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드러나는 모습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특별한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연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애쓴 일이, 떠날까 두려워 한 행동들이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킨 경험으로 돌아온 적은 없으셨나요? 사람만 바뀌었을 뿐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된다고 느껴오셨다면, 이번 이야기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작은 실마리가 되어줄지도 모릅니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뒤, 읽음 표시 ‘1’이 언제 사라질지 초조하게 바라보느라 아무 일에도 집중하기 어려웠던 순간들, 혹시 자주 있으셨나요?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이 드문 파트너 때문에 이미 혼자서 이별까지 수차례 상상해 보신 분이라면, 지금 이 편지와 소개해 드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혹은, 그 반대로 사랑으로 시작한 관계임에도 가까워질수록 답답하고 숨 막히는 느낌을 자주 경험하셨나요? 상대가 다가올수록 내 삶의 경계를 침범당하는 것 같아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이 반복되진 않으셨는지요.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외로움을 감수하더라도 혼자 있는 편을 택하게 되어,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운 분들에게도 이 편지를 보냅니다.
‘애착’이라는 개념은 흔히 부모와 아기 사이에서만 쓰이는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성인 간의 연인 관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인 애착 유형에 따라 “친밀감과 유대감에 대한 시각, 갈등을 극복하는 방식, 섹스에 대한 태도, 자신의 바람과 욕구를 표현하는 방식, 파트너와 관계에 대한 기대치” 등이 달라질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 성인 애착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분들이라면 ‘내 애착 유형은 무엇일까?’ 고민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찾아보신 경험이 있을 텐데요.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 용어나 분류 기준 때문에 오히려 혼란을 느끼셨을 수도 있습니다. 성인 애착 이론은 다양한 하위 모델들이 존재해, 강조하는 차원과 관점에 따라 성인의 대인 관계와 심리적 특성을 여러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고, 논문과 학술서에서 사용하는 번역과 일반화된 번역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며 지지를 받는 모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필립 샤버(Phillip R. Shaver)와 켈리 브레넌(Kelly A. Brennan)이 제안한 ‘불안/회피 2차원 모델’로, 애착 유형을 안정형, 불안형, 회피형, 혼합형으로 나눕니다. 또 다른 하나는 킴 바솔로뮤(Kim Bartholomew)의 ‘자기/타인 긍정-부정 2차원 모델’로, 안정형, 몰두형(집착형), 해방형(무시형), 두려움-회피형(혼란형)으로 분류되지요.
바솔로뮤의 모델은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인식을 다루며, 자존감과 신뢰를 중심으로 연구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연인 관계뿐 아니라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다양한 대인 관계에까지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성인 애착 이론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반면 오늘 집중해서 살펴볼 샤버와 브레넌의 불안/회피 모델은 의존성과 정서적 친밀감이 중요한 연인, 배우자, 데이트 관계에 주로 적용됩니다. 서로를 돌보고 의지하는 특별한 관계의 특성을 설명하기에 특히 적합한 모델이라 할 수 있지요.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성인 애착이 “부모님의 양육 방식뿐 아니라 삶의 경험을 포함한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견해가 점점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성인 애착을 이해할 때 흔히 범할 수 있는 오류 중 하나는 성별에 따라 애착 유형을 단순히 분류하는 것입니다. 남성성을 회피형, 여성성을 불안형과 동일시하는 접근은 경계해야 합니다. 성별을 넘어서 전체 인구의 약 50%는 안정형, 20%는 불안형, 25%는 회피형, 그리고 나머지 5% 이내는 복합형으로 분류되며, 이 중 70~75%는 생애 전반에 걸쳐 같은 애착 유형을 유지하지만, 25~30%는 변화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그 변화의 원인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연애 경험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힘이란 사람에게 관계에 대한 자신의 가장 기본적인 신념이나 태도도
수정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신경과학자인 아미르 레빈(Amir Levine)과 심리학자이자 커플 관계 코치인 레이첼 헬러(Rachel Heller)는 <그들이 그렇게 연애하는 까닭(Attached)>을 통해 애착 이론을 연애에 적용하며, 서로의 애착 유형을 이해함으로써 보다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관계에 대한 자신의 구체적인 욕구를 이해하고, 어떤 유형이 그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핵심 내용을 소개합니다. 2부에서는 불안정한 세 가지 애착 유형을 각각 자세히 살펴보고, 3부에서는 가장 많은 갈등을 겪는 불안형-회피형 커플을 위한 조언을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4부에서는 안정형 애착의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배움으로써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전략을 안내합니다.
“자신의 친밀감에 대한 욕구가 상대방의 독립성과 거리감에 대한 욕구와
조화를 이루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
[...] 그래야만 아직 파트너를 찾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과 친밀감을 원하는 정도가 비슷한 사람을 만 날 수 있을 것이고,
이미 파트너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과 파트너의 욕구가
얼마나 비슷하거나 다른지를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관계를 좀 더 안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첫 번째이자 필수적인 단계다.”
불안형 애착을 가진 분들은 애착 체계가 활성화될 때 경험하는 “불안, 몰두, 집착과 같은 순간적인 희열을 사랑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감정 기복에 압도되지 않고, 활성화된 애착 체계를 사랑이나 열정으로 오인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에게 지극히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감정이기에, 친밀함을 갈망하는 자신을 탓하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저자들은 “자신의 감정적 욕구는 자기가 알아서 책임져야 하며 파트너는 아무런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야말로 관계를 위협할 수 있는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불안형의 애착 체계는 위협을 느끼면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파트너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한다.
반면 회피형은 정반대로 반응한다. 그들의 애착 체계는 위협이 느껴지면 불활성화된다.
파트너와의 거리를 계산하며 애착 체계의 전원을 꺼버린다.
그러므로 불안형이 가까워지려고 할수록 회피형은 더 멀어지려고 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불안형의 활성화된 애착 체계는
회피형의 애착 체계를 더욱 불활성화시킴으로써 악순환을 심화한다.”
한편, 자주 ‘감정적으로 거리 두는 사람’으로 비쳐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회피형 애착의 분들은 실상 가장 고요한 외로움 속에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독립적인 듯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에는 안정적인 관계에 대한 깊은 갈망이 숨어 있지요. 그래서 회피형 애착을 가진 분들 역시, 책에서 전하는 다음의 메시지를 언젠가 떠올려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안정적인 유대감의 이로움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 그리고 “파트너가 안전 기지이자 정서적 지지자가 되어줄 때, 누구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는다”라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파트너의 존재가 나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하는 듯 느껴지더라도, 시간이 지나 서로를 인정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면, “안전지대에서 살아가는 파트너는 지나치게 당신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러면 당신도 파트너를 멀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에 조금은 안심하며 파트너의 곁에 머물러 보셨으면 합니다.
“성인 애착에 관한 기본 전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독립과 행복을 얻는 길은 자신이 의존하고 자신에게 의존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
둘이 함께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저자들이 강조하듯, “애착의 관점에서 보면 연인 관계는 자신감을 북돋아 주고 안정감을 주는 사이어야” 하며, “진정한 연인이란 두 사람 모두가 서로를 꼭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어 하는 사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독자분들의 로맨스가 추격전이 벌어지는 전쟁터가 아니라, 서로의 감정과 욕구를 솔직하게 나누며, 마음이 다정히 기대어 쉴 수 있는 따뜻한 안전 기지를 함께 만들어가는 여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
책을 소개해드리는 [Sincerely yours,] 시리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관점과 추천이 반영된 책을 읽고 싶어 하시는 환자분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며 필요성을 느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편지나 이메일의 끝인사로 사용되는 'Sincerely yours,'는
'진심을 담아' 또는 '당신의 진실한 -로부터'라는 뜻으로
매우 정중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친밀한 사이에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진료실에서 나누는 상담이 가진 기억 지속 시간의 한계를 넘어,
평소에도 소지할 수 있는 문자화된 책을 통해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분들이 원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정신건강을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직접 책을 읽고, 책을 처방해봅니다.
궁금했던 책이나 고민이 있으신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향후에 알맞은 책을 찾아 소개해 드릴게요. 그럼 안녕히 계시고 다음 편지에서 또 뵐게요.
한양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한양대학교 대학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사 졸업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치료 전문과정 이수
전) 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관련기사
- 불안정 애착도 안정애착으로 바뀔 수 있다는 희망, 획득된 안정애착
-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신다고요? 돈 번의 유사성 효과
- ‘냉정과 열정 사이’를 통해 본, 성숙한 사랑 vs 미성숙한 사랑
- [애착 유형] 불안정 애착을 가진 나, 사랑할 수 있을까?
- [Doctor's Mail] 불안정 애착, 바뀌고 싶습니다
- 불안정 애착의 연애와 사랑
- [Sincerely yours,] 사랑하기 무섭고 두려운 분들에게
- [Sincerely yours,] ‘러닝’이 마음에 어떤 힘을 주는지 알고 싶은 분들에게
- [Sincerely yours,] 어젯밤 꿈이 머릿속을 맴도는 분들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