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 편지에서는 연인과 가까워지면 도망치고 싶거나, 멀어지면 불안해지는 연애를 반복하는 분들을 위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성인 애착의 관점에서 사랑 안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았지요. 하지만 어떤 분들은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그 앞에서 자꾸만 마음이 움츠러들곤 합니다. 연애가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이나 사랑 그 자체가 두렵게 다가올 때도 있으니까요. 또는 진심이라 믿었던 사람과의 이별 이후, ‘다시는 사랑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하지요. 오늘은 그런 상처와 두려움 속에 계신 분들에게 책을 소개하고 편지를 보냅니다. 이 책이 전하는 정신분석적 자기 이해가 그 두려움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우리의 마음속엔 저마다 지울 수 없는 한 아이가 살고 있다.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자라고 싶지 않은 아이.

[...] 그 아이의 불안을 잠재우는 길은 성장을 멈추어 버린 그 아이에게

다시금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아이가 어른의 시각과 사고로 세상과 자신을

큰 두려움 없이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갖도록.

사랑은 그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서 관계를 맺는 일이 막막하고 겁이 난다고 느껴지셨나요? 과거의 상처가 충분히 소화되지 않아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되거나, 아직 아물지 않은 사랑의 기억이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일 수 있습니다. 어릴 적 겪었던 거절, 방임, 혹은 정서적 학대와 같은 부정적 경험이나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반복되며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감정으로 남아 있다면, 이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내면아이(inner child)’라는 용어가 사용되곤 합니다. 이때 상처와 이별에서 비롯된 고통의 시제는 단순한 과거형이 아니라,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_freepik
일러스트_freepik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정신분석가인 김혜남 저자는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에서 무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사랑에 대한 깊은 정신분석적 통찰을 제시합니다. 책 속에서 저자는 외로움은 모든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일 수 있지만, 사랑할 수 없는 이들이 이 이유로 더 외로워야만 하는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사랑 앞에서 머뭇거리는 분들도 사랑을 향해 조심스럽게 한발 내디뎌 보고 싶은 용기가 조금씩 자라나는 걸 느끼게 되실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린아이같이 말하고,

아이처럼 유치한 장난을 치면서 깔깔거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 그게 바로 과거 어느 언저리에선가 성장이 멈추어 버린 아이를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연인들의 그 모습은 사랑을 갈구했지만 사랑 대신 상처만을 입은

과거의 어린아이로 돌아가 다시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상처 대신 사랑이 내게로 온다.”

 

 

 어떤 분들은 자신이 아직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 좋은 연인이 될 준비가 안되었다고 여겨, 관계를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시기도 하는데요. 이 책에서는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의 시선을 담아, ‘완벽한 사람’이나 ‘무결한 사랑’에 대한 이상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실수 없이 완벽하고, 빈틈 하나 없는 사랑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사랑은 시작부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있어 주는 과정을 통해,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성숙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누군가에게 ‘충분히 좋은(good enough)’ 연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랑은 완성이 아니라 결국 이렇게 조금씩 배워가는 과정은 아닐까요?

 

프로이트는 정상의 기준이 '약간의 히스테리(a little hysteric),

약간의 편집증(a little paranoid), 약간의 강박(a little obsessive)을 가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곧 어떤 사람도 이런 것들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내 안에 콤플렉스나 갈등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 되는 건 아니다. [...]

사랑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왜 모든 사람이 성숙한 사랑을 해야 하는가? 왜 모든 사람이 열정적인 사랑을 해야 하는가?

 어떤 모습이든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고 편안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거다.

이런 마음이라면 우리는 굳이 이상적인 것에 매달리지 않고

다른 사랑들의 형태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얼마든지 나 자신이 행복하면서도 풍부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언어로 바라보면, 성인의 모든 사랑은 과거 감정의 재편집이자 재구성과도 같습니다. 어느 날 운명처럼 다가온 것 같이 느껴진 그 사람은, 어쩌면 오랫동안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그리워해 온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부모와의 감정을 되살리게 하는 인물이거나, 마음속에 그려온 이상적인 부모상을 닮은 사람일 수도 있지요. 또는 “구원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대상, 혹은 반대로 구원받고 싶은 자기를 돌봐 줄 수 있는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이든, 소중한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falling in love)’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랑을 하는 것(being in love)’을 거쳐 ‘사랑에 머무는 것(staying in love)’”에 이르기까지 그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사랑이 지닌 힘을 통해 성숙과 치유의 경험을 하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한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만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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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개해드리는 [Sincerely yours,] 시리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관점과 추천이 반영된 책을 읽고 싶어 하시는 환자분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며 필요성을 느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편지나 이메일의 끝인사로 사용되는 'Sincerely yours,'는

'진심을 담아' 또는 '당신의 진실한 -로부터'라는 뜻으로

매우 정중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친밀한 사이에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진료실에서 나누는 상담이 가진 기억 지속 시간의 한계를 넘어,

평소에도 소지할 수 있는 문자화된 책을 통해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분들이 원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정신건강을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직접 책을 읽고, 책을 처방해봅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김예슬 원장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미국 New York University (NYU) 학사 졸업
한양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한양대학교 대학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사 졸업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치료 전문과정 이수
전) 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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