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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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온종일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 하루를 보낸 분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부디 이 편지와 소개해 드리는 책을 통해 머리가 조금은 식혀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요.

오늘날 우리가 신경 쓸 수 있는 범위는 무궁무진하여 도리어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신경 쓰기가 어디서부터 시작될 수 있는지 해가 뜨는 아침부터 거슬러 따라가 보면 어떨까요? 아침에 눈을 떠 오늘은 무슨 옷을 입고 나갈지, 이번 지하철을 타면 출근 시간에 늦지는 않을지 신경 쓰며 하루를 시작하셨나요?

폭염을 뚫고 무사히 도착한 회사에서는 동료나 상사의 미묘한 표정, 말투, 목소리의 변화가 내포한 의미가 무엇인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신경 쓰다 보니 괴로우셨나요? 달력을 보며 여름휴가 계획을 떠올리다가 당장 이번 달 카드값이 신경 쓰이고, 월급, 더 나아가 지난 인사평가와 앞으로의 이직까지 신경 쓰기의 범위가 넓어졌을 수도 있겠네요.

친구나 가족들의 일까지 신경 쓸 대상이 확장되면 이미 해는 지고 어두운 밤을 맞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신경 쓰느라 과열된 머리를 한 김 식히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를 보며 신경 쓸 새로운 아이디어가 추가되지 않았으면 다행일 것 같아요. 살면서 해야 하는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까지 신경 쓸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시간이 모자라 다시 내일부터 신경 쓸 목록을 이어나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잠을 청하려 방의 스위치를 끄고 침대에 눕기는 했는데, 여전히 머릿속의 신경 쓰기 스위치는 꺼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내일 벌어질 일들을 신경 쓰며 계속 환하게 켜져 있는 것만 같아서요. 이렇게 하루 온종일 신경을 쓰느라 에너지를 사용해 몸, 마음, 머리가 모두 방전되어 있음이 분명한데도,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순적으로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며 좌절하고 있지는 않으실지 염려가 되네요.

이제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신경을 끄는 스위치가 있다면 제발 그 스위치를 찾아 누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기술이라도 있다면 습득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한 번쯤은 들었을 것 같습니다.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저자 마크 맨슨은 우리에게 어떤 가치와 기준을 선택해서 건강하게 신경 쓸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모든 걸 가지려는 사람, 즉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모두 채우려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잃지 않는 인생을 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어떤 부족함도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 모든 걸 가져야 한다는 믿음이 인생을 ‘지옥의 무한궤도’에 빠지게 만든다.”

 

그리고 조금은 무례한 듯 도발적이고 솔직한 저자의 유쾌한 문장들 속에 느껴지는 진심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지는데요. 그의 자신감 있는 문장들이 신경 끄기의 여정을 함께하는 데 든든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어렸을 적 체육 시간에 바닥에 깔려있던 먼지 날리는 두툼한 안전매트를 떠올리며, 넘어지더라도 뜀틀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던 것처럼요.

 

“나는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법을 알려줄 생각이 없다. 대신 포기하고 내려놓는 법에 대해 말할 것이다. 인생의 목록을 만든 다음 가장 중요한 항목만 남기고 모두 지워버리는 방법을 안내할 것이다. 눈을 감고 뒤로 넘어져도 괜찮다는 것을 믿게 해줄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만약 다름을 받아들이고 신경 쓰지 않기 위해 그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무언가에 신경을 쓴다면 “묘하게도 우리는 그런 과정을 통해 자유로워진다. 더는 모든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 관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그것에 얼마나 가치를 두느냐에 좌우된다.”라고 강조하며 무시해도 좋은 엉터리 가치 4가지 ‘쾌락, 물질적 성공, 나는 다 안다는 태도, 무한 긍정’을 소개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다음과 같은 가치 다섯 가지를 제안하기도 합니다.

 

“첫 번째 가치는 강한 책임감이다.

  두 번째는 당신의 믿음을 맹신하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실패다.

  네 번째는 거절이다.

  마지막 가치는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숙고하는 것이다.”

 

다섯 가지의 가치 외에도 직접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있어 중요한 가치들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시기를 권해 봅니다.

 

“인간은 어딘가에는 신경을 쓰게 되어 있다. 어떤 것에도 신경을 안 쓰는 것도 뭔가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선택에 관한 것이다. 무엇에 신경 쓸 것인가? 어떤 가치에 따라 행동할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삶을 평가할 것인가? 그리고 좋은 가치와 좋은 기준을 선택했는가?”

 

신경 끄기, 역설적으로 신경을 잘 선택해 키기 위해서 가치관의 재검토 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자만의 거침없는 독설처럼 들리는 응원에 힘입어 우리가 “기꺼이 길을 잃기를, 확신이 흔들리는 가운데 망했다고 느끼도록, 그리고 틀림없이 버림받는 일을 견뎌야 할 것임에도, 무엇보다 불안을 느끼게 될 것임에도” 이러한 신경 끄기의 기술을 시도해 볼 용기를 내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책을 소개해드리는 [Sincerely yours,] 시리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관점과 추천이 반영된 책을 읽고 싶어 하시는 환자분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며 필요성을 느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편지나 이메일의 끝인사로 사용되는 'Sincerely yours,'는 '진심을 담아' 또는 '당신의 진실한 -로부터'라는 뜻으로 매우 정중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친밀한 사이에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진료실에서 나누는 상담이 가진 기억 지속 시간의 한계를 넘어, 평소에도 소지할 수 있는 문자화된 책을 통해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분들이 원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정신건강을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직접 책을 읽고, 책을 처방해 봅니다.

궁금했던 책이나 고민이 있으신 내용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향후에 알맞은 책을 찾아 소개해 드릴게요. 그럼 안녕히 계시고 다음 편지에서 또 뵐게요.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미국 New York University (NYU) 학사 졸업
한양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한양대학교 대학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사 졸업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치료 전문과정 이수
전) 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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