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헤밍웨이의 자살에 대한 정신의학적 접근을 다루는 두 번째 글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자살 심리부검 #1

 

 

양극성장애

헤밍웨이는 종종 현재 진단기준으로 볼 때(DSM-5) 우울증을 만족할만한 증상을 보여왔고, 스스로도 우울감에 대해 잘 묘사했습니다. 흥미와 즐거움의 상실, 공허함, 리비도의 감소, 죽음에 대한 생각과 자살 등이 그것입니다.

비정상적인 기분은 우울한 쪽만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분변화는 그 폭이 매우 크고 변화속도가 빨랐는데, 조증상태일 때는 고양된 기분과 넘치는 에너지를 보였습니다. 물론 예민해지는 모습도 평소보다 많아졌습니다. 젊을 때 그는 아침까지 깨어있는 일이 잦았고 그 시간까지 술을 마시며 책을 보기도 했습니다. 조증시기로 보이는 이 시기에 그의 첫번째 부인은 헤밍웨이에 대해"기분이 하늘 높은줄 모르게 올라가고 감정적으로 매우 강렬해진다. 폭발할 준비가 된 사람처럼보인다"고 이야기합니다. 

 

​Hemingway posing for a dust jacket photo by Lloyd Arnold for the first edition of "For Whom the Bell Tolls", at the Sun Valley Lodge, Idaho, late 1939. (출처: wikimedia commons)​

 

무엇보다 조증시기는 그에게 창조적인 에너지를 주었는데 1924년 한 해에만 7편의 단편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스스로를 전지전능하다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부인에게 쓴 편지에는.."3주째 잠을 안자고 있다...책을 쓸 때에는 잠을 잘 수 없는데...머리속에서 밤새 달리는 느낌이다. 아침에는 머리속에 있는걸 다 끄집어내 써야하는데 그 때가 되면 모든게 끝난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가 좋아하던 사냥이나 낚시, 투우 등의 활동도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조증으로 인한 행동보다는 워낙 위험이 따르는 행동을 선호하는 그의 성향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알코올 사용 장애

그는 평생을 술과 함께 살았습니다. 청소년기에 처음 술을 마셨는데 독한 술을 즐겼습니다. 심지어 전쟁에 참여하여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병실 침대에 꼬냑병을 숨겨 들키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음주운전으로 여러차례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수차례 다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음주는 첫 결혼이 실패한 1920년대 초부터 그의 어머니와의 관계가 엉망이 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점점 심해졌습니다. 간손상이 생겼고 술을 끊어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를 들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알코올 문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양극성장애를 악화시켰고 기분증상에 더 취약하게 만들었습니다. 

 

Photograph of Ernest Hemingway at the Finca Vigia, his home in Cuba.(출처: wikimedia commons)

 

외상성 뇌 손상

헤밍웨이는 신변에 크고 작은 사고가 많았는데, 사고에 매우 취약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물론 술때문에 그런 경향이 많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천장에 난 채광창 개폐용 줄을 화장실 변기 줄로 알고 당겨 천장 유리가 그의 머리에 떨어진 일도 있었습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머리를 수차례 다쳤고, 아프리카 여행중에는 비행기 추락으로 인한 손상도 있었습니다. 뇌척수액이 귀를 통해 나올정도로 중상을 입고서도 그는 술을 계속 마셨습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손상은 그의 노년기에 그가 가진 기분증상을 악화시키도 했으며,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정신병적 증상에 기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살

헤밍웨이는 1961년 7월 2일 자살로 생을 마쳤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그의 머리속에는 온통 자살과 폭력적인 주제들 뿐이었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사람이 감당할 수없는 많은 일들로 인해 자살할 수 있다는 걸 이해했다" 며 자살에 대한 자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항상 위험에 자신을 맡기고는, 했는데 스스로의 목숨을 죽음으로 가져가기 위해 마치 계획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지구 전체의 전쟁을 쫒아다녔습니다. 1,2 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에까지 참전했습니다. 투우의 광팬이었는데 보는 것 뿐 아니라 직접 참여해 위험한 경우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낚시, 사냥을 무모할정도로 다니는 등 항상 죽음을 가까이에 하는 행동을 이어갔습니다. 헤밍웨이는 아마도 그의 아버지처럼 자살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죽음을 더 깔끔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Ernest Hemingway on safari, Africa. January, 1934.(출처: wikimedia commons)

 

종합해서 살펴보면, 헤밍웨이도 자신의 인격문제, 가족, 정신과적 증상으로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로 인한 고통을 덜기 위해 그가 사용한 방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 한가지는 알코올이었고, 문학활동도 그렇습니다.

고통스러운 기분과 끊임 없는 자살충동을 전략적이고 적응적인 방어기제인 글쓰기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분과 대인관계 등을 글에 표현하기도 했으며 소원성취의 환타지나 복수에 대한 환타지 등도 소설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그는 문학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러한 치료효과는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Ernest Hemingway at "La Consula", Bill Davis' estate in Spain, 1959.(출처: wikimedia commons)

 

헤밍웨이의 가족을 포함한 주변에서 치료를 권했지만 그는 평생 치료받기를 거부했습니다. 사회적 낙인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방어는 사실 부적응적이었고 부분적으로만 효과를 보았습니다. 

1960년부터 그는 우울과 자살에 대한 싸움에서 지기 시작했습니다. 피해 망상(paranoid delusion)이 동반된 정신병적 우을증(psychotic depression)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친구나 FBI가 자신을 감시하고 죽이려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그의 우울증이 매우 심각한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만성 알콜중독과 잦은 머리의 외상으로 인한 영향도 있습니다. 또 고혈압약으로 복용한 reserpine(우울증을 일으키는 부작용을 포함)을 복용했는데 이 또한 우울증을 악화시킨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헤밍웨이는 여러번의 자살시도 끝에 마요 클리닉에 입원하게 됩니다. 전기경련치료(ECT) 등을 받으며 2개월간 치료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망상과 자살사고는 지속되었고 퇴원 후 어느 날 아침 부인이 잠든 사이 자살에 성공합니다. 

헤밍웨이는 미국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문학은 그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었으며 그의 삶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적절한 치료와 함께였다면 그의 삶은 어땠을지...그의 문학은 어떤 변화를 보였을지...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인것 같습니다. 

 

 

참고

Ernest Hemingway: A psychological Autopsy of a Suicide. Paychiary 69(4) Winter 2006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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