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이 말해 주는 것들

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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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떠진 눈, 확장된 동공, 추켜진 눈썹과 앙다문 입술. 혹시 이런 표정을 한 사람의 현재 감정 상태, 어떤 마음일지 추측 가능하신가요? 정답은 ‘공포심’입니다. 바로 ‘공포’라는 감정을 느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짓는 표정인데요, 우리는 누군가의 표정을 통해 그 사람의 현재 감정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표정은 그가 지금 몹시 화가 났다거나 슬픔에 잠겼다거나 행복한 감정 상태라는 것을, 굳이 말이라는 음성 기호를 통하지 않고서도 얼굴을 통해 드러내 줍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감정과 표정 연구의 대가인 폴 에크먼Paul Ekman은 인종이나 출신 지역과 상관없이 사람에게는 똑같은 얼굴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보편적인 일곱 가지 감정이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에크먼은 자신의 연구 초기에는 얼굴 표정이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계속된 연구 끝에 그는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이 타고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죠. 

에크먼은 표정 연구를 위해 석기시대 정도의 문명 수준을 유지하는 파푸아 뉴기니 지역의 포어(Fore) 부족을 상대로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민족의 사람들 사진을 보여 주고 어떤 감정인지 읽어 보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그는 모든 인간이 분노, 혐오, 공포, 행복, 슬픔, 놀라움 그리고 경멸이라는 핵심 감정을 공유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에크먼이 언급한 이 일곱 가지 핵심 감정은 그 감정이나 표정이 비교적 명확하고 강렬할 때 드러나고 또 감지되는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표정이 수 초간 지속되는 것을 ‘거시 표정(macro-expressions)’이라고 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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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상에서 우리가 짓는 표정들은 명확하게 감정을 얼굴로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대부분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사실 상대방은 물론 스스로도 순간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나 표정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지요. 이처럼 감정을 강하게 억제하거나 숨기고 싶을 때 얼굴에 흐리게 나타나는 표정을 ‘미세 표정(micro-expressions)’이라고 합니다. 이 표정은 보통 사람들은 잘 감지하기도 어렵고, 인식했다고 해도 그 표정이 담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 미세 표정을 잘 알아차리고 해독할 수 있다면 타인의 감정에 대해 더 세심한 이해가 가능할 텐데요, 이러한 능력은 학습과 훈련을 통해서 기를 수 있다고 합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홉킨튼에 사는 젊은 엄마와 생후 9개월 된 딸이 총기 살해를 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법정 재판이 있던 날, 희생자들의 남편인 엔트위슬은 얼굴을 약간 가리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변호인은 그가 평소에 얼마나 가족을 사랑하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는지 열심히 변호했지만, 이 재판 영상을 판독한 보디랭귀지 전문가 재닌 드라이버Janine Driver울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 전혀 슬픔의 감정을 읽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순간적인 그의 표정에서 그의 눈이 활짝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또한 진짜 미소와 가짜 미소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 중 한 가지는 미소를 짓는 시간이 3분의 2초 미만 혹은 4초 이상일 때 거짓 미소일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렇게 위장된 슬픔이나 거짓 미소, 숨은 분노 등을 드러내는 미묘한 신호는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을 보이며 일순간 스쳐 지나가기 때문에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워싱턴 대학교 심리학과 존 고트만 박사John Gottman 박사는 어떤 신혼부부가 결혼생활을 지속할지, 아니면 4~6년 후에 이혼할지를 90퍼센트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고 했는데요, 이때 주요한 판단 기준이 바로 ‘배우자 중 한쪽이라도 무의식적으로 경멸감을 드러내는가’와 관련 있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얼굴 표정에 경멸감을 잘 드러낼수록 부부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고, 이혼을 예측할 만큼 강력한 신호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듯 얼굴 표정에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은 상대의 감정이나 정보를 알려 주는 암호가 숨겨져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대의 인상이나 표정에 근거한 순간적인 암호의 판독이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닙니다. 상대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에는 늘 그렇듯 판단 오류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죠. 이런 오류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매일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스치거나 마주하게 되는 현대인들에게 짧은 시간 안에 얼굴 표정을 스캔하고 순간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자기방어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누군가의 얼굴에서 그에 대한 정보를 읽어 내는 것처럼, 상대도 우리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판단하려 할 텐데요, 지금 여러분의 얼굴은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여러분의 평소 표정이 궁금하다면 의식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사진을 찍고, 그 사진 속 표정을 살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 같네요. 

어떠신가요? 사진 속 여러분의 모습은 이마가 매끈하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나요? 아니면 미간은 찌푸려져 있고 입매가 처져 있나요? 만약 후자에 가깝다면 사람들로부터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늘부터 거울 앞에 서서 밝은 표정을 연습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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