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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적 시각으로 보는 '빈센트 반 고흐'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7.09.29 07:24

[정신의학신문 :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전 글(빈센트 반 고흐 - 그는 왜 귀를 잘라야 했는가?)에서는 고흐의 증상이 어떻게 보여졌는가를 다뤘다면 이번 글에서는 그 모습을 정신의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다룹니다.

 

The Painter of Sunflowers (Portrait of Vincent van Gogh) / Paul Gauguin 작품, 1888 (출처_위키피디아)

 

• 고흐의 진단명은? 

고흐의 진단은 20세기 의사들을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30여개의 다양한 진단명이 제시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납중독부터 메니에르병, 다양한 정신병적 질환까지 언급되었습니다. 그 중 뇌전증(epilepsy, 간질)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정신과적 질환을 별개로 보는 시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논란 중에 있습니다.

 

• 가족력

정신과적 평가에 있어 빠질 수 없는 것이 가족의 정신과적 질환이나 증상 유무입니다. 생물학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고흐 부모님의 가족으로는 정신과적 과거력은 없었습니다. 다만 고흐는 어릴 때부터 변덕이 심하고, 고집이 셌으며, 짜증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즉, 기질적인 특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질 특성과 관련해서 가스토(Gastout,  Lennox-Gastaut syndrome로 알려진 신경과의사)에 따르면 고흐의 어린 시절 사진을 통해 얼굴과 머리뼈의 비대칭이 보이는데, 태어날 때 손상으로 인한 뇌손상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흐는 다섯명의 어린 동생이 있었습니다. 테오(Theo)는 평생 조력자로 변함 없는 헌신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그도 고흐가 죽은지 6개월만에 사망합니다. 막내인 코넬리(cornellits)는 군에 입대했는데 자살하거나 전쟁 중에 죽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동생 윌레미나(Wilhemina)는 35세에 정신시설에 들어가고 후에 조현병임이 알려지며, 시설에서 생활하다 79세에 사망합니다. 

 

• 초기 프랑스 의사들의 진단

처음 입원했을 때 의사인 펠릭스 레이(Felix Rey)의 진단은 뇌전증(간질)이었습니다. 그가 이런 진단을 내린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주기적인 흥분과 우울의 교대

- 갑자기 보이는 사소한 것에 대한 격한 분노

- 예민한 상태

- 기억상실

- 발작 중에 나타나는 위험한 행동

- 환각 증상

가스토 역시 뇌전증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발작과 발작 사이의 시기(interictal period)에 나타난 세가지 변화도 언급합니다. 고양되는 기분, viscosity(점착성, 과도하고 부적절한 친밀감-지나친 대인관계의 집착 등), 성욕저하 등 입니다.

고흐 그림의 특징적인 소용돌이치는 듯한 붓터치도 그가 간질 중에 겪는 이상감각을 표현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진 좌_앱상트(출처_위키미디어 공용) 우_웜우드(출처_픽사베이)

 

가스토는 고흐의 증상에 앱상트(absinthe)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술에는 웜우드(wormwood) 오일이 들어있는데 이 성분은 독성물질로 분류되어 발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고흐가 죽기 얼마전 이 술을 끊었을 때는 발작 증상이 없던 것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 현대의 시각

현재 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고흐가 보였던 증상, 심지어 기본 성향까지도 뇌전증과 연관된 증상들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Bedroom in Arles, 1888 (출처_위키피디아)

 

아를에서 보였던 기분 변화 증상은 interictal dysphoric disorder(뇌전증간 불쾌장애 정도로 해석가능, 신경과적 개념)라 부를수 있는 기분증상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기분변화는 예민함, 우울감과 기분고양, 불안, 무기력, 불면, 신체 통증 등이 동반합니다. 발작과 발작 사이에 고흐가 호소했던 갑작스러운 우울한 느낌이나 열정-광기의 순간, 갑자기 찾아온 공허함 등이 이러한 기분변화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조울증에서 보이는 지속적인 기분변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지요.

고흐의 정신병적 증상에 대해서도 뇌전증과 동반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환청, 망상, 관계사고(실제 관련이 없거나 적은 내용이 나와 관련이 있다고 믿는 것), 기억상실 등이 그것입니다. 따라서 고흐의 주치의들이 정신병 치료제가 아닌 항간질제 성분의 치료약을 준 것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자살시도와 관련해서는 아마도 발작후 우울증상과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일반적이지는 않은 것이고 고흐도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감정적인 증상에도 앱상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스스로 견디기 어려운 감정적 변화를 술로 이겨내려했지만 이것이 잦아지면서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키는 꼴이 된 것이지요. 이 정도라면 고흐의 질환은 물질과 관련된 장애로 보는게 맞지 않을까 싶을 만큼 문제가 있던 술인 것 같습니다. 

 

• 감별해야 할 질환들

물론 뇌전증은 가장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할 뿐이지 최종 진단은 아닙니다. 아래와 같은 다른 질환으로도 고흐의 증상은 설명가능합니다.

- 조현병: 기저의 정신병적 증상이 없었다는 것, 조현병으로 의식을 잃거나 하지 않는 것이 차이점.

- 신경매독: 당시 유행하던 질병이었고, 그의 사생활을 보았을 때는 의심가능함. 하지만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변화가 없었음.

- 양극성장애:  심각한 우울증으로 볼 수 있는 삽화가 있었고, 그 때문에 직업과 생활이 바뀌는 결과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기분이 일정기간 지속적이지 않았으며 앱상트와 같은 물질에 의한 영향을 배제할 수 없음.

- 물질사용장애: 앱상트와 뇌전증, 기분변화는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실제로 죽기 2년 정도의 생활에서 그는 기분변화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 인격장애: 고흐는 어릴때부터 버려지는 것에 대한 공포, 반복적인 자해와 협박성 태도, 공격적 성향들이 있었습니다.  

 

고흐의 진단명은 확실하지 않지만 그가 앓았던 증상은 그의 예술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은 고흐의 고통을 덜어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고,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참고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Japanese Print. ARCH GEN PSYCHIATRY/VOL 65 (NO. 2), FEB 2008, 130-131

The Starry Night(La Nuit Esoilee). ARCH GEN PSYCHIATRY/VOL 59, NOV 2002, 978-979

The Illness of Vincent van Gogh. Am J Psychiatry 2002;159:519-526

Wikipedia. Vincent van Gogh.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yskwonp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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