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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엄마와 제임스 엄마 - 다문화가정 이야기
김영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8.07.21 07:26

[정신의학신문 : 김영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울란바타르의 외갓집

몽골의 울란바타르는 한국이의 외갓집입니다.

6년 전 한국이 엄마는 몽골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그리고 결혼 직후 한국말을 제대로 할 수 없던 때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옹알이를 시작하면서 몽골말로 놀아주고 싶었지만 시부모와 남편은 아이는 한국 사람이니 절대 몽골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엄마는 아이를 키울 때 아예 입을 다물었다고 합니다.

 

한국이는 자라면서 말이 늦고 이유 없이 심하게 떼를 썼고 처음 만나는 사람을 지나치게 경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소아정신과에서 선천적인 자폐가 아닌데도 자폐 증상을 보이는 ‘유사 자폐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유사 자폐증은 아기를 돌보는 사람이 우울하거나 미숙해서 아기를 기를 때 충분한 자극을 주지 않아 생기는 문제입니다.

선천적인 자폐증과는 달리 적절한 교육과 치료로 호전이 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 제임스 엄마가 깨달은 것은?

제임스는 엄마는 한국인, 아빠는 미국인입니다.

회사일로 서울에서 장기 체류 중이던 제임스 아빠를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제임스 엄마는 결혼 후 미국에서 문화적 이질감과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시부모는 한국을 후진국 취급하며 엄마를 무시했다고 합니다.

 

“영어도 할 줄 모르냐”라며 구박을 받은 엄마는 한국말로 아이를 돌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집 밖에서는 아이와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이는 유사 자페 증상을 보여 미국에서 진단과 치료를 받았지만 제대로 회복되지 못해 저희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행복하지 않고, 한국말 하는 것을 창피하게 여겨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고 아이를 길렀더니 제임스도 마음의 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제임스는 병원 치료를 통해 엄마와의 애착관계를 새롭게 형성하면서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엄마는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앞으로는 아이와 한국말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외출해서도 다른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아이와 한국말을 할 것이다. 치료를 통해 그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했습니다. 

엄마 아빠의 국적만 바꾸면 우리나라 다문화 가정에서 일어난 일들과 꼭 같은 상황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 외국인 아내, 며느리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존중하고 배워야 하는 이유

“너희 나라 말로 ‘감사합니다’가 뭐냐?”

“깜언예요. 어머니.”

얼마 전 TV에서 다문화가정 고부간의 대화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교육방송에서 방영하는 ‘다문화 고부열전’이란 프로였습니다. 사사건건 외국인 며느리와 다투는 고부가 함께 친정나들이에 나서서 며느리 나라 문화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되는 프로입니다.

필자는 평소에 다문화가정에서 남편과 시부모는 아내, 며느리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존중하고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해왔기 때문에 이 장면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제가 다문화가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다문화가정 자녀들 때문입니다.

십여 년 전부터 농촌총각과 외국인 신부의 결혼이 늘어나면서 그들 자녀들이 소아정신과 병원을 많이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상담하러 오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대부분 비슷한 증세를 보였습니다.

유아의 경우 말하기가 늦어진 언어발달장애나 이 자폐증과 비슷한 유사 자폐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유아시절의 언어발달지체나 유사 자폐 증상은 조기에 발견하여 바른 성장을 돕지 않는 한 청소년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문화 가정에서 엄마의 모국어를 존중하지 않으면 엄마로서는 서툰 한국말로 아이를 돌볼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애착형성이 힘들어져 언어발달, 유사 자폐 등 발달장애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 아이들의 엄마인 결혼이주 여성들은 이웃과 친척들의 문화적 편견과 배타성으로 상처받은 경험을 호소합니다.

행복하지 않은 엄마의 마음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아이도 병들게 됩니다. 

 

♦ 바비 인형은 어느 나라 사람일까

호주 시드니의 유치원에는 50여 국적의 이민자 자녀들이 한 교실에 모여 있습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부모의 국적만큼 다양한 피부색의 인형을 가지고 놉니다.

이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우기 위해 전 세계 130가지 문화를 소개하는 1000여 종의 교구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무지개 친구’들의 옷차림과 피부색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인형은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좋은 친구입니다.

우리나라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들은 거의 금발의 백인 인형들입니다.
흑인 인형은 물론이고 황색 인형도 찾기 어렵습니다.  

올해 58번째 생일을 맞이한 바비 인형은 금발의 백인 일색에서 흑인 바비와 동양인 바비처럼 더 다양한 피부색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시대변화에 발맞추어 피부색도 다양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_위키독

 

인종적 편견을 없애는 교육투자는 영유아기에 시작되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피부색이 다른 친구들과 친숙해지려면 유치원에서부터 다양한 피부색의 인형들과 놀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조화롭게 살아가야 할 다문화시대에 진입했습니다.

많은 다문화가정에서 외국인 엄마의 모국어 사용을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아이가 3세 전 말을 배울 때는 엄마가 적극적으로 말을 많이 시키고 신체적 자극을 주며 놀아주어야 합니다. 

 

엄마가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을 때는 자신의 모국어로 아이에게 말을 해야 합니다.

중요한 애착형성 시기에 한국말을 못한다고 입을 다무는 것은 아이의 정서발달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5세 이전에 아이 입장에서 이중 언어를 배우면 오히려 지능개발에 도움이 됩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점차 외국인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남편과 시부모가 생각을 바꿔 아내와 며느리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고 배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 륙섹(등 가방) 모델이란?

일찍부터 다문화사회를 맞은 선진국의 경우 이 같은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최근 독일과 네덜란드 등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양쪽 부모 나라의 언어를 모두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륙섹모델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국제결혼 가정에서 한쪽 부모의 언어능력 향상에만 집중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경험에 의하면 어린이의 외국계 부모의 언어를 무시한 채 국어교육만 지원할 경우 처음에는 언어 능력이 향상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교육과정이 끝난 후 몇 달만 지나면 효과가 떨어졌습니다.

특히 모어(母語)를 배우는 것은 모든 학습발달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에 아이의 국어교육 과정에 외국계 부모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여 엄마나라의 말도 함께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엔(UN)이 작성한 <대체 이주에 관한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경제활동인구를 최대한 유지하려면 2020년 이후로 매년 213,000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교육에 힘쓰고 이 아이들이 자라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정신으로 ‘코리언 드림’을 실현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야말로 다인종, 다민족 대한민국을 맞이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비책이 될 것입니다.

 

 

김영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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