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인간관계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 표정 속에 드러난 진심이 무엇일까 고민해 본 적, 아마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면 상대방이 직접 표현하지는 않지만 어딘지 불편하거나 다른 속뜻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추측한 것이 맞는지 혹은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하고 말입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다 보면 언어적인 소통만 아니라 몸짓, 표정, 자세, 목소리 톤과 같은 비언어적인 소통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인 앨버트 메라비언은 ‘메라비안의 법칙(The Law of Mehrabian)’을 통해 소통에서 목소리가 38%, 보디랭귀지가 55%를 차지하는 반면, 말하는 내용은 7%만 차지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에 집중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깊은 의미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타인의 언어, 표정, 행동 등을 잘 읽고 태도, 욕구, 의도 등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소통 기술 중 하나입니다.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대인민감성(Interpersonal Sensitivity)’라고 합니다. 

 대인민감성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잘 파악하지 못하는 타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섬세하게 읽어내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쉽게 알아차립니다. 대인관계에서 이를 잘 활용하면 센스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나아가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채워 주기까지 한다면 배려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반면 대인민감성이 낮은 사람은 언어적으로 직접 표현되지 않은 뉘앙스나 분위기, 상대방의 의도를 잘 읽지 못하거나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심하거나 무던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눈치 없어 보일 때도 있지만 그만큼 타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파악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기 때문에 본인은 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대인민감성 역시 지나칠 때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대인민감성이 너무 높으면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타인의 사소한 행동이나 말투에도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피하고, 거절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또, 과도한 수줍음과 회피, 타인의 의도에 대한 비관적 해석과 자기 세계에 매몰되는 모습을 띠기도 합니다. 반대로 대인민감성이 지나치게 낮으면 자기중심적이거나 차가운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배려가 부족하며 관계 안에서 사회적 단서(social cue)를 파악하지 못하여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많은 선행연구에서는 특히 지나치게 높은 대인민감성이 신경증, 완벽주의, 사회불안, 우울증과 같이 다양한 심리적 어려움과도 연관성을 보이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나친 대인민감성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대인민감성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1. 지나친 가정(assumption) 하지 않기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신호들은 어디까지나 ‘신호’입니다.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해석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의 말, 표정, 행동, 말투 등을 통해 느낀 것이나 생각한 것은 ‘사실(fact)’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입니다. 확신할 수 없는 상대방의 생각, 감정, 의도를 과도하게 가정하여 상처받거나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력해 봤지만 여전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괴롭힌다면 상대방에게 내가 받아들인 것이 맞는지 직접 확인해 볼 수도 있습니다. 단, 이때 공격적이거나 분노에 산 상태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2.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기

 대인민감성이 높은 분들은 상대방의 의도나 상황에 대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실수해서 망신당할 것이라든지, 상대방이 내가 싫어서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이라든지 사고의 중심이 자신에게 쏠려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으며, 상대방의 기분이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궁무진합니다. 안 좋은 결과를 상상하거나 나에게서 원인을 찾는 습관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3. 억누르기보다 표현하기

 대인민감성이 높으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억제하고 표현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기 쉽습니다. 내 생각이나 감정을 나눠도 타인이 이해하지 못하며, 평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마음을 나누고, 타인이 나를 알아갈 기회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입니다. 삶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만남과 새로운 경험을 스스로 차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사람들부터 시작해 점차 범위를 넓히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연습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맞춰 주기 위해 노력했던 에너지를 이제 자신에게 쏟아보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 생각과 기분에 초점을 맞추고 온전히 인정해 주며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적당한 눈치와 배려는 인간관계에서의 미덕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불편하게 만드는 독이 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타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전혀 읽지 못하고 맥락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것 역시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적절하게 읽고 반응하면서도 나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을 때, 대인민감성이 건강한 관계를 위한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연주를 듣는 것 같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많은 사람이 도움 받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