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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성인이 되었는데도 자꾸 자해를 하고 싶어요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0.02.06 00:49

[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갓 성인이 된 대학생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자해를 시작했어요. 심할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빈도가 그리 낮진 않아요. 나는 언제까지 자해를 해야 하나, 언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자해에 대한 여러 가지 칼럼을 봐도 청소년의 자해를 위주로 다룬 거밖에 없네요. 자살충동은 줄었지만 자해는 멈출 수가 없어요. 이런 경우는 자해를 줄일 수 있도록 정신과 약을 계속 먹을 수밖에 없나요?

제가 하는 자해는 심한 수준은 아녜요. 자해는 칼로 살에 낙서를 해서 가벼운 상처를 내는 정도입니다. 이걸로 죽지도 않겠지만 죽을 생각도 없어요. 이 상처로 피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고 맺히는 정도고요.

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중증 우울증 진단받고 통원치료 중인데 종종 입원을 권고받긴 해요. 하지만 저는 제가 심한 수준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입원하게 되면 제 상처들을 보고 심각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렵습니다. 저는 정말 별거 아닌 마음으로 하고 있는 거라서요.

성인의 자해에 관해서도 전문가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성인의 자해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 주셨네요. 자해를 한다고 해서 정신과 약을 오랫동안 먹어야 한다거나, 꼭 본격적인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자해는 생각보다 우리 생활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행동이에요. 화가 날 때 머리를 쥐어뜯거나, 주먹으로 벽을 치는 등의 행동 또한 따지고 보면 일종의 자해이지요. 

인간은 자신이 심하게 괴롭거나, 불안할 때 일시적인 위안을 얻고자 하는 본능적 추동이 생겨나요. 자해는 그러한 행동 중 하나예요. 실제로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자해를 할 때 뇌에서는 마약성 진통제와 비슷한 성분의 물질들이 분비됩니다. 우리가 몸 어딘가를 다쳤을 때 당장 심한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건 이러한 물질들 덕분이죠. 그러니 긴장되고 두렵고, 혹은 우울한 감정들이 자해를 통해 일시적으로 위안을 얻게 됩니다. 한 번 시작한 자해가 마치 중독처럼 이어지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해요. 

 

하지만, 자해가 위험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분명 자신을 해한다는 건 건강한 행동이라 볼 수는 없으니까요. 자해와 심한 우울의 시기가 합쳐지면 더 심한 형태의 자해, 나아가 극단적인 충동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별거 아닌 마음이라 하셨지만, 분명 반복되는 자해에는 불편한 마음이 숨어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오랜 우울함이 그 배경일 것 같네요. 반복되는 자해가 있다고 하니 자해 행동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은 근원에 있는 감정들을 치료를 하며 다루어 나가야 합니다. 결국 그게 더욱 크고 중요한 조각이니까요.

 

DBT(변증법적 행동치료)에서는 자해나 극단적인 행동에 대한 충동을 '파도가 오가는 것'으로 여기라 합니다. 우리 마음은 분명 밀물과 썰물이 교차되는 파도와 같아요. 물결이 거세게 몰아칠 때는 모든 것이 두렵고, 불안하고, 공허하며, 우울합니다. 감정의 밀물은 우리에게 자신을 해하도록 몰아붙이지요. 하지만, 그 충동과 감정은 썰물처럼 분명 지나갑니다. 그러니 우리는 밀물이 썰물로 바뀔 때까지 견디는 방법들을 찾고, 연습해야 하는 것이지요.

촉각, 후각, 미각 등 오감을 통해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 방법,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거나, 당장 나가서 바람을 쐬고 오거나, 이전에 즐거웠던 추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훑어보는 등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방법들이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행동들을 반복하며 파도가 '왔다 가는' 경험을 하면서 굳이 파도의 밀물에 떠밀려 행동할 필요가 없구나, 여러 감정에 대해 꼭 자해로 끝맺음할 필요는 없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거죠.

 

물론 감정이 격앙된 상태가 지속 중이라면 정신과 투약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약물 치료나 입원 치료 또한 회복을 위한 과정일 뿐, 결국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삶에 건강한 것들을 채워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부디 이러한 부분들을 고민해 보신다면 좋겠습니다.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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