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2) - 마지막 회

나의 상태는 나도 따라잡기 힘들었다.

상담에서 기계적인 답변만을 계속할 때였다. 그때쯤 나는 병원을 ‘약 타러 가는 곳’ 정도로 생각했다. 어떤 위로도, 치료도 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어쩌면 그걸 같이 느끼셨던 걸까. 선생님은 조심스레 평소와 다른 말씀을 하셨다. ‘입원치료’에 대한 권유였다. 화들짝 놀랐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다. 속으로 너무 놀랐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아-예…….’ 정도로 무마하고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여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왜 나를 다른 병원에 보내려고 하시지?’, ‘이제는 날 포기하셨나?’, ‘내 상태가 이곳에서 감당하지 못할 정도인가?’, ‘입원치료, 그거 엄청 심한 사람들이 받는 거 아닌가?’, ’어째 좀 무서운데…….’

나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입원 권유를 세 번 정도 더 거절했다. 어느 날이었을까. 진심으로 ‘이제는 더 못 견디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입원치료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묻고, 들을 수 있었다. 전날 밤, 인터넷에서 찾아본 조각난 정보들보다 신뢰가 가고,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곤 한참 생각했다. 정신병원을 몇 년을 다닌 나조차도 입원치료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데,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입원치료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실제로 입원치료에 대한 정보의 편차가 심하고, 가지각색이었다. 물론 시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누군가의 긴 경험의 글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못 찾았을 수도 있겠지만.

숲 병원에서 주신 진료의뢰서를 들고, 예약해둔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를 찾았다. 컴퓨터를 이용한 짧은 검사와 짧은 대면 초진을 마치고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전 주치의 선생님이 진료의뢰서에 ‘환자가 입원을 원함’이라고 써 두었나 보다. 일부 사실이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새 선생님은 그 면을 신기하게 보셨고, 어떤 이유에서 입원치료를 원하는지 물으셨다. 그곳에서 개방 병실과 폐쇄 병실에 대하여 의논했고, 폐쇄 병실까지 갈 상태는 아닌 것 같다는 선생님의 판단 하에 개방 병실에 입원하기로 정했다. 해당 병원의 입원병실 자리가 날 때를 기다려야 했다. 간호사분께서는 내일 입원하실 거라는 안내를 해 주셨고, 가는 길에 코로나 검사를 하고 가라고 하셨다. 약속대로 다음 날 입원하라는 전화가 왔고, 다시 들고 갔던 캐리어를 끌고 개방 병실로 들어섰다.

 

 

완전히 새로운 곳에 낙하했다.

개방 병실은 3명이 한 방을 썼다. 내가 도착한 방에 이미 2인은 자리를 잡은 상태였고, 나만 창가 안쪽 자리로 들어서면 됐다. 그때부터 엄청난 것들이 나에게 쏟아졌다. 짐을 풀기도 전에, 제일 먼저 몸무게와 키를 쟀고, 엄청난 양의 종이 검사지를 받아 들어야 했다. 바코드와 큐알코드가 함께 있는 이름표를 손목에 둘러차야 했다. 개방 병실이라 그런지 충전 줄 길이 라든지 하는 것에 까다롭지 않았다. 입원해 있는 동안, 폐쇄 병실로 들어가는 환자를 종종 보곤 했는데, 때마다 가방 검사를 하고 안 되는 품목을 보호자에게 돌려보냈다. 이때 끈이 있는 운동화도 돌려보냈다. 확실히 폐쇄 병실이 물품 반입과 출입에 제한이 많았다.

대학병원 시스템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내 의료진 정보에 교수님 말고, 주치의가 따로 쓰여 있는 게 의아했다. 병실은 각자 침대마다 커튼을 둘러 칠 수 있게 되어있는데, 나는 이 커튼을 백 퍼센트에 가깝게 쳐 두고 숨어 지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주치의 선생님이 나를 찾아왔다. 몇 시쯤이었을까. ‘시간 괜찮으세요?’라는 아주 정중한 말투를 쓰는 사람이었다. 나를 찾아오실 때마다 같은 말을 하셨다. 이 말을 들을 때면 매번 배려받는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은 습관처럼 하는 말 일지라도.

일주일에 두 번 만나는 교수님 회진 때는 꽤나 긴 시간을 들여 상담하셨다. 나의 상태를 파악하고, 약을 조절하는 것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고, 목표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빼먹지 않고, 내가 이 입원치료에서 얻어 갈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해 주셨다. 큰 목표를 함께 그려 나가는 것은 꽤나 오랜만의 일이라, 과연 해낼 수 있을지 나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마치 그곳은 천국이었다. 나처럼 약도 잘 안 챙겨 먹고, 병원도 잘 안 가고, 밥도 거르기 일쑤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제공해 줬다. 부스스한 상태에서도 열 걸음이면 상담실이 있었고, 밥은 역시나 맛은 없었지만, 제때 나와서 나의 폭식을 잠재웠다. 밥 먹고 30-40분 후 약을 챙겨 주셨고, 꼴딱, 삼키는 걸 보고서야 자리를 떠나셨다. 나는 온전히 나 자신의 치료에만 집중하면 됐다.

 

길다면 긴 시간이 지나, 내가 스스로 ‘나가도 되겠다’라는 감정이 들 때쯤 교수님께서 퇴원에 대한 의사를 물으셨고, 냉큼 대답했다. 나갈 수 있을 만큼 치료가 된 것이다. 교수님과 목표를 잡은 대로, 어느 정도 나를 다스릴 만한 약의 종류도 찾았고, 루틴도 몸에 새겼다. 어린 시절에 대한 공포감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내가 해 나갈 수 있는 일에 대해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꽤 오랜만에 목표를 달성한 기분은 상당히 자존감이 오르는 감정이었다.

마지막까지 나를 격려해 주시고, 나의 재능에 대해, 성격에 대하여 아낌없이 응원해 주셨다. 아직도 그 말들을 원동력 삼아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되새겨가며 써먹고 있다. 말씀 끝에,

“이제 힘들 때 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다는 옵션이 생긴 거잖아요?”

라고 하셨는데, 순간 그 말이 나에게는 엄청나게 든든한 뒷배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항상 응원해 주는 부모님을 가진 느낌인 걸까? 어렴풋이 짐작해봤다.

 

 

나에게 또 다른 숲이 생겼다.

물리적인 숲, 마음의 숲, 서울의 숲, 이제는 더 큰 서울의 숲.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을 때, 내가 스스로 풀 수 없을 때, 억지로 내가 다 할 필요 없다. 당신을 위한 전문가들이 곳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편견을 살짝 내려놓고, 든든한 뒷배를 얻자.

*함께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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