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실제 상담 내용을 재가공하여 구성한 내용입니다. 내담자의 동의를 얻어 작성되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상담과 비교해 설명을 많이 덧붙였습니다. 실제 상담의 흐름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점 미리 밝힙니다.)

 

이번 연재는 26세 여성과의 상담 내용입니다. 내담자는 돈을 벌고 싶으나 일을 하는 게 어렵다며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취직이 어려워서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였으나, 면담 도중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취직이 어렵지는 않을 텐데.’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내담자는 그 사실을 인정하며, 병원에 몇 번 취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일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내담자: 제가 원래 바늘도 무서워하고, 병원을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간호조무사가 되었으니 저한테 일이 안 맞는 거 같아요. 병원이라는 공간에만 들어가도 무서운데 어떻게 일을 하겠어요.

그래도 바로 전에 일했던 병원은 마음 잘 맞는 언니가 있어서 2년 넘게 일할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언니가 그만두고 나니까 저도 버틸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만두고 현재는 일을 하지 않고 있어요. 일을 쉰 지는 몇 개월 되었어요.

저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거 같아요. 일을 할 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거든요. 제가 남들에 비해 말에 상처를 잘 받는 거 같아요. 원장님이나 선배님이 저한테 뭐라고 하시면, 머리가 멍해지고 원래 잘하던 일도 잘 못 하겠더라고요.

잔소리를 많이 들은 날은 집에 와서 아무것도 못하고 뻗어있어요. 자꾸 곱씹게 되고. 사람이 많이 지치더라고요.

일을 하다 보면, 잔소리를 듣는 것도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건데 저는 잔소리를 들으면 미움을 받는 거 같고, 잘 못 하는 거 같고, 자존감도 떨어지고, 너무 크게 받아들이는 거 같아요.

제가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거 같아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막 살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막상 잘 안 돼요. 


상담자: 그렇게 살면 어떻게 될 거 같아요?

내담자: 끝이 안 좋을 거 같아요. 그래도 남 시선에 맞춰서 사는 건 너무 불편해요.

제가 대학교 때 왕따를 당했었거든요. 그래서 대학도 자퇴를 하고 간호조무사 학원을 다녔어요. 학원에서는 친구들한테 미움받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거 같아요. 거기 친구들한테도 미움을 받으면 저는 갈 데가 없을 거 같았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성질을 부려도 다 받아주고 그랬어요. 착하게 해야만 나를 받아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살다 보니 너무 힘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또 왕따를 당했을 거 같아요.

새로 취직을 하려면... 제가 무서워하는 거 같아요. 새로운 사람들이랑 또 만나야 된다는 게 무서워요. 아는 사람이면 괜찮은데. 또 일을 하다가 혼나는 것도 두려워요. 일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요.

 

내담자가 처음에는 병원이라는 공간이 무서워서 취직을 못하겠다고 하였지만, 이야기를 할수록 처음에 내세웠던 이유는 ‘가짜 이유’로 보였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이에 대해 내담자에게 돌려드렸습니다.

내담자는 자신이 사람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는지,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이내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대학교 때 왕따를 당했던 경험에 대해 연상을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내담자: 누구한테 그렇게까지 미움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어요.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저한테 이야기를 하면 되잖아요. 이야기해줬으면 사과라도 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나한테 왜 그랬을까요?

얼마 전에 강남역에서 대학교 때 친구를 우연히 봤어요. 아는 척은 안 했어요. 스쳐 지나가기만 했는데도 너무 밉더라고요. 갑자기 기숙사 방에서 울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렇게 우는 데도 친구들이 아무도 아는 척을 하지 않더라고요. 그러니까 더 서러워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대학교 친구들은 다시는 안 봤으면 좋겠어요. 저를 벌레 보듯이 보는 그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라요. 슬프고 서러웠었는데, 이제는 화가 나네요.

제가 그 친구들 만나기 싫다고 했잖아요. 아니에요. 이제는 만나고 싶어요. 만나서 보란 듯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물어보고 싶어요. 나한테 왜 그랬는지...
 

사진_픽셀


내담자는 대학교 친구들에 대한 연상을 이어가면서 서러움, 슬픔, 화 등등의 감정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많은 감정들이 나오면서 스스로 놀라워하셨습니다. 자신은 그 상처들이 다 치유가 된 줄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이렇게 큰 감정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요. 다 지나간 일인 줄 알았는데, 연상을 이어가다 보니, 본인 마음에는 아직도 큰 상처로 남아있다는 게 새삼스럽게 다가온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은 묻어둔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마음은 오롯이 인정하고 바라봐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없는 걸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고, 있는 걸 그냥 봐주는 거니까요.

 

상담자: OOO 씨가 처음에는 병원이라는 공간이 무서워서 취직을 못한다고 하셨었어요. 그런데 마음 맞는 언니가 있는 병원에서는 2년 넘게 일을 하셨었잖아요. 그리고 그 언니가 일을 그만두었을 때 같이 그만두었고요. OOO 씨는 병원이라는 공간을 무서워하시는 게 아니라 사람을 무서워하시는 것 같아요.

왜 무서울까요? 방금 대학교 때 왕따를 당했던 경험을 이야기하시면서 눈시울이 많이 붉어지셨어요. 화도 내셨고요. 그 감정, 바로 그 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대학교 때 당했던 그 무서움. 그 무서움이 끼어들어오니까, 원장님이나 선배님이 잔소리를 하면, 1이라는 자극이 혼자 10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그냥 잔소리일 뿐인데, 본인은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일로 해석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을 할 수가 없죠. 피해 다닐 수밖에 없는 거예요.

말씀 중에 일을 하다 보면 잔소리를 듣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스스로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런데 OOO 씨는 그게 10으로 느껴지니까, 집에 오면 뻗어버리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 9를 해결해줘서 1의 자극은 1로 느끼게 만들어주는 게 중요해요.

그 9는 어디서 왔을까요? 방금 그 감정이에요. 무섭고 서러운 그 마음. 그 감정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평생 피해 다닐 수밖에 없어요. 시간이 지난다고 우리 감정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냥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을 뿐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해결이 된 줄로 착각해요. 아니에요. 안에서는 살아 숨 쉬고 있어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어요. OOO 씨처럼요.

돈을 벌고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잔소리에 예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잘 되지 않았잖아요. 그리고 자신이 왜 그러고 있는지도 잘 모르셨잖아요. 그게 바로 숨겨둔 감정이 OOO 씨의 선택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건 바로 그 감정이겠지요. 해결을 하려면 대상이 있어야 할 테고, 가장 먼저 필요한 건 그 감정을 숨겨두지 말고 오롯이 다시 재경험하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유연상을 이어가다 보면 잊고 있었던 것들이 조금씩 떠오를 거예요. 오늘처럼요. 그건 없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거니까요. 그렇게 내 마음을 마주하고 바라봐주고 보듬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조금씩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어지리라 생각해요. 응원하겠습니다.

 

※ 본 글은 이일준 정신과 전문의가 Transmind 마음변화 연구소에서 무료 상담했던 내용을 각색한 글입니다.

 

♦ 정신의학신문 정신건강연구소 강남센터 개소 기념 ♦ 

     무료 마음건강검진 이벤트 안내 (클릭)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체기사 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