이미 일상화되고 있고, AI 시대의 불안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 AI 시대의 불안에 건강하게 대처하고, AI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요?

1. AI를 도구로 인식하고, 주도권을 잃지 마세요.

 AI는 편리한 도구이지, 우리가 의지해야 할 최종적인 판단자가 아닙니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때, AI의 도움을 받더라도 최종적인 결정은 언제나 내 몫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AI가 주는 정보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검증하고 나의 고유한 통찰력을 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2.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며 현실 세계에서의 깊이 있는 관계에 집중해 보세요.

 AI와의 소통에 너무 매몰되기보다,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과의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AI는 눈 맞춤, 따뜻한 포옹처럼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유대감, 진실한 공감을 해주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친구, 가족, 연인과의 진솔한 대화 속에서 '연결감'을 느끼고, 감정적으로 충전될 수 있습니다. 규칙적인 디지털 디톡스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는 휴대폰, 컴퓨터 모니터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고 주변을 둘러보세요.

3. 자신의 강점을 재발견하고, 나만의 고유한 능력을 개발하세요.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들이 있습니다. 바로 창의성, 직관, 그리고 공감 능력입니다.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여 창의적인 결과를 내놓지만, 전혀 다른 영역의 지식을 융합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진정한' 창의성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입니다. AI에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강점과 흥미를 탐색하고 이를 개발하는 데 집중해 보세요.

 AI 시대의 불안은 어쩌면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근본적인 질문에 관해 다시 한번 고민해 보게끔 해주는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우리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하는 질문들 말이죠.

 기술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나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보고,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는 일은 AI가 결코 대신할 수 없습니다. AI의 도움을 받되, 나의 불안과 감정,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 이것이 바로 AI 시대에 우리 자신을 잃지 않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지 않을까요?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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