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늘도 직장에 출근한 당신은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 같죠. 나름 평균적이고 모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해왔던 당신에게 사람들은 낯선 관습과 잣대를 들이댑니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혹시라도 손해 볼까 봐 두려워 당신은 자신을 숨기고 사람들의 룰에 맞춥니다. 모두가 좋아해 주는 옷을 입고 모두가 좋아하는 TV프로 이야기에 맞장구치며 억지 미소를 짓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점점 지쳐갑니다. 이게 정말 내가 바라던 모습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생각보다 힘이 들고 피곤한 일이죠.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요. 하지만 혼자가 되는 것의 무서움을, 사회의 레일에서 벗어난 자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당신이기에 오늘도 당신은 미소라는 투구를 쓰고 유행이라는 갑옷을 입습니다. 전쟁에 나가는 무사처럼 비장하게 직장으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싣는 당신의 발에는 요즘 유행하는 프라다 구두가 반짝입니다.

 

저널리스트가 꿈인 앤디(앤 헤서웨이)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전혀 관심도 없었던 패션잡지 ‘런웨이’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누구나 알아주는 악마 같은 편집자, 미란다(메릴 스트립)의 제2비서로 들어가게 됩니다. 미란다는 그곳의 법이자 제왕입니다. 회사의 모든 중요한 결정은 그녀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그녀의 눈짓 한 번에 몇 개월 공들여 준비한 기획이 물거품이 되기도 합니다.

나름 촉망받는 저널리스트 후보생이었던 앤디는 패션잡지사에서는 열등생이 됩니다. 바깥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그녀의 옷차림, 그녀의 상식, 식습관 하나하나가 그녀가 뒤처지는 사람이라는 증거가 되고 놀림거리가 되거든요. 더군다나 퇴근 후까지 쏟아지는 전화와 일거리, 그리고 그녀의 사생활마저 포기해야 하는 업무, 상사의 개인사까지 챙겨야 하는 생활들.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그나마 마음씨 좋아 보이는 미란다의 오른팔 나이젤에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만 어린애처럼 굴지 말라며 무안만 당합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中


세계적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수많은 종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자연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로 ‘개념’을 공유하는 능력을 듭니다.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문화’, ‘사회’, ‘민족’과 같은 추상적 개념들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을 손에 넣습니다. 그럼으로써 인류는 개미보다도 조직적으로, 침팬지보다도 유연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협동하는 법을 손에 넣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국가, 회사, 학교 등의 근본적으로는 추상적 개념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에 속하여 살아갑니다. 그리고 각각의 공동체는 고유의 분위기나 문화, 패션과 같은 또 다른 추상적 개념들을 공유함으로써 인간 개개인이 한 집단에 속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공고히 합니다. 그리고 회사마다 사원들의 분위기나 옷차림, 머리 모양 등이 다른 것처럼 각각의 공동체가 채택한 질서와 문화는 다릅니다. 미란다가 조직의 왕처럼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죠. 그녀는 그녀가 속한 공동체의 질서와 문화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거든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中


한 집단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집단이 제시한 관습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 입고 있는 옷 어느 하나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동물이죠. 인간은 패션감각이 없다고 죽지는 않지만 음식을 손에 넣지 못하면 죽습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는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의 유행과 관습을 따르는 것이 우리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음식을 손에 넣는지와 직결됩니다. 이제 패션은 멋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프라다’를 입습니다.

 

앤디는 자신을 바꾸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회사가 원하는 방식대로요. 편하고 헐렁한 옷을 주로 입던 그녀는 몸에 딱 붙는 명품 옷과 백으로 자신을 치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와의 식사시간, 남자 친구의 생일파티까지도 희생해가며 그녀의 상사 미란다의 욕구에 부응해갑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몰아붙이는 거죠?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中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 팀의 아이젠버그와 리버만은 조직 사회에서의 소외감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사이버볼’이라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이 컴퓨터 게임에서는 실험 참가자를 포함한 세 명의 플레이어가 공을 주고받습니다. 세 명 중 참가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사실 컴퓨터 프로그램이지만 실험 참가자에게는 나머지 두 명의 플레이어를 인간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머지 두 명의 플레이어(이지만 사실은 미리 프로그램된 컴퓨터 플레이어)는 실험 참가자를 빼놓고 둘이서만 공을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해당 상황에서의 뇌의 활성도를 측정하고, 또한 고통의 정도에 대해서 보고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Eisenberger, N.I. et al. (2003) Does rejection hurt: an fMRI study of social exclusion. Science


실험의 결과 대상자의 등쪽전두대피질(dACC)의 활성화가 관찰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등쪽전두대피질의 활성도는 실험대상자가 자가보고한 고통의 정도와도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이 부위는 육체적 고통의 인식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죠. 여기서 우리는 사회적 따돌림과 배제는 인간에게 신체가 훼손되는 것에 준하거나 그와 흡사한 고통을 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종종 사회에서 받는 마음의 아픔을 신체적 고통에 비유해서 표현하죠. ‘마음을 후벼 파는 듯한 비웃음’을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는 것처럼요.
 

Eisenberger, N.I. et al. (2004) Why rejection hurt; a common neural alarm system for physical and social pain, Trends in Cognitive Science


화려함과 명품으로 치장된 영화의 경쾌한 이면에는 이 세계로부터 선택받기 위해 44 사이즈에 몸을 억지로 구겨 넣는 이들의 애환이 서려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들지도 않는 옷을 유행한다는 이유만으로 입고,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원하지 않는 회식에 가죠. 관심도 없는 화제에 억지로 공감하는 척하며 몸에 잘 받지도 않는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죠. 휴가 때마저도 집에서 편한 복장으로 푹 쉬는 대신, 유행하는 여행지를 어렵게 예약해서 힘들게 다녀온 후 SNS에 올립니다. 그것이 내가 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라도 되는 양 말이죠.

생존의 측면으로 본다면 이 방법은 어떤 의미로 보면 옳은 방법이라 할 수 있어요.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없는 일들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앤디의 변화가 불러일으킨 효과는 굉장했죠. 통쾌하게도 그녀는 그녀를 무시하던 사람들의 말문을 막히게 하고, 그녀가 평소라면 절대 친해지지 못했을 거물들과 친해집니다. 무엇보다 조직의 왕인 미란다로부터 인정받게 됩니다. 앤디는 자신의 선배인 제1비서 에밀리를 제치고 가장 중요한 행사인 파리 출장까지도 함께 따라가는 자타공인 조직의 에이스로 거듭납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中


어떤 분들은 눈부시게 달라지는 그녀의 모습과 성공기를 보며 동경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직에 적응하기 위한 고군분투는 굉장히 소모가 큽니다. 우리의 뇌는 개미나 꿀벌과는 또 다르거든요. 때때로 우리의 정신건강이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너무나 지친 나머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게 되고 긍정적인 자극에 반응하지 못하게 되거나(주요우울증), 사회적 상황에서 받는 압박에 고통받거나(사회공포증), 한 순간에 통제감을 잃고 공포와 당황에 빠지기도(공황장애) 하지요.

더욱이 우리는 한 집단에만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직장에서는 과장이지만 집에서는 부모님의 자식이 되고 데이트할 때는 누군가의 연인이 되죠. 그리고 한 집단이 원하는 완벽한 모습은 다른 집단에서는 오히려 이상하고 비적응적인 모습이 되기 쉽습니다. 패션잡지 일에 파묻혀 사느라 친구들과 멀어지고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된 앤디처럼요. 그녀는 점점 원래 그녀가 있던 곳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모든 사람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영화의 결말, 엔디는 결국 미란다의 비서를 그만두고 친구들과 남자 친구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이를 통해 감독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겉모습보다 사랑과 우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을까요? 아니면 패션이나 돈과 같은 세속적인 것들보다 꿈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사실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주체적인 선택의 중요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출장 중 미란다는 앤디에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남편과 이혼을 앞두고 자신의 자리까지 라이벌에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지치고 좌절한 기색이 역력한 미란다에게 앤디는 처음으로 인간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다음 장면, 그녀는 비정하게도 자신의 오른팔과도 같았던 부하 나이젤을 희생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냅니다.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뭐든지 잘라낼 수 있는 그녀는 인간이라기보다는 회사라는 집단 그 자체와도 같았습니다.

실망한 앤디는 미란다에게 따져 묻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요. 그러자 미란다는 뜻밖의 말을 합니다. 넌 나와 무척이나 닮았다고. 너도 사실은 누군가를 제치고 이 자리에 오지 않았냐고 말이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항변하는 앤디에게 미란다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니 넌 나와 같아. 왜냐하면 넌 분명 널 위해 ‘선택’했거든.”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中


앤디는 무언가를 깨닫고 그 자리를 뛰쳐나와 그토록 소중하게 매번 확인했던 휴대전화를 분수대로 던져버립니다. 휴대전화에는 그녀가 신의 목소리처럼 복종하고 따랐던 미란다로부터의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죠. 그녀는 그녀를 지배해왔던 신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납니다.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사실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었죠. 하지만 사회로부터 배제된다는 것이,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로부터 배척받는다는 느낌이 너무나 두렵고 아팠기 때문에 어느새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도구들이 마치 그녀의 주인처럼 그녀를 구속하고 있었던 것뿐이었습니다.

옷도 구두도 유행도, 실은 직장 그 자체까지도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미란다는 선택의 의미를 알고 있었고,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복잡하고 가혹한 인간의 공동체에서 강하고 흔들림 없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미란다도 앤디도 모두 프라다를 입고 있었습니다. 달랐던 것은 둘의 마음가짐이었죠. 미란다에게 있어서 프라다 구두는 원하는 곳에 도달하기 위한 자신의 선택이었고 앤디에게 프라다 구두는 자신을 구속하고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였죠. 그리고 이제 앤디는 자신도 ‘선택’합니다.

 

그녀가 바라던 신문사의 면접에서 면접관은 그녀에게 묻습니다. 어쩌다가 그런 패션잡지에서 일을 하게 되었냐고요. 그녀는 겸연쩍은 미소를 띠며 말합니다. 끝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배운 게 많다고요.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죠. 뜻밖에도 면접관은 앤디에게 전 상사 미란다가 보낸 추천서에 대해 말해줍니다.

어느 날 앤디는 우연히 먼발치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던 미란다와 눈을 마주치게 됩니다. 앤디의 가벼운 손인사를 차갑게 무시하고 차에 탄 미란다였지만 그녀는 이내 아무도 모르게 미소를 띱니다. 아마 그것은 비록 자신과 다른 길을 택하였지만 인간의 역사라는 게임의 말에서 벗어나 어느새 당당한 게임의 플레이어로 거듭난 옛 부하에 대한 나름의 찬사였을 것입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中


다른 동물보다 강한 이빨도, 굳건한 다리도 갖추지 못했던 인류는 문화와 민족과도 같은 추상적 개념을 공유함으로써 생태계의 제왕이 됩니다. 덕분에 우리는 지구 반대편의 최고의 예술가가 만든 옷을 입고 최고의 농부가 만든 우수한 식량을 손쉽게 손에 넣고 몇 명 안 되는 천재들의 과학 기술의 산물을 매일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어졌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서 집단에 적응하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것에 버금갈 만큼 중요해졌죠. 따라서 집단이 공유하는 개념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심적 고통을 느끼게 되고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집단은 점점 다양해졌고 우리의 사고방식 또한 복잡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집단과 집단, 집단과 개인 사이의 개념의 차이로 고통받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소중하게 공유하는 이러한 것들이 사실은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진 도구라는 것을 잊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행이나 집단의 문화를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자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결코 우리를 벌주려고 하는 신의 목소리나 절대명령 따위가 아니었지요.

그러니 회사나 학교,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속해야 하는 어떤 집단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 집단의 분위기가 나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아파하거나 자책하지 말아요. 당신은 신에게서 버림받은 것도 아니고 어떤 절대적인 것으로부터 추방된 것도 아니에요. 단지 그 집단에서 준비한 도구가 맞지 않았던 것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 당신이 생각하기에 남들에게 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즉 프라다가 필요하다면 당당히 입어요. 하지만 내가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면 억지로 좋아하려고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이것은 무슨 인간의 존엄성, 가치, 옳은 것 이런 문제와는 하등 상관없죠. 프라다는 당신이 선택하는 도구지 당신을 선택하는 주인님이 아니에요.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 존재하는 이 본능적인 사회적 고통과 두려움은 어떻게 하면 좋냐고요? 사실 인간에게는 고통을 인식하는 부위인 등쪽 전두대피질이 활성화될 때 이를 조절하기 위해 동시에 활성화되는 곳이 있어요. 바로 우측 배측전전두엽피질(RVPFC)이라는 곳이죠. 이 곳은 부정적인 감정을 측정하고, 구분하고, 그 감정의 실체에 대해 분석하고 통제하는 곳이죠. 이 글을 읽고 두려움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되고 조금은 안심하게 된 당신에게 지금 활성화되고 있는 바로 그 부위이죠.

당신에게 가해지는 그 사회적 고통과 두려움조차도 당신을 생존하게 하기 위한 알람에 불과하지요. 부디 그 알람 소리에 놀라 주저앉아 떨지 마세요. 대신 울리고 있는 알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다시 일어나 당당하게 게임의 플레이어가 되세요. 모든 건 당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죠. 당신의 선택만이 남아있어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中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전임의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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