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어머니에 대한 공격적인 마음, 그리고 죄책감이 반복되어요.

 

※ 실제 상담 내용을 재가공하여 구성한 내용입니다. 내담자의 동의를 얻어 작성되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상담과 비교해 설명을 많이 덧붙였습니다. 실제 상담의 흐름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점 미리 밝힙니다.)

 

이번 연재는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과의 상담내용입니다. 이 학생은 본인이 SNS에 중독된 거 같다며, 상담을 요청하였습니다.

한창 공부를 해야 할 때인데, SNS에 한 번 접속하면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계속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어서,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고 한심하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자신도 SNS를 그만 해야 하고, 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앎에도 계속하게 되는 것이 중독 증상인 거 같다며 제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내담자: 저는 진짜 중독인 거 같아요. ‘안 그래야지.’하면서도 한 번 그 세계에 들어가면 헤어 나오지를 못하겠어요. 한참 보다 보면 몇 시간이 지나가 있을 때도 있어요.

그렇다고 SNS를 보고 있으면 마냥 즐거운 것도 아니에요. 제가 보는 SNS는 주로 엄청 부자여서 좋은 데만 찾아가고, 비싼 물건을 구입하고 그런 걸 자랑해놓은 곳이거든요.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요.

저는 집이 가난하거든요. 부모님이 제가 어렸을 때 이혼하시고, 어머니 혼자서 저를 키우셨거든요. 어머니가 아르바이트하시면서 저를 키우다 보니 항상 넉넉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그런 부자들이 올려놓은 SNS를 보면 질투도 나고, 제 처지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여하튼 기분이 좋지가 않아요.

웃기는 게 기분이 좋지가 않다면서도 계속하고 있는 제가 너무 웃긴 거죠. 이거 중독인 거죠? 고칠 수 있는 건가요?
 

사진_픽셀


상담자: 말씀 중에, ‘처지에 대한 원망’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요.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내담자: 저는 가난하니까요. 저는 하고 싶은 것도 잘 못 하고, 갖고 싶은 것도 잘 못 가지는데... SNS를 보면, 정말 하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다 하는 거 같아요. 그걸 보면 제 처지가 원망스러워요. 우리 부모님은 왜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저를 낳으셔서 이 고생을 시키는지에 대한 원망의 감정도 좀 있어요.

아까 부모님이 이혼하셨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사실은 이혼도 아니에요. 친구들한테는 이혼했다고 둘러대는데... 사실은 저희 어머니가 18살 때 저희 아버지를 만나서 소위 사고를 쳐서 저를 출산하신 거거든요. 아버지는 그때 도망갔대요. 그래서 저는 아빠 얼굴도 몰라요.

물론 아빠가 나쁜 사람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해요. 왜 그런 남자를 만나가지고 책임지지도 못 할 일을 저질렀는지. 엄마가 불쌍하기도 한데, 그쵸. 엄마가 제일 불쌍할지도 몰라요. 엄마는 저를 키우신다고, 20대를 제대로 보내지 못하셨거든요. 그거를 알기는 아는데, 그래도 밉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래요. 엄마를 원망할 일은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원망스러워요.

그러고 나면 또 죄책감도 들어요. 엄마가 불쌍한 사람인데, 나는 왜 이렇게 ‘못 돼 쳐 먹어가지고.’ 그러다 보면 또 원망스러워요. 나도 그냥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원망도 안 하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을 텐데...

진짜 가끔은 안 태어나는 게 더 나을뻔했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억울한 거 같아요. 경제적으로 힘든 것도 억울하고... 억울하네요. 이런 환경에서 태어난 건 제가 선택한 건 아니잖아요. (침묵)

또 저희 어머니가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분은 아니시거든요. 밖에서 스트레스받고 그런 게 있으면 저한테 다 푸세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가 동네북도 아니고. 엄마한테는 제가 제일 만만한 거 같아요. 다른 데 풀 데가 없으니까 저한테 다 푸세요. 엄마가 정말 밉다가도 그런 제 자신이 또 못 돼 쳐 먹은 거 같고. 그런 롤러코스터 같은 마음이 되풀이되는 거 같아요.

 

내담자는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을 40여 분간 늘어놓았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공격성을 표현하다가도, 또 그런 자신에 대한 죄책감, 엄마에 대한 미안함, 연민 등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상담과정에서 가장 감정표현이 강했던 부분에 대해 언급하고 상담을 이어갔습니다.

 

상담자: 중간에 억울하다는 표현을 하셨어요. 이런 환경에서 태어난 게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라고 말씀을 하시면서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내담자: 그렇잖아요. 제가 이런 환경에서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가는 건 제가 선택한 게 아니잖아요. SNS에 있는 부자들은 부모 잘 만나서 떵떵거리면서 사는 거 같은데, 저는 이렇게 고생하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이게 다 저희 엄마가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일을 저질러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엄마가 미운 거예요. 제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게 다 엄마 탓인 거 같고요. 저도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엄마가 원망스러워요.
 

사진_픽사베이


내담자는 쉬지 않고 어머니에 대한 공격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공격적인 마음이 너무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시간 30분이라는 짧은 상담으로 그 내용을 모두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자유연상을 중단하고 내담자와 대화로 이어갔습니다.

내담자는 감정을 표현하고 나니 후련하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 공격성이 자리 잡고 있어도 이것을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은 많지 않습니다. 내 안의 죄책감 때문에도 그러하고, 상대방의 시선 때문에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이런 상담 과정을 통해 내 안에 자리 잡은 감정을 쏟아 내보는 과정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또 쏟아내어 봐야 ‘내 안에 이러한 감정이 그렇게나 크게 자리 잡고 있었구나.’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내담자는 상담 과정에서 어머니에 대한 공격적인 감정이 정당하다는 것을 끝까지 고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공격적인 감정’을 가져야만 ‘무의식 깊은 곳’에서는 편안함을 느끼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그러할 것입니다. 장기적인 상담이라면 그 부분을 다루어주는 것이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1회성 무료 상담이라, 그것을 다루기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기에, 대화로 내용을 풀어갔습니다.

 

상담자: 어머니에 대한 그런 공격적인 감정이 정당하다면, 뒤이어 따라오는 죄책감은 왜 생기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거 같습니다. 어머니가 잘못했다, 잘했다의 문제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OOO 씨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OOO 씨가 그렇게 ‘공격적인 감정과 죄책감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 스스로의 마음이 편안할까?’라는 의문 때문에 저는 꼭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OOO 씨는 편안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담자: 네, 맞아요. 편안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자꾸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상담자: 바로 그 부분입니다. 제가 이전 연재에서 주체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졌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우리 인생은 OOO 씨가 말씀하셨듯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어지고 있어요. 왜냐?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과거 때문에요.

진화심리학 말씀드리면서 설명드렸었죠? 그래서 해결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그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과거’로 인해 생긴 ‘내 마음의 패턴’을 내가 인지해주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정신과 용어로 말씀을 드리면 무의식의 의식화인데요. 이 과정이 되어지면,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어찌할 수 있게 되어집니다. 그제야 조금씩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어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OOO 씨가 가지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공격적인 마음과 죄책감을 모두 살펴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마음의 끝단에 가본다면 어떨까요?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의 마음은 아닐 거라 확신합니다. 지금은 어머니에 대해서 공격성, 죄책감, 연민, 미안함 등 모순적인 마음들이 공존하고 있어, 양 극단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상태이거든요.

오해하시면 안 될 것이, 마음의 끝단에 갔다고 해서 ‘어머니에 대한 공격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모두 용서해라.’는 절대 아닙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자연, 그냥 그러한 것,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니까요. 오히려 긍정적인 노력, 부정적인 노력 모두를 내려놓는 게 끝단에 존재하고 있는 마음이리라 생각합니다.

끝단에 가봤을 때도 어머니가 나쁜 사람이라면, 그것도 그냥 그러한 거고요. 끝단에 가봤을 때 아니었다면 그것도 그냥 그러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상담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드렸던 자유연상(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생각들을 따라가는 것)을 꾸준히 해보신다면 나도 몰랐던 내 마음들을 조금씩 발견하게 될 수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첨언하자면, OOO 씨가 SNS 중독에 빠진 것도 어머니에 대한 공격적인 마음과 연결되어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담자: 아~ 맞아요. 제가 SNS 할 때 엄마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더 많이 생기더라고요. 

상담자: 네, 말씀드린 게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어요. 짧은 시간에 성급히 결론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요. SNS 할 때 어떤 마음들이 올라오는지 잘 살펴보신다면 그 답도 찾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SNS 할 때마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많이 생긴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SNS 중독 이야기로 시작을 했는데, 어머니 이야기로 귀결이 되었네요. 그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유연상을 하다 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길로 빠지기도 하는데 그것조차도 두시면 됩니다. 그것조차도 의미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어떠어떠한 생각을 해야겠다.’라는 의지가 아니라, ‘그냥 일어나는 생각을 따라 가보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내 생각’보다 반 발짝 앞서 생각을 이끌어가는 데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습관이 우리를 ‘가짜 이유’의 굴레에 빠뜨리는 주범이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내 생각’보다 반 발짝 뒤에서 ‘내 생각’을 따라가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이게 자유연상이고요. 궁극적으로 ‘自然, 그냥 그러한 것’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끗 차이인데요. 그 차이는 어마 무시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4 연재 동안 지속적으로 전달해드렸던 내용들이 바로 그것이고요.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었었죠? 그 작은 차이가 얼마나 다른 삶을 만들어내는지 OOO 씨도 맛볼 수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 본 글은 이일준 정신과 전문의가 Transmind 마음변화 연구소에서 무료 상담했던 내용을 각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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