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직장인입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어요. 이혼할 때 안 좋은 과정을 초등학교 때 지켜봤고, 그 후 할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고지식한 분들이라서 대화에 어려움을 많이 겪으면서 감정적으로 힘들게 자라 왔어요. 지금은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할머니 등등 누군가 가족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왜 눈물부터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니 이혼의 아픔이나 가족 관계에 있어서 어른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상황도 이해가되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눈물을 참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지만, 가족 이야기만 하면 수도꼭지를 튼 것마냥 계속해서 눈물만 납니다.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눈물이 안 날 수 있을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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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을 겪고, 이후에 한쪽 부모님 및 그 가족과 함께 지내 오시면서 그간 많은 고충과 심적 어려움이 있으셨던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아이들이 이혼을 받아들이는 심리적 변화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심경과 유사한 단계로 진행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Bryner) 그만큼 ‘부모의 이혼’이라는 사건은 사연자님께도 받아들이기 힘들뿐더러 심리적 고통을 안겨 준 사건이었을 겁니다.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아이들이 겪는 심리 변화는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단계로 진행됩니다. 물론, 아이들에 따라서 이 단계가 반드시 순차적으로 진행되거나 모든 단계를 다 거치지는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보통은 이 단계를 밟는다고 하니 과거 사연자님의 마음을 이해해 보는 데 참고하신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부정 단계: 부모가 이혼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 하며, 헤어졌다면 다시 합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결합의 공상은 수년간 지속됩니다.

2. 분노 단계: 양쪽 부모와 다 같이 살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부모에게 분노를 느끼며, 이와 관련해 종종 행동화 문제를 보이기도 합니다. 학령기 아동의 경우 화를 내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3. 타협 단계: 자녀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변화시켜서 이혼에 의한 상처를 치료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런데 학령 전기 유아들의 경우, 특히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부모 중 한 명이 떠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므로, 부모가 이혼한 것은 절대로 아이들의 잘못 때문이 아님을 잘 설명해 주고 안심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4. 우울 단계: 생활 전반에 걸쳐 우울하고 슬픈 감정이 나타납니다. 학령기 아동의 경우, 학교생활에서 문제 행동을 나타내거나 어려움을 보일 수 있습니다.

5. 수용 단계: 부모의 이혼이 어쩌면 최선책이었으며, 차라리 같이 사는 것보다 떨어져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인정하면서 혼란스러웠던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됩니다. 대부분 연령대가 높은 아동이나 청소년기, 성인기 자녀에게서 나타납니다.

 

어떠신가요? 그 시절, 사연자님의 심경과 유사한 부분이 많이 있으신가요? 사연글에 밝혀 주신 내용만으로는 부모님의 이혼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어떻게 해서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셨는지, 이후의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나 할머니 혹은 어머니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살아오셨는지 세세히 알 수는 없지만, 부모님께서 이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친가 쪽 어른들과 생활하며 “감정적으로 힘들게 자라” 왔다고 적고 계신 점으로 미루어 보아, 부모님의 이혼 이후에도 상처받은 마음이 제대로 치유되지 못했거나 불편한 감정 등이 지속됐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무엇보다 부모님께서 이혼을 결정하기까지 그 과정은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사연자님께도 굉장히 아프고 힘든 시간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부모님의 이혼을 경험한 많은 아동들이 부모님 간의 다툼이나 폭언 등에 노출되어 높은 불안감과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부모님은 자녀의 불안과 슬픔을 이해하며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도울 필요가 있음에도, 때로 자신조차 감당하기 힘든 현실 앞에 미처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잘 보듬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또한 사연자님께서는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슬픈 현실을 받아들일 새도 없이 한쪽 부모를 택하고, 한쪽 부모와는 물리적으로 분리될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상황에 처해졌을 테지요. 반면에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을 겪으며 사연자님께서 느꼈을 불안과 슬픔, 좌절과 무기력감 등 부정적 감정들은 적시에 표현되지 못하고, 사연자님께 필요했을 위로와 정서적 지지 등은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제때에 표출되지 못하고 억압하거나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부정적 감정과 내면의 상처들은 사연자님의 마음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여서 언제고 터져 버릴 수밖에 없는 응어리가 되었을 겁니다.

 

사연자님께서 적어 주신 내용을 보면, “눈물을 참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이때 사연자님의 눈에 고인 ‘눈물의 의미’는 사실, 다른 그 누구보다 사연자님 스스로 가장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른들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인해 한쪽 부모와는 하루아침에 떨어져야 했던, 그 이후로 친가 쪽에서 생활하게 됐지만 자신의 마음은 잘 이해받거나 공감받지 못하고 오랫동안 외롭고 힘든 마음을 간직한 채 성장해 온 자신에 대한 연민과 슬픔 같은 감정들이 눈물이라는 형태로 표출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럼에도 흐르는 눈물을 한바탕 시원하게 쏟아 내지도 못하고, 애써 참으려고만 했을 사연자님의 심정은 떠 어떠셨을지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에 더해 지금까지도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계신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힘든 일들이 닥쳐옵니다. 그런데 힘든 상황을 겪은 사람의 마음이 힘들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이라고 할 있습니다. 

따라서 사연자님께서 과거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가족’ 이야기나 그때의 일들을 떠올렸을 때 눈물이 고이거나 “수도꼭지를 튼 것마냥 계속해서 눈물만” 흐르는 것을 억지로 그치게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그동안 묵혀 왔던 가슴속 응어리를 조금씩 도려내는 시작점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러니 터져 나오는 눈물을 애써 참지 마시고 시원하게 한바탕 울어 보세요. “엉엉” 큰소리를 내서 우셔도 좋고, 그동안 가슴속에만 담아 뒀던 원망의 말이든, 외롭고 슬펐던 마음들의 표현이든 함께 쏟아 내셔도 괜찮습니다. 혼자가 편하시다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과 공간에서, 지금 사연자님께서 가장 위로받고 싶거나 사연자님을 따뜻하게 안아 줄 누군가가 계시다면 그분께 함께여도 좋겠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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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자님께서는 “성인이 되니 이혼의 아픔이나 가족 관계에 있어서 어른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상황도 이해가 되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질문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서 마음까지 괜찮은 것은 아닐 수 있어요. 심리학에는 ‘정서적 고착’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신체와 지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달하지만, 어린 시절 중요한 애착 대상으로부터 필요한 정서적 지지나 공감을 제대로 받지 못할 때, 정서는 상처받은 그 시점에 머물러 있는 것을 뜻하지요. 

따라서 지금 사연자님께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부모님의 이혼 과정과 지나온 성장 과정에서 힘들었던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려 재해석하고 스스로 어린 시절의 사연자님, 즉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상처를 공감하고 위로해 주며 따뜻하게 안아 주는 겁니다. 참고로 여기서 ‘상처받은 내면아이’란, 우리의 정신 속에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내 안에 상처받고 웅크리고 있는 나를 뜻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그래서 그들의 입장을 너무 배려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사연자님의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시점에 초점을 맞춰서 당시 부모님이나 할머니 등에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들, 그 감정들을 표현해 보시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말로 표현하거나 소통하기 힘들다면 글로 써 보시거나 편지 형식으로 적어 보셔도 괜찮습니다. 또 기록한 편지를 상대에게 전달한다면 더 좋겠지만, 그만한 용기가 나지 않거나 전후 사정상 여의치 않을 때는 꼭 전달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사연자님의 솔직한 마음,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표현해 본 것만으로도 조금이나마 홀가분한 마음을 느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이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사연자님께 중요한 대상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자꾸만 해 보시는 것은 그간 묵혀 왔던 부정적 감정이나 상처받은 마음을 조금씩 치유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연자님께서 잘 알고 계시겠지만, 눈물에는 마음을 정화시키는 기능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한바탕 펑펑 울고 나면 어느새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후련해지는 기분을 느껴 보셨을 겁니다. 이렇듯 눈물은 우리 마음속에 억압된 부정적 감정을 희석시켜 줍니다. 실제로 눈물을 흘린 후에는 아드레날린이나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크게 줄어든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 두 호르몬이 감소하면 상대적으로 몸의 면역력까지 증가하게 됩니다. 그러니 너무 많이 울어서 이제는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다고 생각될 때까지 마음껏 울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눈물이든, 글쓰기든, 편지든, 속에 있는 말을 밖으로 꺼내어 이야기해 보든, 어린 시절 많이 아팠지만 차마 꺼내 놓지 못하고 속으로만 꾹꾹 눌러 왔던 사연자님의 마음을 조금씩 밖으로 풀어내고 보듬다 보면 어느덧 슬픔의 눈물 대신 마음속에 평화와 기쁨이 깃드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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