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에게는 누나 한 명이 있습니다. 일상에 간섭과 구박이 정말 자살충동이 들 정도로 심해서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독립을 해도 후유증이랄까요... 아직도 생활하는 데에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부터입니다. 새로운 여자 친구가 누나랑 정말 똑같은 사람입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사소한 것에 시비가 붙고 대화도 안 통하고, 자기 고집이 어찌나 센지... 한바탕 싸우고 나면 ‘나는 왜 살고 있는 건지’라는 생각밖에 안 납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습니다. 왜 이런 악연이 반복될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신림평온 정신과 전형진입니다.

사연주신 분의 이 상황이 드문 상황이 아니에요. 술 먹고 때리는 아버지가 있고, 그런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만나게 되는 사람이 비슷한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경우가 꽤 있거든요. 이런 반복되는 상황을 반복강박이라고 해요. 성장과정에서 상처를 입었던 과정을 성장을 한 이후에도 반복하는 것을 의미해요.

사람은 누구나 성장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가지게 되고 그것에 익숙하게 돼요. 그래서 나에게는 마음이 편하게 느껴지고 익숙하다 보니까 선택하기 쉽게 되는 것과 같아요. 인지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따지지 못하고 자동적으로 선택을 한 거예요.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는지 이전에 내가 이것이 문제라고 인식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이 문제의식은 변화를 하기 위한 시작이에요. 그 후 이런 일이 과거에도 있었는지, 내가 어렸을 때 받았던 느낌이나 현재의 느낌이 비슷한지 생각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이런 경우에는 짧은 상담이나 약물치료로 치료하기보다,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되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해요. ‘이런 부분은 잘못됐으니 고치세요.’와 같은 지시적인 상담으로 고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치료자와 관계를 통해서 지금 힘든 관계를 상담실에서 반복하면서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죠. 약물치료는 불편한 감정을 가라앉히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왜 이것을 반복하는지 인지하는 데에는 추가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해요.

나에게 어디서 문제가 생겼고 그래서 이런 결과가 반복된다고 파악하는 것은 찾다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그것을 이해했다고 해서 한 번에 좋아지지 않습니다. 만약 이렇게 쉽게 바뀔 것이라면 서점에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심리서적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져야 맞아요. 결국 이것의 큰 문제는 나에게 익숙하다는 거예요.

 

재발의 문제가 염려된다면 검진을 받고 치료를 받는 것이 나아요. 정신의 문제는 개인의 정신적 취약성, 환경이 주는 영향이 한데 맞물려 나타나요.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상황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살펴보는 거예요.

사람의 무의식을 들여다본다고 하면 환자분들은 너무 모호하고 개념이 잘 잡히지 않는 것이 대부분일 텐데, 무의식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죠. 불편한 순간마다 어떤 생각을 떠올렸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는 거예요. 생각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이 제법 있거든요. 여기서도 이미 굳어져 버린 생각의 틀이 있으면 매번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자동화됐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상담실에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같이 고민해보는 거예요.

 

전문의를 찾을 때 내가 눈치 보지 않고 내 이야기를 모두 할 수 있는 치료자를 찾는 게 중요해요. 어떤 환자분들 같은 경우에는 자기의 성격 특성 때문에 해야 할 말을 못 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어요. 내가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치료자라면 환자의 말을 귀 기울여서 듣는 사람이라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느낌이 온다면 꾸준하게 방문해서 치료를 일단 받아보는 것이 중요하겠죠.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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