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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 그는 왜 귀를 잘라야 했는가?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7.09.21 07:32

[정신의학신문: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출처 좌_위키피디아, 우_위키미디어공용

 

고흐에 대한 떠도는 정보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의 길지 않은 비극적인 인생이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정보가 정확하지 않거나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 그렇습니다. 이번 글은 고흐가 보인 그가 보인 이상행동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다루고, 다음 글에서 그 모습을 정신의학에서 어떻게 설명하는지 다루겠습니다.

 

 

무언가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다

 

1885년 아버지의 죽음 후 고흐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고, 동생 테오가 있는 파리에서 2년간 생활하기로 합니다.

고흐는 평소에도 어딘가 어수선한 모습에 별 것 아닌 일에 쉽게 화를 냈으며, 말다툼을 잘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로 주변의 여러 사람과 마찰이 생겼는데, 파리에 온 후 이런 모습이 더 잦아졌습니다. 테오는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고흐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는 두 명의 사람처럼 보인다. 한 명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부드럽고 세련된 사람이고, 다른 한명은 이기적이고 냉담한 사람이다. 그 둘은 교대로 나타나는데 한 명이 말하고 듣고 하는 것 같다. 가만 보면 항상 양쪽이 논쟁하며 끝나는 것 같다. 이런 고흐를 보면 참 불쌍하기 짝이 없는데... 이런것 때문에 그의 삶 자체가 너무 힘들어진다."

 

이 때부터 전에는 좀처럼 없던 특이한 증상을 겪기 시작합니다. 발작적인 공포증상과 애매하게 아픈 윗 배, 가끔씩 의식을 잃는 그런 증상들입니다. 주변의 관찰에 의하면 이러한 모습은 갑작스럽게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멍해지는 눈빛으로 시작된다고 합니다. 

 

 

증상이 심해지다


고흐는 아를(Arles)에서  예술 공동체 설립을 위해 생활하며 가장 인상적인 그림을 그려 갔습니다. 이 시기에 증상은 심해져 1888년 말이 되기 전에 정신병적 차원으로까지 진행했습니다. 고흐도 자신에게 무언가 강렬한 감정과 충동이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술과 담배를 끊어보려했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고흐는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이런 강렬한 감정을 대처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예민해졌습니다. 몹시 흥분을 잘하고 예측할 수 없는 불쾌감과 좋은 기분과 같은 감정이 교대로 나타났습니다.


"나는 지금 나한테서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할 수 없다. 그저 이유 없는 끔찍한 불안감, 아니면 허무함...그리고 머리속의 피로감..그리고 가끔심한 우울감과 끔찍한 후회들에 휩싸인다."

 

이런 고통스러운 감정과 생각 중에도 그는 마치 자신의 그리스의 신이 된 것 처럼 예언을 할 수 있다거나 뛰어난 열정을 가진 사람이 된다고도 하였고 훌륭한 연설가가 되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출처_위키미디어공용

귀를 자르다

 

1888년 가을, 고흐는 테오의 도움으로 고갱을 어렵게 설득해 함께 지내게 됩니다. 그들은 예술 공동체를 세울 계획을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점점 늘어나는 말다툼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고갱과의 관계는 두 달 정도만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1888년 크리스마스 이브, 고갱은 이미 고흐에게 떠나기로 이야기를 한 상태였습니다. 갑자기 고흐가 앱상트 잔을 고갱의 얼굴에 던집니다. 

이후 기괴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고갱이 떠난 뒤 고흐는 면도칼로 자신의 왼쪽 귓불을 잘라버립니다. 자른 귓불은 그가 아끼는 창녀에게 보내집니다. 그리고는 그는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됩니다.

 

처음에 경찰은 의식을 잃은 고흐가 사망한 것으로 알고 고갱을 체포해 살인범으로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고갱과 함께 다시 집을 찾아갔을 때 고흐는 깊게 잠을 자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고갱은 한마디 말없이 집을 떠났고 이 후 둘은 한번도 마주치는 일이 없었습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다

 

이 사건 후 고흐는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급성 정신병적 증상과 흥분, 환청, 망상 때문에 3일간 격리되어 지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고갱을 공격한것에 대한 기억은 없었습니다.

 

고갱에 대한 행동은 지시적인 목소리의 환청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귀를 자른 것도 스스로를 처벌하라는 목소리의 공격적인 지시 내용의 환청에 의한 것입니다. 귀를 자른 것은 그가 알고 있던 투우의 의식(죽인 황소의 귀를 잘라 사랑하는 여인에게 주는 것)과 연관된 정신병적 사고의 흐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3주간의 입원기간 후 그는 유명한 "귀가 잘린 자화상"중 한 점을 그릴만큼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이후 스스로의 정신상태에 대해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못참겠던 환청은 없어졌다...사실 줄어들어서 그냥 간단한 악몽과 같은 느낌이다. 내 생각에 이런건 약(입원 후 복용한 간질약) 때문에 그런 것 같다.
..
설명하긴 어렵지만 아직 알수없는 슬픈 감정이 내 속에 있다."

 

고흐는 퇴원 후  자발적으로 입원하는 등 여러차례 입퇴원을 반복합니다. 그는 1889년에는 생 레미(Saint Remy)에 입원합니다. 1890년 2월부터 4월까지 그는 심한 정신병적 증상을 겪었는데, 공포스러운 환청과 심한 초조함이 그것이었습니다. 가끔 종교적인 주제의 정신병 증상을 겪었는데 그 때문에 자신을 돌봐주는 수녀들을 멀리하기도 했습니다.

 

출처_위키피디아

이곳에 있는 동안 그는 300여점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도 있습니다. 


자살

 

시설에 들어갈때부터 고흐는 종종 자살을 언급했습니다.

1890년 5월 퇴원 이후 고흐는 테오의 권유로 오베르에서 지내게 됩니다. 10주정도를 여기서 생활합니다. 바로 근처에 의사이자 예술가 친구인 폴 가셰(Paul Gachet)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흐는 이 시기에 즐기던 앱상트를 끊었는데 그러면서 발작과 의식을 잃는 일도 크게 줄었습니다.그런데 테오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하자 고흐는 다시 날카로와졌습니다. 그럼에도 항상 그랫듯 더욱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에매진해 70일동안 70개의 그림(painting)과 30개의 습작(drawing)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견딜수 없는 외로움을 느껴야 했고 마지막 작품인 까마귀가 있는 밀밭(Wheat Field with crows)를 그린 뒤 권총으로 자살합니다. 고흐의 사망 6개월 뒤 동생 테오도 사망하는데, 신장질환으로 인한 요독증과 지속적인 섬망으로 사인이 알려져있습니다.

 

고흐의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인 수 년간 그가 보인 증상은 이러했습니다. 
다음 글에서 이 모습을 정신의학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yskwonp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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