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영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을까요? 천사 같은 웃음을 짓고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은 걱정 근심 없이 마냥 행복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많은 연구들에서 아기들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기 때 받은 스트레스는 아기가 자라 성인이 된 이후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아기들이 스트레스로 고통을 당하지 않게 주변 어른들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태아가 받는 스트레스

태아가 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아기가 태어나고 자라서 일생동안 비만, 고혈압, 당뇨 같은 성인대사증후군에 시달리게 됩니다, 태아가 받는 가장 심한 스트레스는 굶주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50년대까지 보릿고개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농민들은 초근목피(草根木皮)하며 기근에 시달렸습니다. 만약 임산부가 굶게 되면 태아들은 어떤 스트레스를 받게 될까요? 

 

성인 질병의 태아 기원설 (fetal origin of adult disease)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역사적인 사실인 ‘네덜란드 기근(Dutch Famine)’때의 임산부와 태아들에 대해 역학조사를 실시하여 엄마의 굶주림이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였던 1944년부터 1945년까지 네덜란드 국민들은 독일군의 봉쇄에 따라 연합국의 식량 보급이 차단되어 심각한 기근에 빠지게 됩니다. ‘굶주린 겨울‘ 로 알려져 있는 당시 겨울 기근동안 임신한 여성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그 자녀들은 자라서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 성인병인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3배가 높아지고 당뇨병과 비만에 걸릴 위험도 매우 높아진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스트레스 호르몬은 쉽게 태아의 순환계롤 통과해 들어가 태아는 엄마로부터 스트레스 신호를 탐지하게 됩니다. 아기들은 엄마의 뱃속에서 ‘세상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니 무엇이던 악착같이 저장해 두어야 한다’는 교훈을 몸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신체대사의 일부가 영원히 굶주림에 대비하여 변해 버립니다.

 

임산부가 우울하거나 집안에 걱정거리가 생겨 불안하면 태아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요? 엄마의 불안과 신경질은 태아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태아 뇌의 편도체는 이것을 불안으로 감지해 아기는 불안한 성격으로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엄마의 스트레스는 태아의 뇌 발달에도 영향을 끼쳐 뇌 세포 간 활발한 연결이 이루어지지 못해 학습과 기억에도 나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태교를 중시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쓰인 ‘태교신기‘(胎敎神騎)는  "뱃속 열 달이 출생 후 10년의 가르침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하며 태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태교의 책임은 그 지아비에게 있다. 태교는 온 집안이 해야 하고 임부를 보호해야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임신 시작부터 임부의 신체건강과 정신 건강을 위해 주위 사람들이 임부를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것으로 특히 남편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미국의 루스벨트 전 대통령도 “우리세대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국가과업을 이어갈 다음 세대를 잘 기르는 일이다. 따라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특히 여자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연설을 했습니다. 미래의 어머니가 되는 여자아이들의 정신건강에 나라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보는 대통령의 교육철학을 보여주는 연설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사람은 우유만으로 살 수 없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소아과학을 개척한 루터 에밋 홀트(Luther Emmett Holt) 박사는 아동양육 전문가로 대다수 중산층 부모들은 그의 양육법을 따랐습니다. 홀트 박사는 ‘아기 돌보기와 잘 먹이기’(The care and feeding of children)란 양육서 에서 아기들과 적게 놀아줄수록 좋다고 주장했습니다.  책임감 있고 독립적인 시민으로 키우려면 어릴 때부터 엄격하게 키우라고 했고 지금도 미국 중산층 부모들은 아기를 따로 재우고, 아기가 운다고 너무 자주 안아주면 안 된다는 그의 주장을 따르고 있습니다.

 

홀트의 영향을 받은 당시의 의사들과 부모들은 입원한 아기들을 면회 갈 필요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중환자실에 격리되어 있는 미숙아들도 걱정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누구라도 젖병만 들면 아기들이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50년부터 시작된 많은 연구를 통해 이런 주장이 크게 잘못된 것이란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아기들을 정상적으로 잘 자라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런 의문을 가지고 실시한 실험에는 신생아 병동의 미숙아들을 하루 세 번 15분씩 몸을 문지르고 팔다리를 움직여주는 실험이 있습니다. 몸을 쓰다듬고 팔다리 굽히기 같은 보살핌을 받은 아기들은 이런 보살핌을 받지 않은 미숙아들에 비해 성장속도가 빨랐고 더 활발하고 또렷해졌습니다. 이런 사실은 MRI와 같은 최첨단 의료장비보다 손으로 만져주는 간단한 처치가 훨씬 더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신체접촉은 아기들에게 가장 중요한 경험입니다. 신체접촉을 하지 않는 스트레스야말로 아기들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스트레스입니다.

 

사진_핀터레스트, 할로의 연구에서 사용된 새끼원숭이와 타월 천으로 만든 어미

 

할러(Harlow)는 ‘아이들은 우유만으로 살수 없다’는 사실을 새끼원숭이 실험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할로는 원숭이에게 두 가지 형태의 어미 대용물을 주었습니다.  한 어미에게는 젖병을 달아두고, 다른 어미에게는 타월 천으로 몸을 감싸두었습니다. 그리고 새끼원숭이들이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지, 누구를 선택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새끼원숭이들은 젖을 주는 어미가 아니라 타월 천으로 만든 어미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엄마를 사랑하는 것은 엄마가 달라붙을 수 있는 부드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즉 자신을 사랑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위협적인 상황이 닥쳐오면 재빨리 털 어미 원숭이에게 매달려 위로를 구했습니다. 이것으로 할러는 원숭이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있어서도 음식공급 보다는 엄마와의 신체접촉과 그 경험을 통한 안정감이 생존에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할러는 ‘사랑의 본성’(The Nature of Love)이란 논문에서 사랑의 본성은 애착이며 이는 엄마와의 따뜻한 신체적 접촉으로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새끼원숭이를 어미 품에서 강제로 떼어내 격리시키면 이는 커다란 스트레스가 되어 새끼는 큰 슬픔에 잠기고 이후 오랜 기간 고통을 받게 됩니다. 

 

할로의 실험은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인 것 같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랑과 비슷한 어떤 것-애착-이 결핍되면 아기들이 겪을 수 있는 것 중 가장 고통스럽고 아픈 스트레스가 되어 나머지 인생에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김영화 서울 강동소아정신과 원장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및 대학원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정신과 전임의 수료
미국 유타주 PCMC(Primary Children's Medical Center) 및 유타주립대학 소아정신과 임상의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2013.6.1.-2014.5.31.)
강동구자살예방협의회 부회장 (현재)
저서 : 엄마로 살기가 힘들 때 읽는책(2017), 마음이 아닌 뇌를 치료하라 (2017) 등 

 

 

김영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동소아정신과 원장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및 대학원 졸업, 신경과 정신과전문의
미국 유타주 PCMC 및 유타주립대 소아정신과 연수 (1988~1991)
서울대학교 병원 소아정신과 전임의 수료 (1992),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자격 취득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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