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Andy Warhol, 1928.08.06 ~ 1987.02.22) 
출생: 피츠버그, 미국
국적: 미국 

 

Andy Warhol by Jack Mitchell. (출처: CC, Wikimedia Commons)

 

나는 어린시절 1년 간격으로 세 번의 신경쇠약(nervous breakdown)을 겪었습니다.
그건 바로 St. Vitus dance 입니다.
여름 내내 침대에 누워 Charlie McCarthy 인형과
자르는 종이 인형을 가지고 놀아야했지요.
- 앤디 워홀

 

앤디워홀은 미국을 대표하는 20세기 팝 아티스트입니다. 1949년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상업예술(Fine art degree)을 전공했지만 뉴욕에서  광고쪽 일을 하면서 1960년대는 초부터 팝아티스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추상적 표현의 광고그림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고 슈퍼 히어로, 특히 슈퍼맨과 캠벨사의 수프캔 그림이 유명합니다.

 

Adjacent black font canvases from Campbell's Soup Cans by Andy Warhol, 1962. Displayed in Museum of Modern Art in New York (출처: C, Wikipedia)

 

이런 그의 작품 테마는 어린시절 이야기를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8세가 되던 앤디 워홀은 시드남 무도병(Sydenham chorea)을 앓았습니다. St. Vitus dance(로마 가톨릭의 성인 중 한명으로 그를 기리는 축제 때 추던 춤과 무도병의 움직임이 비슷해 붙여짐)라 불리는 이 무도병은 특이한 동작으로 팔, 다리와 몸을 흔드는 질병입니다. 앤디워홀의 어린 시절에는 성홍열(scarlet fever)을 앓은 아이의 20%가 이러한 질병으로 진단되고는 했습니다. 이 때문에 어린 앤디워홀은 학교에서 놀림 당하고 따돌림 당하는 일이 잦아 결국 8주 정도 학교를 가지 못하였습니다. 

 

3형제 중 막내였던 그는 부모의 과한 보호를 받고 자란 허약한 아이였습니다. 무도병은 가족의 관심을 더욱 받도록 하였는데, 집에서 지내면서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만화책과 영화 잡지를 보도록 했고, 캠벨수프를 먹도록 했습니다. 

 

그는 영화배우와 만화주인공, 특히 슈퍼히어로에 홀딱 빠졌는데, 뽀빠이와 딕 트레이시를 좋아했습니다. 1938년 새로 등장한 슈퍼맨의 주인공 클락 켄트의 이야기는 이 불안정한 어린 소년이 동경하는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Photo of Edgar Bergen and Charlie McCarthy.NBC Radio/NBC Photo. (출처: PD, Wikimedia Commons)

 

앤디워홀은 외모에 대해 매우 집착했습니다. 백반증(vitiligo)으로 추정되는 피부질환을 앓았고, 주사(만성피지선 염증, rosacea)로 인해 코는 붉게 도드라졌습니다. 그의 음낭(scrotum)에 작은 혈관종(hamengioma)이 있었는데 이러한 것들이 무도증과 함께 그가 느꼈던 창피스러움, 부끄러움의 원천이었습니다.

 

그의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시킨 것은 어머니가 매주 토요일 아침 피츠버그의 카네기 박물관에서 그림 수업을 받게 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 그림 수업을 통해 자신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던 이상적인 모습들을 표현하며 자신의 감추고 싶은 마음과 함께 이를 통한 어려움을 극복해낸것으로 보입니다. 

 

Andy Warhol_Superman (https://www.flickr.com/photos/thegirlsny/2600758408)

 

앤디워홀은 1987년 02월 22일 오래 앓던 담낭질환의 악화로 여러 번의 수술과 그 합병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시기에 그는 앞날을 예견했는지 스스로를 상징화(아이콘화)하였습니다. 자신을 신화 속의 주인공 이미지로 만들기도 하였는데, 심지어 땅에 묻힐 때에도 검은 캐시미어 수트에 산만한 무늬의 페이즐리 타이, 플래티넘 가발, 선글라스를 쓰고 붉은 장미와 검정 기도책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의 전략은 효과가 있었고, 그가 죽은 후에도 이러한 그의 모습과 작품들은 그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지요.

 

박물관 관계자들이 그가 죽은 뒤 그의 집을 살펴봤습니다.  거실 전체와 옷장에는 그가 타임머신이라 불렀던 가방과 박스와 같은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무려 600개가 넘는 개수였습니다. 워홀은 예술품 수집가로 유명했는데 이 박스들은 너무 많아서 거실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연구가들은 이런 모습이 저장장애(hoarding disorder, DSM-5)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그가 앓았던 시드남 무도병은 강박증상과 일부 저장장애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워홀이 말했던 신경성 쇠약(nervous breakdown)은 실제로 한 차례였지만 이렇게 오랜 기간 그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참고
Before and After and Superman, Andy Warhol. JAMA Psychiatry. 2014;71(1):7-8 
OC symptoms among patients with Sydenham chorea. Biol Psychiatry. 2005;57(9):1073-1076
Andy Warhol, Wikipedia. 

 

 

저자약력_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참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전공의 수료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근로복지공단 정신과 자문의
대한의사협회 네이버 제휴사업 운영위원
한국 도박문제관리센터 치료지원 전문의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체기사 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