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4일. 

 

느리게 걸으며 명상하기. 

걷기. 

언제 마지막으로 ‘걸어’봤는가?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최적의 (거리 혹은 환경) 동선으로 걸은 것을 제외하고, 내 몸을 위해, 내 정신을 위해 오롯이 ‘걷기’를 한 것 말이다. 나는 2년은 된 것 같다. 2년 전에 삼청공원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이런 걷기를 언제 했지?’하는 똑같은 질문을 되뇌며 걸었더랬다. 그때 꽤나 시끄러운 새소리와, 작은 물소리, 점점 가빠 오는 숨소리, 터벅이는 발소리. 그렇게 소리와 약간은 부담되는 발목과 온갖 생각이 왔다가 나갔다 하는 머릿속을 조합하느라 바빴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노력해서 천천히, 최대한 천천히 누리며 걸었다. 숲과 시간과 공간을 누리며. 

 

만개한 산딸나무
만개한 산딸나무

첫 시간에서도 걸으며 명상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가만히 앉아 명상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 명상이라면, 사실 그것은 좀 따분하고 접근하기는 쉽지만 그만두기도 참 쉽다. 그래서 준비해주신 것이 ‘느리게 걸으며 명상하기’ 발을 최대한 느리게 떨구며 들어오는 생각을 막지 말고, 나가도 금세 나가도록 하며 천천히 최대한 느리게 걸어 보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내가 마지막으로 이런 걷기를 언제 했지?’하는 똑같은 질문을 되뇌었고, ‘2년 정도 됐구나. 나는 나에게 참 시간을 쓰지 않는구나.’ 했다. 

딱딱한 흙 길을 걷게 됐는데 안 걷다 걸은 탓인지, 작은 나의 지병 탓인지 허리가 조금 당기듯 아팠다. 아프다는 감각까지 모두 느끼며 걸었다. 이런 시간이 나에게 자주 주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짐작이 들었다. 앉아서 쉬고, 누워서 쉬고, 그러는 일들은 많아도 걸으며 쉬는 일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 같다. 

 

문어 같은 모양의 자엽중산국수나무
문어 같은 모양의 자엽중산국수나무

10대, 20대에는 아주 많이 걸었다. 신발도 가리지 않고 (물론 하이힐을 신지는 않았지만) 몇 킬로미터이고 걸었다. 도심을 활보하며 걷기도 하고, 숲을 걷기도 했다. 걷고 걷고, 못생기게 발에 물집이 잡혀도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걸었다. 우울증이 아주 심각해지며 걷는 일은 서서히 줄어들다 어느덧 멈추게 되었다. 걸으며 사진도 수없이 찍고, 명상도 많이 했는데, 그 모든 것이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몇 킬로미터에서 고작 시야에 다 보이는 몇 평 내 방이 전부가 되었다. 그것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나의 몸부림이었다. 나는 나가지 않기도 했지만, 정작 나가면 우울증 때문에 걸으며 무엇을 할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돌발적 인간으로 변하기도 했다. 

빠르게 달리는 차를 보며 아찔한 상상을 하기도 했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KTX열차가 지나가면 몸이 그쪽으로 휘청, 거리기도 했다. 모든 루프탑 식당은 궁금해하지도 말아야 했고, 홀로 과한 음주를 할까 염려되기도 했다. 때론 전화를 끄고 나가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기도 했다. 

하나같이 모두 돌발적이고, 일시적인 큰 충동이 일어나는 우울증 증세들이었다. 나는 내가 무서웠고, 나를 보호해야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서웠다. 군집한 사람의 형상은 나에게 공황장애의 증상들을 하나씩 꺼내 놓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살짝 이마와 손바닥에 땀이 나고, 더워서 그런가? 하는 사이에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시야가 흔들리며 흐릿해지는데, 이때부터 나는 급하게 홀로 숨을 곳을 찾는다. 이때 찾지 못하면 오장이 뒤집어지는 고통 속에서 쓰러져 바닥을 기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주말과 연휴, 황금연휴 같은 모두가 반기는 날들에 칩거한다. 

 

산 속 거센 고사리
산 속 거센 고사리

 

부처님 머리를 닮았다 해 지어진 불두화
부처님 머리를 닮았다 해 지어진 불두화

산책 명상이 끝이 나고, 이 시간을 단어화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어떤 감정이 일어나면 글로 써두는 것이 좋다. 감정을 구체적으로, 최대한 적확한 단어를 찾아 글로 써두는 연습을 하면 내 감정을 카테고리화 하기도 좋고, 같은 감정이 들어도 혼란스러움이 줄어들기도 한다. 

이렇게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연습’은 불확실한 감정에 테두리를 쳐서 포괄적인 감정의 상태를 조금 더 ‘판단 가능한’상태로 준비시켜 두는 것이다. 이 과정으로 이유 없이 느끼는 불안함을 줄일 수 있다. * (참조:『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정정엽 저, 다산초당.)

우리는 순간마다 모호한 감정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들은 카테고리화되어 있고, 분명한 단어로 특정 지을 수 있다. 부정확하고, 비정기적이고, 불확실한 모든 것들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면, 나는 나를 정확하고, 비교적 정기적이고, 상대적으로 확실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환경을, 감정을,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생각하고,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포괄적인 단어에서 구체적이고 날카롭게 알맞은 단어로 찾아 나서는 것, 그것이 나의 마음을 보듬어 안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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