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 해의 시작은 순조롭게 보내고 계신가요? 새해를 맞아 다짐한 계획들이 벌써부터 어긋난 모습을 보며 ‘나만 이런 걸까?’ 속상해하고 계시지는 않았을지요. 오늘은 이런 고민들의 연장선으로, 살아가며 ‘내가 정상이 아니라 비정상이면 어떡하지?’ 또는 ‘혹시 내가 정신적으로 이상한 것은 아닐까?’라고 걱정하고 계신 분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궁금해 왔던 분들을 포함해서요. 이 편지와 소개해 드리는 책을 통해 정상성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우리의 초조함도 함께 조금씩 가라앉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다 폭식해요. 하지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폭식은 폭식이 아니에요. 

라면 한 개 다 먹어요? 밥도 말아 먹어요?

젊은 여성분이 라면에 계란 넣어서 다 먹고 밥도 먹었어요.

그러면 ‘나는 죄를 지었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렇다면 정상입니다>의 저자인 하지현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과거 한 온라인 플랫폼에 비정상을 의심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상담소를 열었습니다. 많은 ‘정상인’들의 사연과 그에 대한 상담이 모아져 만들어진 이 책은 우리가 때로는 너무 엄격하게 자기 검열을 하고 있지는 않은 지 질문하게끔 합니다. 그 결과 정상이라는 이름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스스로를 의심하고, 몰아세우고, 자책하고 있지는 않은 지 돌아보게 합니다.

 

 물론 정신건강 질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존재합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진단 기준은 특정 증상, 그 지속 기간, 그리고 일상생활의 기능 저하를 기반으로 병리적 상태를 판단합니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에서의 정상성의 개념은 혈액검사처럼 평면 위에 놓인 숫자의 범주를 보며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즉 개인의 다양성을 고려해 조금 더 입체적으로 여러 축을 확장해 다면적으로 바라봐야 할 때가 많은 것이지요.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의 애도 기간은 얼마가 정상일까요? 한 달, 반년, 혹은 1년일까요? 수년이 지나도 그리워하면 비정상일까요? 최근 개정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TR)에서는 지속성 애도 장애라는 진단명으로 병리적 애도 증상이 1년(아동은 6개월) 이상 지속되고, 일상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때 진단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애도 기간만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의 삶에서 사랑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녔는지, 관계의 감정적 깊이와 나눴던 추억을 살피며, 숫자로는 모두 담아낼 수 없는 상실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정상이냐 비정상이냐 경계를 나누는 것은

마치 밤과 낮의 경계가 어디냐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몇 시 몇 분부터 밤이라고 정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없듯이

우리 삶도 꼭 ‘이건 정상이다, 비정상이다’라고 가를 필요가 없는 게 더 많아요.”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그래도 책에서는 우리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정상과 비정상을 이해하기 쉽게 네 가지 기준으로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몸 안에 탑재된 기본적인 기능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수학 시간에 자주 본 모자 모양의 정규분포 곡선을 떠올리며, 중심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있지는 않은 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사회가 요구하는 개인의 성취라는 여정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았는지, 한곳에 머물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타고난 기질을 고려해 특정 상황에서 얼마나 잘 적응하고 반응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1 수비범위 - 있어야 할 건 있고 없어야 할 건 없는가

2 스펙트럼의 관점 - 평균 분포곡선 안에 속하는가

3 삶의 궤적에서 보기

4 상황의 문제 vs 성향의 문제”

 

 진료실에서는 종종 지극히 정상 범주 안에 속하지만 불편감을 느끼거나, 더 나은 자신을 찾고 싶어하는 “정상과 건강 사이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비정상과 정상 사이에 있다고 고민하는 분들”을 만나기도 하는데요. 이분들에게는 약물치료 대신 상담을 통해 스스로 느끼는 불편감을 개선하고, 추구하는 건강에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여러분들이 정상의 범위가 무엇인지 감을 잡았으면 좋겠어요. 

스트라이크 존이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 

우리는 한가운데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다 잘못 던진 공이라고 여기는 버릇이 있어요. 

그건 어릴 때부터 ‘최선, 열심히, 완벽’이란 세 단어를

머리끈에 박아 질끈 동여매고 살아왔기 때문이에요.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큰일나고, 조금만 나태하면 질책하고,

속도가 늦춰지면 자학하면서 살다 보니 그러지 않으면 영원히 도태될 거라 믿고 있어요. [...] 

대신 그 자리에 ‘웬만하면 정상’, ‘대세에 지장 없다면 그게 그거’라는 말을 채워보세요.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지면서 몸에 들어가 있던 힘이 빠지고 편안한 마음이 들 거예요.”

 

 정신건강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생각할 때, 때로는 하루를 보내며 만나는 밤과 낮, 혹은 해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그 경계가 불분명하게 느껴지더라도, 어둠이 깔리기 전 저무는 하늘빛의 변화나, 바닷물이 발에 스치며 물러나는 순간들을 초조함 없이 담담히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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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소개해드리는 [Sincerely yours,] 시리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관점과 추천이 반영된 책을 읽고 싶어 하시는 환자분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며 필요성을 느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편지나 이메일의 끝인사로 사용되는 'Sincerely yours,'는 '진심을 담아' 또는 '당신의 진실한 -로부터'라는 뜻으로 매우 정중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친밀한 사이에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진료실에서 나누는 상담이 가진 기억 지속 시간의 한계를 넘어, 평소에도 소지할 수 있는 문자화된 책을 통해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분들이 원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정신건강을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직접 책을 읽고, 책을 처방해봅니다.

궁금했던 책이나 고민이 있으신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향후에 알맞은 책을 찾아 소개해 드릴게요. 그럼 안녕히 계시고 다음 편지에서 또 뵐게요.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김예슬 원장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미국 New York University (NYU) 학사 졸업
한양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한양대학교 대학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사 졸업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치료 전문과정 이수
전) 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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