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늘은 살면서 매우 예민하다고 느껴왔거나 주위에서 “너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던 분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부디 이 편지와 소개해 드리는 책을 통해 예민함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되시고, 오히려 당당히 예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요.
살아가며 일부 민감한 상황들에 예민해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외부의 감각 자극이나 환경에 지속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여 쉽게 지치기도 합니다. 대인관계나 사회생활 속에서 예민함이 지속적으로 작동하면서 소진되고 힘들다고 느끼기도 하죠. 또한 어렸을 때부터 주위에서 ‘너무 예민하다’, ‘유별나다’, ‘유난스럽다’, ‘까탈스럽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고 위축되거나 소심해지는 경우도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예민함을 나타낼 수 있는 모습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몇 가지 예시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미묘한 분위기나 공기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반응하곤 하시나요? 상대방의 얼굴빛 변화나 눈동자의 미세한 떨림으로 감정 변화를 재빠르게 감지하셨나요? 공간 속 빛의 밝기나 배경음악이 유난히 신경 쓰이시나요?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에 사뭇 다르게 전달되는 말에 쉽게 상처받고 대인관계가 힘들다고 느끼셨나요? 사소한 일에도 일일이 신경 쓰며 걱정이 많지는 않으신가요?
이 중 여러 가지에 고개를 끄덕이셨다면, 당신은 ‘매우 예민한 사람들(HSP: Highly Sensitive Persons)’에 속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개념은 2006년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일레인 아론 박사가 제시한 것으로, 박사는 약 20퍼센트의 사람들이 이 범주에 해당한다고 말합니다. HSP는 외부 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환경에 쉽게 압도되는 민감한 신경 시스템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뇌과학자가 말하는 예민한 사람의 행복 실천법)>의 저자 다카다 아키카즈는 의사이자 뇌과학자로, 스스로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하고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남들처럼 살지 못하는 것에 힘들어하다가 HSP 개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민함은 타고난 기질이기 때문에 쉽게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민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공감하며 이 예민함을 어떻게 수용할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매번 느낄 수는 없지만, 알 필요도 없는 상대의 감정이나 의도를 남들보다 쉽게 알아차리기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감정에 과부하를 느끼곤 했다. [...] 이 ‘괴로운’ 능력에도 장점이 있다. 먼저 상대의 고민이나 불만을 알아차리고 해소해줄 수 있다. [...] 남의 기분을 너무 잘 알아차려서 힘든 적이 있었는가? 사실 남의 기분을 잘 모르는 것보다 훨씬 낫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HSP)은 세상을 조금 더 많은 점으로 이루어진 고해상도 카메라로 바라보며, 음향을 서라운드 시스템으로 입체감 있게 듣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같은 세상과 상황이지만 뉘앙스의 차이를 남다르게 감지할 수 있으니, 더 풍부하고 많은 자극들에 노출되는 것이니까요.
“남들보다 예민하다는 것은 자극에 쉽게 반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외부 자극에 남들보다 빨리 더 크게 반응하지 않는가? 그것은 뇌의 처리 능력이 높다는 증거다.”
흔히 오해받듯 예민함이 나쁘고 반드시 고쳐야만 하는 부정적인 개념은 아니지만, 내가 조금 더 불편하고 피곤할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이 다름 혹은 특별함이 문맥의 미묘한 차이를 읽어내고 세세한 디테일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한 끗 차이를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예민한 사람들만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예민함’은 ‘주의 깊음, 섬세함, 배려심 깊음’ 등의 의미와 통한다. 예민한 당신은 주의 깊고 배려심 깊으며 섬세한 사람이다. [...] 세상엔 예민함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그만큼 우리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존재다.”
세상의 80퍼센트에 해당하는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당당히 타고난 예민함을 발휘하고 촉각을 세워 이 다름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노력으로 학습하기 어려운 이 세심함과 섬세함을 통해 기존과는 다른 차별화된 변화를 만들며,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기기를 오늘도 응원합니다.
- 책을 소개해드리는 [Sincerely yours,] 시리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관점과 추천이 반영된 책을 읽고 싶어 하시는 환자분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며 필요성을 느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편지나 이메일의 끝인사로 사용되는 'Sincerely yours,'는 '진심을 담아' 또는 '당신의 진실한 -로부터'라는 뜻으로 매우 정중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친밀한 사이에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진료실에서 나누는 상담이 가진 기억 지속 시간의 한계를 넘어, 평소에도 소지할 수 있는 문자화된 책을 통해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분들이 원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정신건강을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직접 책을 읽고, 책을 처방해 봅니다.
궁금했던 책이나 고민이 있으신 내용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향후에 알맞은 책을 찾아 소개해 드릴게요. 그럼 안녕히 계시고 다음 편지에서 또 뵐게요.
한양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한양대학교 대학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사 졸업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치료 전문과정 이수
전) 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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