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문의를 드립니다.

저는 10살 아이를 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몇 년 전부터 해외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해외로 이주하면서 자녀교육을 엄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동안 아이에게 강박적인 언행을 많이 했습니다. 예를 들면 '텔레비전 시청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공장소에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좋지 않다.' 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직장 생활 중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신경질적 반응을 많이 보였습니다. 그로 인해 아내, 특히 아이가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학교 생활을 외국에서 시작하면서 아이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미쳐 헤아려 주지 못하고 많이 나무라고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해주고자 했던 훈육에 많은 상처를 입은 것 같습니다.

 

작년 겨울 처음으로 아이가 잠을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머리가 아프다고 하다가, 이상한 기분(무서운 기분이라고 설명함, 머리가 뱅글뱅글 어지럽고 심할 때는 몸을 동동거리는 수준임)이 든다고 하면서 5분 정도 무서움을 호소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곧 잠자리에 들어서 잠을 잡니다. 빈도가 잦아져 한국에서 뇌파 측정을 했으나 정상 소견이었으며, 심리 상담 센터도 방문하였습니다.

심리검사 및 상담 결과 강박적인 가정환경으로 인한 심리적 상처가 심하고, 부모들과의 교감상태가 현저히 떨어져 있으며, 초기 우울증의 증세로 확대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범불안증의 증세가 보인다는 진단에 따라 약 두 달간 상담치료를 하였습니다.

외국으로 다시 나온 후 센터장의 조언대로 아이가 마음을 자세히 듣는 시간을 가지는 등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후 몇 달 정도 증세가 호전되었으나, 며칠 전부터 동일 증상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글로 설명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지만, 이런 증세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의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힘들어하는 아이를 바라보다 보면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고 속상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합니다. 어린아이를 둔 같은 아버지의 입장에서 글쓴이님께 진심으로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살아가는 환경의 변화는 어른에게도 큰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하물며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으로의 이주는 더욱 힘들겠지요. 아직 사회적 기술이 미숙하고 대인관계나 삶에 대한 가치관이 명확히 확립되지 않은 아이의 입장에서 적응이 훨씬 힘들 수 있겠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주가 무조건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이가 얼마나 힘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마 글쓴이님도 십분 공감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경우 스스로의 감정을 파악하고 이를 표현하는 것이 성인들보다 미숙합니다. 당연히 아이들도 마음의 상처를 받고 아픔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러한 감정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슬픔이 어른들처럼 깊은 고뇌나 우울보다는 짜증이나,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신체적인 불편함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아이를 대할 때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전달할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왜 열심히 해야 하는지 등등을 어떻게 전해줄 것인지, 어떤 말을 해 줄 것인지를 늘 고심합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감정이 전달되는지’입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만의 가치관을 만들어가고 삶을 이루어갈 것입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아이를 잘 인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시기에 아이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의 토대를 다져주고 마음의 힘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물론 없겠습니다만, 조금 더 깊이 이야기하자면, 아이에게는 ‘느낄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언제나 느껴지는 부모의 애정, 관심을 기반으로 아이는 스스로의 마음의 토대를 다집니다. 이러한 토대가 부족할 때 아이는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 한구석이 공허하고 불안하거나 우울할 수 있습니다.

 

보통 부모는 평소에는 무던하다, 아이가 아파하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일 때 크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늘 부모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확인’입니다. 

여러 신체적 검사에서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현재 아이가 호소하는 증상은 심리적 상태에서 기인하였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아이가 몸을 통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이렇듯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 자체에만 신경을 쓰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까를 고민하는 방향보다는, 증상의 유무와 관계없이 어떻게 아이에게 늘 일관된 관심과 애정을 전해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증상은 아이의 마음 상태를 표현하는 일부의 현상일 뿐입니다. ‘증상’ 보다 ‘아이’ 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 늘 부모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훈육에 대해서는, 아이에게 전달되는 이야기보다 ‘전달되는 감정’ 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두고 늘 칭찬하고 웃어만 주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돼, 만약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너는 부모의 분노와 외면을 마주하게 될 거야’라는 메시지와 ‘나는 너를 너무도 사랑해. 이런 일은 네게 이런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그래서 걱정이 돼.’라는 메시지에서 아이가 느끼는 정서는 전혀 다르겠지요.

그래서 아이를 대할 때 부모는 스스로의 마음을 잘 돌아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마음의 여유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따뜻함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는 짜증 나지 않을 만한 일에도 짜증이 나고, 쉽게 넘길 수 있는 일에도 화가 나곤 하지요. 하지만 배우자, 친구와 같은 성인과 달리 아이는 이러한 전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전해지는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도 어른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집니다. 아이를 대할 때 조금 더 섬세히 우리 마음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늘 완벽히 감정을 조절하고 아이에게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럴 수도 없겠습니다. 그러나 나의 불편한 마음이, 아이에게 훈육이라는 명목 아래 ‘숨어서’ 전달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서는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훈육에 대해 첨언하자면, 훈육은 늘 일관된 원칙 아래에서, 일관된 정도의 격려나 훈계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이는 혼란함을 느끼고, 만성적인 불안이나 우울함을 겪을 수 있습니다. 혹 아이에 대한 가르침이 나의 기분이나 마음 상태에 따라 그 기준이나 (어떨 때는 기분이 괜찮아서 넘어갔지만, 어떨 때는 똑같은 일에 대해서 혼을 낸다든지) 감정 전달의 정도(같은 일에 대해서 질책하는 정도가 많이 다르다든지)가 달라지고 있지는 않은지도 잘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우주입니다. 저도 한 아이의 아빠 된 입장으로서, 때로는 그러한 사실이 너무도 큰 부담으로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직장과 이주, 양육... 글쓴이님께도 여러모로 힘든 일이 많으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쓴이님께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 마음 그대로 아이에게 전해져 글쓴이님과 아이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웃음으로 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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