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요즘 공부를 하기 위해서 독서실에 다니고 있습니다. 독서실 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들면 문이 보여요. 그런데 제가 문이 열릴 때마다 자꾸만 누가 왔다 갔다 하는지 쳐다보게 됩니다. 누가 지나가면 그게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해요.

또 문에 작은 창문이 있는데 인강을 보다가도 창문 사이로 사람 형체가 보이면 자꾸 쳐다보게 돼요. 다 모르는 사람들인데 자꾸 눈을 마주치게 되고, 상대(여러 명)도 아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쳐다보는 걸 알고 아예 저랑 대놓고 눈을 마주치는 사람(반발심? 짜증나서? 그런 것 같아요)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치 제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느낌도 듭니다. 저 역시 그들에게 호감이 있어서 쳐다보는 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복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그때도 자꾸 쳐다보게 돼요. 공부하거나 인강을 보려고 살짝 고개를 올리면 자꾸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와서 신경이 쓰여요. 한 3~4개월 정도 지속됐는데 집중력도 안 좋은 것 같고, 제가 자꾸 왜 이러나 싶습니다.

사람들을 자꾸 습관적으로 쳐다보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쳐다본다고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할 것 같아서 무서워요(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친구 무리가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아서 자꾸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괜히 죄책감이 들고, 제 자신이 너무 음치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냥 평상시에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을 걸을 때 (그냥 일반적인 인도에서도)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위쪽을 보면 자꾸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다른 사람들 외모에 엄청 관심이 있거나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도 제가 마치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려는 듯 비칠까 봐 걱정됩니다. 제가 주변을 무척이나 신경 쓰고 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채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이게 한두 번이 아니라 수시로 그러니 정말 힘드네요. 그렇다고 빤히 보는 것은 아니고, 그냥 시야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신경이 쓰이는 느낌입니다.

원래도 좀 남을 의식하는 편인데, 지금은 수험생이라 사회성도 바닥이고 남들과 얘기도 거의 안 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 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요즘 수험생의 위치에서 독서실을 다니면서 열심히 학업에 정진 중이신 듯합니다. 입시를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압박감이 크고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이실까 싶네요.

그런 와중에 주변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자꾸 쳐다보게 되고, 시선에 신경까지 쓰이신다니 마음이 많이 불편하실 것 같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유독 신경 쓰게 되고, 또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불편감을 느끼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연만으로는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무엇보다 낯선 공간과 사람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높아지시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인간의 뇌는 다른 어떤 동물과 비교해도 신체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고, 또 그만큼 영리해서 다른 모든 종들을 능가하며 진화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두뇌가 발달한 인간의 뇌도 처리할 수 있는 정보 처리 용량은 1,500cc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반면에 우리의 시·지각으로 들어오는 오감의 자극량은 이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뇌에서는 이러한 자극 정보를 단순화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일부 정보는 무시하거나 축소, 왜곡하는 등 ‘사고의 함정’에 빠지게 되기도 하죠.

그리고 이러한 사고의 함정은 스트레스나 심리적 압박감이 크거나, 불안감이 높은 상황에서 더 잘 작동될 수 있는데, 이것이 다시 일상에서의 적응과 마음 회복력을 발휘하는 데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곤 합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입시 준비로 인해 스트레스가 심하고, 에너지의 소진도 꽤 크신 상황이시라  짐작됩니다. 그런데 학업에만 집중하기에도 힘드실 텐데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또 그들을 쳐다보고 신경 쓰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에너지가 분산되고, 그로 인해 다시 집중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대로 사연자님께서 학업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질 때 주의가 산만해지면서 자꾸만 사람들을 쳐다보는 행동이 나타나고, 이 행동이 습관화되면서 원치 않아도 어느새 무의식적으로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패턴이 굳어졌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순위가 무엇이든지 간에 지금의 상황에서는 사연자님께서 사람들을 쳐다보는 행동의 횟수를 줄여서 학업에 좀 더 집중하고, 또 비록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치더라도 왜곡된 사고의 흐름으로 이어지거나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일단은 사연자님의 인식 속에는 ‘사람들을 자꾸 쳐다보면 안 돼.’라는 강박적 사고와 그로 인한 불안감이 있어 보이는데요, 이 사실을 먼저 받아들이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사고가 자꾸만 떠오른 것을 ‘침습적 사고’라고 합니다. 이 침습적 사고는 그 생각을 없애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도리어 그 생각이 자꾸만 떠오르고 강해지게 됩니다. 따라서 일부러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음에 Winston과 Self가 제시한 ‘침습적 사고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소개해 드리오니, 한 번 적용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침습적 사고’라는 이름을 붙이세요.
2. 이러한 생각은 자동적이고 내 의지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세요. 
3. 그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오도록 허용하세요. 머릿속에서 몰아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4.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돌아다니도록, 그 상태로 시간이 흘러가도록 허용하세요.
5.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세요. 급할 것이 없습니다. 
6. 그러한 생각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하세요.
7. 어떠한 일을 하다가 그 생각이 떠올랐다면, 불안함이 지속되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하세요.

 

사실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본능적으로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봅니다. 길거리를 가다가도 독서실이나 카페에서 자신만의 일에 열중하다가도 잠시 환기하기 위해 혹은 자세를 편하게 고치기 위해 고개를 들기도 하고, 한 번씩 주변을 살피기도 하는 것이죠. 따라서 이러한 행동이 이상하다거나 사연자님께서만 하는 특이한 행동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든 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받아들이신다면 어떨까 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을 쳐다보거나 눈이 마주치는 상황을 꼭 피해야 한다거나 불편한 상황이라는 사연자님만의 전제를 한번 반박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래도 자꾸만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을 쳐다보는 행동이 반복된다면 머릿속을 환기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벗어나서 휴식 시간을 가지시거나 바람을 쐬고 돌아오시는 방법도 시도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습관적으로 쳐다보는 행동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칠 때 드는 생각들이 사연자님의 마음을 더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사람들을 습관적으로 쳐다보는 게 미안하고, 쳐다본다고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할 것 같아서 무섭다.’고 이야기하셨는데요,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라 사연자님의 ‘추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추측의 기저에는 인지적 왜곡이나 잘못된 믿음이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사연자님의 인지적 왜곡과 잘못된 믿음은 과연 무엇인가요? 단지 지나가는 사람들과 시선이 자주 마주친다는 한 가지 사건에 대해 사연자님께서는 너무 많은 근거 없는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 상황을 무척 부정적으로 해석하면서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미움 받을지도 모른다거나, 죄책감이 든다거나, 스스로를 음침하다는 생각까지 왜곡된 생각과 믿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이러한 것을 심리학에서는 ‘관계 사고’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관계 사고란, 자신과 관련 없는 중립적인 정보를 자신과 관련지어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사연자님께서 자신들을 자주 쳐다보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자주 쳐다본다고 해서 사연자님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습니다. 

그런데 사연자님의 머릿속에서는 그들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사실 관계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과 그들 사이에 마치 어떤 관계가 있는 것처럼 사고를 왜곡하거나 확장해 나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내용의 대부분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나 스스로를 위축되게 만드는 측면이 있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이러한 관계 사고가 유독 많이 출현하거나 확장되는 이유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또 복합적이지만, 사회적 민감도가 높은 것과 마찬가지로 성격적 특성에서 기인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 민감성이란,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 애정 표현 등 사회적 보상이나 피드백에 민감한 정도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사연자님처럼 평소에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시는 분들은 선천적으로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기질을 타고났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사연자님께서 사회적 민감도가 높으신 분이라면, 비록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주고 싶다거나 하는 등의 무의식적인 사고가 생겨나실 수도 있고, 그러다 보니 더욱 다른 분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짐작도 가능하게 합니다.

또는 마음속에 우울이나 불안감이 높을 때도 이러한 관계 사고가 많이 나타나는데, 현재 학업에만 몰두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큰 상황에서 다른 사회적 관계를 맺을 시간도 없이 거의 고립된 상황이 지속되면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관계 욕구에 대한 불만족 등이 중첩된 것이 원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더불어 사연자님께서 평소에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생각을 중시하는 타인 지향적이거나 생각의 중심에 항상 ‘타인’이 있으셨다면, 이제는 생각의 중심에 먼저 ‘나’를 두시고, 나의 느낌과 생각에 더 집중하고 비중을 두는 연습을 해 보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혹시라도 남들이 사연자님에 대해 좀 안 좋게 생각하면 또 어떻습니까?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일 뿐,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 상관없어.’라고 타인의 시선과 생각으로부터 초연해지는 연습을 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앞으로 타인의 시선과 생각에는 덜 연연해하고 좀 더 자유롭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한결 편안해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규홍 원장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과전문대학원 졸업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료
METTAA CBT / Schema Therapy Exp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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