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그저 작은 친절이 필요할 뿐

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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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아이의 등굣길에 마주치는 아파트 단지의 청소부 아주머니가 있습니다. 이 아주머니께서는 항상 눈길이 닿을 때마다 다정하게 웃으면서 먼저 인사를 건네주십니다. 그냥 아침에 이웃과 나누는 평범한 인사일 뿐인데, 왠지 모르게 이분과 인사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주머니의 눈은 항상 웃고 있습니다. 또 목소리는 경쾌하면서도 다정함이 묻어납니다. 이렇게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누는 일이 하루에 얼마나 있는지 곰곰 생각해 보니 안타깝게도 별로 없더군요. 그보다는 형식적인 인사가 대부분입니다. 서로 인사가 오가면 그나마 다행이고요.

또 우리는 일상에서 누군가의 무례함이나 불친절함으로 인해 기분이 상하거나 불쾌해지는 경험도 종종 하게 됩니다. 운전이 서툴러 자동차를 빨리 빼지 못하는 앞 차의 운전자를 향해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 대는 소리는 다른 운전자들까지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무례하거나 불친절한 태도로 대할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상대에게 똑같이 날을 세우거나 더 큰 무례함으로 반응합니다. 그렇게 맞대응한들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도 말이죠. 오히려 기분만 더 상할 뿐입니다.

이렇듯 누군가의 무례함은 다른 누군가에게 더 큰 무례함을 낳곤 합니다. 수많은 연구 결과가 무례함에 전염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희망적인 것은, 친절함 역시 전염성이 있다는 것이죠. 스코틀랜드 과학자 데이비드 해밀턴David R. Hamilton 박사는 친절함은 좋은 쪽으로 전염되는데, 한 사람이 친구에게 친절한 행동을 베풀면 세 단계에 거쳐 친절이 확산된다고 합니다. 즉, 친절한 행동에는 파장 효과가 있고, 친절을 베푸는 사람과 그 친절을 받은 당사자는 물론, 친절을 목격한 사람에게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의 친절이 더 많은 친절로 이어지며, 친절한 행동 자체가 스스로 촉매제로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호의나 친절을 베푸는 것은 그 대상은 물론이거니와 당사자에게도 무척이나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합니다.

해밀턴 박사는 친절한 행동이 건강을 증진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친절이 미치는 건강상의 이익에 관해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친절한 행동을 할 때는 뇌에서 도파민(dopamine) 분비가 증가하고, 때때로 옥시토신(oxytocin)을 분비시켜 심혈관계에서 활성산소와 염증 수치를 줄이고 심장병 발병을 감소시킨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또 이러한 활성산소와 염증의 감소는 인체의 노화를 늦추는 기능도 한다고 하니, 작은 친절의 힘이 실로 위대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친절은 누군가의 어두웠던 마음을 환하게 하고, 냉기가 돌던 가슴에 온기를 전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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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누군가의 호의나 친절에 구겨졌던 마음이 펴지거나 깊은 감동받았던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친절의 유익성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지만, 정작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우리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데는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일단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잘 관찰해야 합니다. 항상 주변을 의식하기보다 자기만의 생각이나 감정에 골몰하는 편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채지 못하고, 결국 친절을 베풀 기회도 놓치고 맙니다. 또 유독 피곤한 날이나 피로가 만성화된 분들도 친절을 베풀기가 힘들어집니다. 

의외로 두려움도 친절한 행동을 하는 데 방해가 되는 감정입니다. 타인에게 호의나 친절을 베풀고 싶지만, 상대가 거절하거나 별로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주춤거리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마땅하지만, 자신이 남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애초에 잘 하지 않기도 하죠. 아니면 사람을 봐 가며 선택적인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진정한 의미에서 친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친절이란, 보상을 원하거나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친절을 베풀기 힘든 상태일 때는 먼저 소진된 에너지를 회복하고 여유를 되찾는 것이 순서입니다. 몸과 정신이 고갈된 상태로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기란 힘든 일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우리는 매일 아침, 혹은 매 순간 친절한 태도와 무관심 혹은 불친절 행동 중 무엇을 행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호감 어린 표정과 감사의 제스처, 작지만 선한 행위나 도움을 매일 조금씩 선택해 나간다면, 여러분도 저도 일 년 뒤, 10년 후엔 조금 더 친절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란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봅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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