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8일.

 

감각에 대하여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절대적 감각의 70~80퍼센트는 시각이라고 한다. 그만큼 강력하게 우리의 감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 인데, 28일(토)의 기억도, 어쩌면 수많은 기억들이 사진처럼 시각적 정보들로 조각조각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일본조팝나무
일본조팝나무
인디언국화
인디언국화

위 사진에서 처럼 이색적인 아름다운 꽃을 보면, 사람들은 쉽사리 호흡과 촉각, 후각이 둔해지며 시각적 감각에 사로잡힌다. 시각은 인간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시각을 잃은 인간은, 많은 도움과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다. 

후각, 가장 둔해지기 쉬운 감각이라고 하는 유화적인 감각. 만약 후각이 끝까지 민감한 감각이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한 번 훈훈한 커피향이 나고 말 일이지 좋다 하는 커피향도 끝까지 계속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다면, 멀미가 나고 울렁거렸을 것이다. 서울 숲에 향기 정원이 있다. 오감 중 향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입구에 민트, 로즈마리로 시작해서 층꽃나무라는 낯선 향이 나는 식물도 심어져 있었다. 다양한 향이 나는 식물들 둘러 심어 놓은 정원이 신기했다. 

 

로즈마리
로즈마리
층꽃나무
층꽃나무

초여름의 공원은 사람들로 붐볐다. 시간이 지날수록 청각이 아이들의 꺄륵이는 소리로 붐비기 시작했다. 강아지, 아이, 친구와 가족들 혹은 홀로 찾은 이들로 북적이는 공원이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구나-.’하는 기분이 절로 들게 만들어줬다. 청각은 이렇게 ‘어떤’ 분위기를 조성해 준다. 공포영화에 자주 쓰이는 스산한 음성이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대충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로맨스 영화에 자주 쓰이는 사랑에 빠지는 씬(scene)에 쓰이는 음악! 하면 당신은 귀신같이 또 나와 비슷한 음악을 찾아낼 것이다. 우리를 어떤 장소로, 어떤 공간과 시대로 안내해 주는 것은 여러 감각 중에 청각이 가장 유능한 감각일 수 있겠다. 

 

안내해주시는 분은 일부러 바닥의 곡선이 가득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하셨다. 울퉁불퉁한 발바닥을 통해 큰 나무들의 튀어나온 뿌리, 돌, 굴곡진 땅들이 느껴졌다. 지면이 고르지 못하면 긴장하게 되는데, 앞의 시야보다 내 아래 시야에 집중하게 되고, 내 당장의 걸음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 걸음 하나하나에 숨을 넣다 보면, 잡념이 사라진다. 나는 그제서야 험한 산을 등산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고산병에 아주 예민한 편이라 동네 뒷산에도 두통이 심하게 오는 편인데, 그것을 고산병이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산에 오르면 두통이 심하여 오르다 몸이 좋지 않아 실패하고 내려오기를 몇 번을 하고는 그 이후 산에 오르지 않았다. 훗날 큰 산 오르는 분들은 그런 증세를 고산병이라고 하시던데, 나는 고작 동네 뒷산 정도라 비교해도 될까 싶다. 여하튼 나는 그런 특이한 예민성을 갖고 있어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이상하게도 이해 못하고 고생하고 끝에는 모여 술 마시는 재밌는 사람들 로만 생각했다. 

지난번에 사려니숲을 완주하고 많은 것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는데, ‘완주’가 주는 기쁨. 순수히 내 몸이 해낸 기쁨 말이다. 그것이 주는 독특한 뿌듯함이 있다. 그저 이곳에서 저곳으로 걸었을 뿐인데, 그것은 내 몸이, 내 다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해내지 못할 일이었던 것이다. 조금 진지하게 얘기해 보자면, 정말 힘들 때는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 ‘내 다리 두 개가 번갈아 걷는 움직임’을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깨달았다. 나는 마지막 계주 선수였다. 마지막 계주는 한 바퀴 반을 돌아야 했고, 앞 선수들이 조금씩 밀려 뛰는 바람에 반 바퀴 정도 뒤처져 있었다. 그걸 이겨 보겠다고 처음에 무리를 해서 페이스 조절을 못했다. 마지막 반 바퀴를 뛰는데 숨이 콱 막혀서 도저히 다리가 뛰어지지를 않을 것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나 스스로 다리 두 개를 번갈아 뛰지 않으면, 절대 누가 대신해 주지 않겠구나. 

‘삶도 그렇겠구나.’ 하고 마저 반 바퀴를 뛰고 깨달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달래가며 멀고 멀었던 집으로 걷고 걸어 하교하면서, 어린 나는 깨달았다. 

“지금 후들거리는 이 다리처럼 인생이 통째로 흔들려도, 내가 중심을 잡고 걷지 않으면, 누가 대신 내 삶을 살아주는 일은 절대 없겠구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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