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황인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많은 사람의 꿈 중 하나는 바로 ‘내 집 마련’입니다. 내 집을 갖기 위해서 사람들은 청약 저축에 가입하고 부지런히 적금을 모으고, 대출을 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노력을 통해서 집을 마련하고자 하는 데는 ‘내 집’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 녹아있습니다.
바깥에서 많은 일들과 사람들에게 치이고 돌아왔을 때 온전히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마음에 큰 위안이 됩니다. 반드시 자가가 아니더라도 집이라는 공간에서 안락함과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집’이라고 할 때 단순히 거주 목적만 아니라 투자를 염두에 두기도 하고, 더 크고 좋은 집, 새 건물, 완벽한 입지, 좋은 학군처럼 다양한 조건을 따집니다. 이렇게 많은 조건을 따지는 것은 그만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기도 하고, 집이 모든 생활 동선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무조건 더 크고 좋은 집, 비싼 집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요즘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너 (아파트) 몇 단지에 살아?”, “너네 집 몇 평이야?”라는 말을 인사말처럼 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작은 평수의 집에 살거나 임대단지에 산다고 하면 함께 어울리기를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아이들의 행동에는 주거지, 경제력 등에 따라 계층을 나누고 함께 하기를 거부하는 어른들의 차별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크고 좋은 집, 비싸고 학군이 좋은 집에 살면 좋겠죠. 사실 그런 집에 사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로망이기도 합니다. 흔히 말하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집, 강남 8학군 집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런 물질적인 면이 충족된 집에 산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이 보장되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로 ‘홈 스윗 홈(home sweet home)’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즐거운 나의 집’ 정도가 될 텐데요.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 온기, 안정감 혹은 그리운 고향집이나 가족 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스윗 홈이 되기 위해서는 집이 나에게 어떠한 경험을 제공하는지, 어떤 심리적 영향을 주는지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코로나 시기를 보내는 동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이 그 전보다 ‘집’의 중요성을 더 크게 실감하게 되었는데요. 그러면서 단순히 먹고 자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하고 나에게 최적화된 곳으로 집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이들이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고, 실내에서도 마치 실외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중정이나 테라스가 있는 집,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넓은 집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또,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지하철역이 가까이 있는 ‘역세권’, 숲 근처에 있는 ‘숲세권’, 스타벅스처럼 카페가 가까이 있는 ‘스세권’, 붕어빵 가게가 가까운 ‘붕세권’이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그런 편의시설을 쉽게 누릴 수 있는 곳으로 거주지를 정하는 것이죠.
이렇게 라이프 스타일과 집, 각자의 선호와 취향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집의 형태도 점차 다양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투자와 미래 성장 가능성이라는 점에서는 아파트에 대한 선호가 높게 나타나지만, 전원적이고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이들은 외곽의 전원주택이나 타운하우스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또, 좁은 공간을 활용한 땅콩주택을 찾는 이들도 있고, 젊은 사람들이나 직장인들은 중심가의 오피스텔을 우선순위로 고려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을 잘 고려해서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는 집으로 가꾸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큰 영향을 줍니다. 어질러져 있거나 너무 많은 물건으로 발 디딜 틈 하나 없는 집안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지 않나요? 반대로 깨끗하게 정리되고 내 취향으로 꾸며진 집은 상쾌함과 만족감을 줍니다. 또, 집에서 홈 씨어터를 활용해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작은 홈 카페를 만들어 차나 커피를 즐기는 시간, 독서하는 장소를 따로 만들어 온전히 책을 읽는 시간은 집에서의 여가 경험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는 내가 내 의지로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이룰 수 있다는 ‘자기결정성’을 높여줍니다. 스스로 가구를 조립해서 만들거나 화단을 가꾸는 일, 인테리어 용품이나 자재를 결정하고 고르는 일은 유능감과 통제감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최근에는 ‘홈 루덴스’라는 용어도 등장하고 있는데요. 이 말은 집을 의미하는 홈(home)과 놀이, 유희를 뜻하는 루덴스(ludens)의 합성어입니다. 흔히 멀리 가지 않고 깨끗하고 쾌적한 호텔에서 서비스를 받으며 휴가를 즐기는 것을 호캉스라고 하죠. 홈 루덴스는 이렇게 호캉스에서 즐기는 것 같은 경험을 집에서 할 수 있도록 합니다. 내 취미생활과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집에서 다양한 여가 활동을 하는 것이죠.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김대호 아나운서가 비바리움, 만화책처럼 자신의 취미를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집안 곳곳에 배치해 둔 것을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얼마 전에는 아예 이런 취미활동만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만들어둔 모습이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만화방, 사우나실, 영화방처럼 용도에 맞게 공간을 꾸민 것입니다. 이는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과 동시에 ‘집을 저렇게도 꾸밀 수 있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는데요.
물론 각자의 여건에 따라서 집을 얼마나, 어떻게 꾸밀 수 있는지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공간적, 시간적, 경제적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서 마음이 있어도 원하는 대로 집을 꾸밀 수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혹시 그렇더라도, ‘우리 집은 너무 좁아서...우리 집은 너무 낡아서...지금은 너무 바쁘고 돈도 없어서...’라는 이유로 스윗 홈으로 꾸미시기를 너무 미루거나 포기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꼭 많은 시간이나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나에게 만족감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집을 꾸며보시면 어떨까요?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를 붙인다든지, 베게 커버를 바꾼다든지, 작은 화분을 놓는 것처럼 말입니다. 꼭 화려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내 집을 소중하게 가꾸면서 나 자신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경험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여의도힐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황인환 원장
<참고문헌>
황영주, 남윤영 and 이훈. (2020). 집에서 혼자 보내는 여가경험의 심리적 의미 -자기결정성 개념을 중심으로-. 관광학연구, 44(5), 77-95.
생활의 공간. (n.d.). 공간정보, 21. https://webzine.lxsiri.org/wp/2019/01/%EA%B3%B5%EA%B0%84%EC%9D%98-%EC%8B%AC%EB%A6%AC%ED%95%99/index.html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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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노력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