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어릴 때부터 싫은 걸 잘 표현하지 못했어요. 부모님은 늘 싸우셨고 마음이 불안했어요. 남의 눈치 보는 게 일상이었던 거 같아요. 살얼음판 같은 집에서 살아남으려면 쥐 죽은 듯이 있는 방법밖에 없었거든요.

저도 모르게 필요 이상으로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애써 모른 척하고 살았어요. 저 사람이 날 싫어해도 웃으면서 괜찮은 척. 저는 싫은 티조차 내지 못했으니까요. 무엇이 저를 두렵게 만든 건지... 친한 친구가 저를 이용하고 왕따 시킬 때조차 당하고만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회사생활 결혼생활... 어딜 가나 사람들과의 관계가 불편했고 애써 웃으며 괜찮은 척 노력해 봐도 저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질 못했어요. 사람들도 저를 받아주지 않았지만, 저도 사람들 속에 스며들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문득 제 성격이 문제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에요. 적당히 싫은 티도 내고, 싫어도 좋은 척 참았어야 하는 건지...

저는 살려고 한 선택인데 그 결과는 늘 혼자네요. 마지막에 제 곁에 있어 줄 사람이 있기나 한 건지... 어디까지 받아주고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부모조차 저를 받아주지 못했는데 타인이 저를 온전히 받아줄 수 있을까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한 사람에게,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는 고통은 다른 어떤 아픔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줍니다. 그간 글쓴이님이 겪으셨어야 할 아픔에 대해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어린아이들은 보호자의 보호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부모의 불화와 같은 가정의 위기를 생존의 위기로 받아들입니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가정의 문제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부모가 자주 다툰다면 이를 유발할 만한 자신의 잘못, 그 사이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고,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거나, 적어도 화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또한,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릴 적 느꼈던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다시 느낄 수도 있고, 애초에 타인이 내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 인간관계 자체를 회피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글쓴이님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혹 다음과 같은 마음의 생각들이 자리 잡게 되었진 않은지를 여쭙고 싶습니다. 

‘충분히 나를 좋아한다고 확인된 사람이 아니면,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누군가가 겉으로 나를 좋아하는 티를 내더라도, 속으로는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나에게 불편한 마음을 내비치는 사람에게 큰 거부감을 가지거나 그와의 관계를 처음부터 피해버리는 마음.’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만의 가치관과 선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깊은 마음을 나누고 서로 깊이 호감을 가지기란 불가능합니다. 은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살아가면서 10명의 사람을 만난다면 그중 3명은 나를 좋아하고, 4명은 내게 전혀 관심이 없고, 3명은 나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함께하는 데 있어 좋아하는 것, 아니 적어도 싫어하지 않는 것은, 실은 필요조건이 아닙니다. 살아가다 보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서로의 필요에 의해 함께하는 경우가 많지요. 

실제로, 역으로 내 마음을 볼까요. 우리는 하루 중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중에는 몇몇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대부분은 기억도 나지 않게 스쳐 지나가고, 때로는 누군가를 속으로 미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속에는 나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보통은 이내 잊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당장 오늘 우리의 마음을 한번 돌아볼까요.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하고 ‘나는 타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에 대한 생각은 거의 없거나, 잠깐 들었다가도 이내 사라져 버렸음을 발견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글쓴이님의 마음, 경험하시는 생각들이 틀렸으니, 이를 고쳐야 대인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 마음 안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생각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한 번만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즉,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는 마음, 그리고 나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없을 때는 두려움을 느끼는 마음이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진 않은지를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드실 때는, ‘실제로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와는 상관없이, 내 마음에서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지도 몰라’라는 생각, 그리고 ‘어차피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없는데, 내가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내 마음을 무리하게 했는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한번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부모조차 저를 받아주지 못했는데 타인이 저를 온전히 받아줄 수 있을까요?’란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으로 답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온전히 받아준다는 말은, 어떠한 상황이나 조건에서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믿어준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부모를 포함하여,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를 온전히 받아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글쓴이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한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때로 타인으로부터 부정적인 감정이 주어질 수도 있음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내보이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다 보면, ‘온전히 나를 받아줄’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 삶이 아닐까 합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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