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30대 중반 고시생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저를 보는 것도 싫고 제가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도 불편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저에게 옮겨 오는 순간 몸에 경기가 오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 사람들은 그냥 시선을 옮기다가 우연히 저를 본 것 같지만 저는 어찌 됐든 그게 너무 싫고 짜증 나고 공격받는 기분이 들어 신경질이 납니다. 어쩌면 제가 공무원 시험을 오래 준비해서 그럴 수도 있나 생각은 되지만... 이제는 밖에 나가는 것도 스트레스입니다. 도서관에서도 사람들이랑 스치는 순간이 싫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접촉하는 게 극도로 꺼려져서 밖으로 나가는 게 어렵습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광민입니다. 요즘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도전하는 2-30대 분들이 많은데요. 행시를 준비하시는 경우라면 5급 이상의 고위 공무원을 목표하시거나, 아니면 9급부터 시작해서 ‘워라밸’을 즐기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제가 봤을 때 한국의 공무원 열풍 속에는 특유의 ‘고시원 문화’도 섞이면서 복합적인 어려움을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이 있기 마련인데 고시원 환경에서의 강압적이고 치열한 공부환경이 마치 정석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가혹한 환경은 오히려 시험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방향을 잃고 헤매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사연을 주신 분은 극도로 자기 자신의 가치가 낮아져 있습니다. 그게 달리 표현하면 자존감이 낮아졌다던가, 자신감이 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겠죠. 자기의 가치를 낮게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안 좋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살펴보자면 사연에서도 언급했듯 오랫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지쳐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열정을 가지고 희망에 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자꾸만 실패하는 경험을 반복하다 보니 내적 자원이 소진돼 버린 거예요. 이것을 번아웃(burn out)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정서적 고갈이 되면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인지 왜곡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나는 잘 안될 거야’, ‘나는 가치가 없어’라는 생각이 지속되다가 이것이 더 발전하면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할 거야’라고까지 갑니다. 실제 타인의 생각과 상관없이 자의적인 판단이 망상으로까지 커집니다.

 

지금 주신 사연 내용에서도 인지적 왜곡이 보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부정적으로 평가할 이유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스스로 판단하기에 ‘저 사람이 나를 안 좋게 볼 것이다’라고 판단하고 있죠. 이러한 인지왜곡을 관계 사고라고 말합니다. 이런 생각이 심해지면 대인관계가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인지왜곡으로 인간관계가 줄어들고 고립될수록 이런 생각은 더 심해집니다. 우리는 대인관계를 통해 나의 왜곡된 다양한 생각을 다른 사람의 생각과 비교하고 공유하면서 필요 없는 왜곡된 생각들을 지워냅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의 생각은 일정 부분 객관적인 생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낮아진 자기 가치감으로 인해 부정적인 인지왜곡이 생기면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그러면 인지 왜곡은 보다 악화됩니다. 인지왜곡이 악화되면 망상 수준으로 빠집니다. 그러면 대인관계를 극단적으로 꺼리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인지왜곡은 우울증에서도 동반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지왜곡이 악화되어 망상 수준에까지 다다를 때는 조현병의 징후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본인 자신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조언드리고 싶은 것은 우선 현재 자기 자신의 상황과 역량을 객관적으로 확인해 보는 겁니다. 만약 목표로 삼고 있는 고지가 바로 눈앞에 있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는 상황이라면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버텨내야 합니다. 그간 쏟아부었던 노력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그리고 조금만 더 하면 휴식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온 힘을 다해서 노력을 쏟아부으셔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은 이미 정서적 소진으로 버틸 힘이 남아 있지 않은데 목표로 삼고 있는 고지가 저 멀리 있다면 일단 그 상황에서 돌아 나와야 합니다. 경쟁상황에서 벗어나 따뜻한 유대관계를 나눌 수 있는 관계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즉 끊어진 대인관계를 회복하고 자기 자신의 부정적인 인지왜곡을 끊어낼 환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신을 도와주면서 현실을 이겨나갈 지원군을 만나야 합니다. 그것이 친구, 가족이 될 수 있겠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신과적 진료를 통해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모쪼록 힘겹지만 자신의 상황과 역량을 돌아보며 자기 삶의 돌파구를 만들어 내시길 멀리서 응원하겠습니다.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인드랩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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