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1년 전 키우던 강아지를 사정상 입양을 보내게 됐습니다. 사정이 있어 입양을 보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란 걸 뭇매 맞을 일이란 걸 압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시골에 마당 있는 집으로 보냈는데 입양자분께 청천벽력 같은 얘길 들었습니다. 집에 아이를 물어서 그냥 개 농장으로 보냈답니다.

제가 바로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애초에 입양을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놈의 사정이란 게 뭐라고... 소중한 가족 같은 아이의 손을 제가 놓아버렸습니다. 1년이 지났는데도 그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어서 매일 죄책감에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하게 있게 되고, 그 아이를 내가 불행하게 만들었는데 내가 행복할 자격이 있을까? 하면서 하루하루 미안함과 죄책감에 의욕도 없고, 차라리 제가 그 아이가 받았던 고통, 아픔, 상처, 외로움 다 제가 되돌려 받고 싶을 만큼 웃을 자격도 먹을 자격도 없는 죄인이란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벼락이라도 맞아서 그 아이에게 지은 죄 천벌 받고 싶다는 마음뿐입니다. 죄책감에 살아야 할 이유도 모르겠어서 이제는 나쁜 생각까지 듭니다. 공황과 우울증, 교감신경 항진으로 약을 3년 정도 복용한 적이 있는데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볼까 하다가도, 그 아이는 나보다 몇십 배 몇백 배는 더 아프고,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럽고, 두려웠을 걸 생각하면 '나는 이래도 마땅해. 치료받을 자격도 없어.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런 생각이 하루를 지배합니다.

조심스레 글을 남겨 봅니다만,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도 자신이 너무 한심합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전형진입니다.

강아지와 관련된 죄책감으로 가지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네요.

우리는 어떤 실수를 저지르고 이로 인해서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어떤 잘못을 했다고 판단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감정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죄책감을 떨치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가끔 사람들은 스스로를 필요 이상으로 자책하면서, 그걸 오히려 편안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죄책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상황들과 그때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을 지나치게 돌아보고 후회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내가 처했던 상황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모든 문제를 내 탓으로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우울감에 빠지게 되어버리죠.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이런 죄책감에서 조금은 편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죄책감의 존재를 인식해야 합니다. 죄책감의 이면에 깔려있는 다른 감정이나 생각들을 인식하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용서를 구해야 하고 미안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든 나쁜 결과를 초래할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일을 평생 담아두고 스스로를 괴롭히도록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미안한 일이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다면 담아두기보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

죄책감을 심하게 느끼는 경우 영향을 받는 뇌의 어떤 부분이 소아 우울증과 관련 있는 부분이라는 연구가 있습니다. 지나친 죄책감은 우울감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고, 사연을 올려주신 분의 상황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고, 우울증과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가게 된다면 반드시 상황에 대한 평가나, 죄책감을 다루는 것에 대해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부족한 답변이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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