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저는 자존감이 낮아요. 남들한테 열등감도 잘 느끼고, 질투도 많이 해요. 저에게 지나치게 엄격할 때도 있고, 스트레스가 극심하고, 남들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해요. 늘 고민이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제가 애정결핍이라는 얘기를 처음 들었어요. 지금은 헤어진 남자 친구한테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애정결핍의 증상에 대해서 찾아보니까 저랑 비슷하더라고요.

일단 제가 의지하고 싶은 사람 앞에서는 하소연이나 자기비하를 많이 해요. 그리고 친구든 남자 친구든 정말 마음을 잘 안 여는데, 열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의지하게 돼요. 그러다가 상대방이 지친 기색을 보이면 너무 상처받고, 화가 나고, 저를 떠날까봐 미친 듯이 불안해져요.

그리고 친구나 남자 친구에게 지지와 사랑, 우정을 받게 되면 계속 그 감정을 확인받고 싶어 해요. 나 좋냐, 왜 좋냐, 얼마나 좋냐, 하도 물어보니까 남자 친구가 나중에는 그 질문을 정말 꺼려했어요.

누구에게나 잘 보이려고 하고 좋은 사람인 척하려는 경향도 좀 있어요. 누가 저를 미워할까 봐 자주 두려워해요. 이런 것들을 너무 해결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진_픽사베이


A) 본인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계시네요. 제가 정리만 조금 도와드리면 될 듯합니다. 

시작은 낮은 자존감이겠죠. 자존감이 낮다는 말은 결국, '나는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믿음이 있는 거고요. 나는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에, 다른 복잡한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 아닌데, 쟤는 괜찮아 보이네? 열등감을 느끼고 질투를 하게 되죠. 

내가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믿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나를 안 좋게 볼까 봐 두렵죠. 그러면 스스로에게 엄격한 기준을 내세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죠. 또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내가 마음을 열었다가, 내 안 좋은 면을 상대방이 보고 비난하거나 떠나는 것이 두려우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사실 별 거 아닌 일에도 마음을 쉽게 열게 됩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 아닌데,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 같으면 그게 너무 고맙거든요. 그리고 나를 좋아해 주는 상대방을 어떻게든 곁에 두려 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하소연과 자기비하, 상대방에게 의지하는 거죠. 스스로가 안 좋은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곁에 둘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상대방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것을 알리고 증명하려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 없이는 삶이 불가능한 것처럼, 상대방이 느끼게 만들죠. 또 동시에 괜찮은 사람이 아닌 나를 좋아하는 것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받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있는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더 책임져 줄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삶의 무게를 버거워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의 무게를 버거워하고 지치게 되고 떠나죠. 

이렇게 다시 버림받으면서, 스스로가 괜찮지 않은 존재임을 다시 확인하게 되고 자존감은 더 낮아지게 됩니다. 또,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도 줄어들게 되겠죠.

애정결핍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 '나는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받을 수 없다.'라는 믿음이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이런 믿음이 생기게 된 데는 뭔가 이유가 있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확신을 얻을 수 없던 경우가 가장 흔하죠. 부모님이 너무 바쁘거나, 다른 이유로 신경 쓰지 못할 상황이거나, 혹은 부모님이 아예 좋은 양육자가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슬프긴 하지만, 이 세상 모든 부모가 좋은 부모는 아니니까요.  

본인이 가지고 있는, 현재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믿음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고, 이런 부분은 약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우울이나 불안 등 증상은 약으로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지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약으로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서 약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울, 불안이 심해지면 사람은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배가 불러야 창의적인 지적 활동이 가능하니까요. 약은 우울, 불안이 심해지는 것을 막아서, 상담 치료가 효과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어린 시절 헝겊으로 아기 코끼리를 묶어서 키우면, 성인이 돼서도 헝겊을 찢고 달아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여러 번 시도했고, 실패했기 때문에, 헝겊은 찢을 수 없는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거죠. 지금 본인을 묶고 있는 헝겊을 풀고, 본인이 원하시는 세상으로 떠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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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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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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