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웹툰 '신의 탑'이 연재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나와 있는 부분까지 다 보면 앞부분이 기억나지 않아서 처음으로 되돌아가 정주행 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신의 탑 독자 여러분에게, 가장 매력적인 등장인물은 누구인가요?

저는 화이트입니다. 악하고 강하며, 늘 결핍되어 있고 공허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이 인물은 저에게 주인공 이상의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좋아하는 캐릭터이던 화이트가 제게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받고 나서부터였습니다. 화이트는 병적인 나르시시스트(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전형적인 예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통해 정신과 의사의 눈으로 화이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사진_네이버 웹툰 '신의 탑' 
사진_네이버 웹툰 '신의 탑' 

 

다른 인물과 달리 화이트는 자신의 성장 과정에 대해 종종 회상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버지의 인정을 간절히 원했지만 받을 수 없었습니다. 화이트에게 아버지는 궁극적으로 닿고자 하는 목표이지만 동시에 결코 닿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해를 위해 잠시만, 딱딱한 내용으로 가 보겠습니다. 자기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사람의 자존감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려 합니다. 사람은 발달 과정에서 1. 부모를 이상향으로 삼고 2. 부모의 인정을 받으면서 자존감을 형성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느끼면서 자존감은 현실에 뿌리내립니다. 적절한 목표를 설정하고 추구할 수 있게 되지요. 때로 인정을 받고, 때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은 자신만의 단단한 자존감을 형성해 나갑니다.

 

다시 화이트로 돌아오겠습니다. 인간미 없이 비현실적으로 위대하기만 한 아버지는 화이트에게 닿을 수 없는 목표가 되어버립니다. 이런 아버지 아래서, 어린 화이트는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성취하는 방법을 배울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더 강해져도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상향 - 아버지 - 에게는 아직도 가까워지지 못했으니까요.

한편, 칭찬 한 번 듣지 못하고 자란 화이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인정과 동경 없이는 자존감을 유지해 나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단단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지 못한 그에게 이러한 시도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화이트는 더 큰 힘과 타인의 동경에 목말라합니다. 타인은 자신에게 힘을 주고 자신을 동경할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힘에 목말라 있는 화이트는 다른 이들을 돌아보고 공감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화이트는 다른 이들의 영혼을 섭취하여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고 말지만, 힘을 향한 갈망은 멈추지 않습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병적인 나르시시스트,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이렇게 만들어지고 살아갑니다. 닿을 수 없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 끊임없이 몸부림쳐야만 합니다. 밑바닥이 뚫린 자존감으로 인해 아무리 인정받아도 내면은 비어 있기만 합니다. 내면의 공허함으로 고통받고,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사용'해 나가야만 합니다.

화이트가 계속해서 힘을 얻어 나가듯 병적인 나르시시스트는 인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성과를 내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곤 합니다. 병적인 나르시시스트는, 화이트는 슬픈 존재입니다.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으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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