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영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지’의 작가 펄벅의 딸

 

펄벅은 대하소설 “대지(The Good Earth)”의 작가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여류작가입니다. ‘대지’는 빈농으로 시작하여 대지주가 되는 왕룽의 이야기로 당시 중국의 사회상과 중국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대하소설입니다.

펄벅에게는 아주 예쁜 딸이 있었는데 이 아이가 자라면서 사람에 대한 반응이 없고 지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펄벅의 딸은 6세에 자폐증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1950년 ‘자라지 않는 아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통해 딸 ‘캐롤’을 세상에 당당히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당시 열악했던 장애아동 교육에 대한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자라지 않는 아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펄벅은 자서전에서 부모가 겪어야 하는 방황과 아픔은 절절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전 세계의 저명한 의사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결국 자폐증이 간단한 치료로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일생동안 장애를 겪는 병이란 것을 미국의 한 병원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 ‘대지’의 주인공인 왕룽이 ‘첫째 딸이 말도 하지 못하고 제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슬퍼했다’라는 대목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였습니다.

 

사진_픽셀

 

 

바보 천재란?

 

“중국에서는 이 아이들을 ‘바보 천재’라 불러요” 1998년경 중국에서 연수차 방문한 중국의 정신과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자폐증(자폐성 장애)’란 진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근래 중국에서 진료받으러 오는 환자들을 만나보면 현재 중국의 큰 도시에는 소아정신과가 개설되어 있고 자폐증 진단도 내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 전까지는 자폐성 장애는 쉽게 진단 내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소아정신과 교수로 재직하던 홍강의 교수가 1979년 귀국하여 서울대학교병원에 처음으로 소아정신과를 개설하고 아이들을 진료하기 시작하면서 말이 늦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전반적으로 발달이 늦은 ‘자폐증’ 아이들을 진단 내리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자폐증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아이가 발달이 느리다고 생각되면 우리 아이가 자폐증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을 만큼 자폐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레인맨’과 ‘말아톤’의 주인공들

 

일반인들도 자폐증에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영화에서도 자폐증을 가진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더스틴 호프만이 훌륭한 연기를 펴내 1989년 오스카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레인맨’도 그런 영화입니다. 레인맨은 다른 사람들과 말을 제대로 주고받지 못하고,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고, 상상력은 부족하지만 숫자에 예민하고 계산기보다 더 정확하게 계산을 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섬세한 표정과 특이한 말투까지 완벽한 연기를 펼친 조승우의 ‘말아톤’에서는 마라톤을 통해 자폐아동이 사회와 소통해 나가는 과정을 감동 깊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기억력과 공간 지각 능력이 뛰어나 소아외과 의사로 활약하는 ‘굿 닥터’의 주인공이나 악보도 볼 줄 모르지만 한 번 들은 피아노곡을 그대로 연주하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의 주인공들도 자폐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폐아동이 어떤 특출한 능력을 보이는 ‘서번트 증후군’은 모든 자폐아동들에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진_말아톤 장면 中(제작:씨네라인투/배급:쇼박스)

 

 

자폐증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

 

자폐증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43년 케너(Kanner)에 의해서입니다. 그는 아주 특이한 아이들 11명을 발견하고 이 아이들에게 유아 자폐증이란 진단을 내렸습니다. 자기 세계에 빠져 있고 폐쇄적으로 세상과 담을 쌓은 듯이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말입니다. 당시의 정신의학은 모든 질병의 원인을 정신분석적인 이론에 근거해 찾았습니다. 따라서 자폐증은 냉정하고 무관심한 ‘냉장고 엄마’ 때문에 아이에게 자폐증이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현재는 자폐성 장애는 선천적인 뇌 장애임이 밝혀져 부모들의 잘못된 양육태도가 원인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폐증은 부모 사랑의 결핍으로 온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은 소아정신과 의사뿐 아니라 신경생리학자, 뇌 발달 전문가들이 모두 이 불가사의한 질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환자보다 이 병을 연구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기가 늦으면 자폐증일까

 

지나치게 수줍어하거나 혼자 놀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자폐라고 한다면 잘못된 일입니다. 하지만 말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자라면서 말을 하겠지’하면서 제대로 된 진단과 교육받을 시기를 놓치는 안타까운 일이 생기는 일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자폐아동은 말하기가 늦거나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아이가 말하기가 늦은 경우엔 아이가 말귀는 잘 알아듣는데 말하기만 늦은 것인지, 아니며 다른 사람의 말에 관심이 없고 눈맞춤도 잘 되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름을 부르면 잘 돌아보고 말하기가 늦어도 눈짓이나 손짓으로 의사소통이 되는 것은 단순히 말하기가 늦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만 늦는다고 해서 혹시 자폐가 아닌가 하고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사람에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자폐를 의심해야 합니다.

 

사진_픽셀

 

 

자폐아동을 위한 교육

 

자폐증의 치료 목표는 아이들이 장차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능력을 최대한 개발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정확한 조기진단이 중요하고 진단이 내려지면 아이 수준에 맞는 조기 특수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자폐증에 대한 높아진 관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폐아동을 위한 교육시설은 부족한 상태입니다.

자폐증이 다른 질병과 다른 점은 어떤 방법을 쓰든지 간단하게 치료가 되는 치료법은 없다는 점입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다각적으로 치료하고 자폐증으로 인한 문제 행동은 가능한 줄이고 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집에서는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간지럼을 태우거나 같이 뒹구는 놀이나 공을 주고받는 놀이 등으로 아이의 반응을 끌어내야 합니다. 혼자서 노는 놀이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부모는 아이에게 참견하고 함께 놀이를 해야 합니다. 혼자 놀이에 빠져 있는 것을 방치하면 자폐적 성향만 더 커질 뿐입니다.

 

 

김영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동소아정신과 원장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및 대학원 졸업, 신경과 정신과전문의
미국 유타주 PCMC 및 유타주립대 소아정신과 연수 (1988~1991)
서울대학교 병원 소아정신과 전임의 수료 (1992),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자격 취득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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