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전 30대 초반 여자입니다. 여태껏 연애를 하면서 느낀 점은 제가 불안감이나 취약한 점이 건드려졌을 때 서운하고 불안하고 화가 나서 그걸 잘 숨기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말없이 꽁해 있거나 혼자서 우울해하거나 짜증을 냅니다. 갈등을 야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걸 제대로 숨기지도 못해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엔 제가 기분이 나빠진 점에 대해 말하다가 이야기가 길어지고, 그게 자주 반복되면 상대가 지치는 듯해요.
그런데 이것 때문에 연인과 많이 헤어져서(이게 원인이라고 저는 추측합니다.) 저의 그런 점이 싫어요. 너무 고치고 싶습니다. 상대방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기분이 상하는데, 이런 걸 어떻게 긍정적으로 소화시킬 수 있을까요?
제 불안감이 건드려지는 지점은 ‘상대방이 이제 날 안 좋아하나?’, ‘날 떠나려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게끔 하는 행동이나 말이에요. 근데 그게 너무 사소해요. 예를 들면, 전화했는데 콜백 안 하고 그냥 카톡으로 답하는 거, 전에는 이렇게 해 줬는데 이제는 안 하네? 하는 생각이 들 때 등등. 이럴 때 막 화가 나요.
생각해 보면 그 행동 자체가 화나는 게 아니라 제 내면에서 ‘이 사람이 이제 나를 안 좋아하나?’까지 생각이 미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근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똑같이 이전처럼 행동하고 헤어지고 다시 불안해지고… 악순환입니다.
불안정 애착 관계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이번에 스스로 인지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하면 이런 불안한 감정이 확 떠오를 때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근본적으로 어떻게 고치면 좋을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 주신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그동안의 연애 히스토리를 곰곰이 되짚어 보는 과정을 통해 이별이 되풀이됐던 이유가 사연자님께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되고, 이를 개선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고민 상담을 신청해 주신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사연자님께서 참으로 용기 있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알고 있거나 어느 정도 인식하더라도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거나 변화하고자 선뜻 용기를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관계에서 비슷한 문제가 생기거나 갈등이 지속될 때조차 초지일관 상대방 탓으로만 일관하며 자기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거나 문제를 회피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럴 때 긍정적인 변화는 요원해지고, 자기 성장과 발전 또한 이루기가 어려워집니다.
물론 그동안 연인과 결별했던 이유가 오로지 사연자님의 문제나 잘못에서 기인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남녀 간의 만남과 이별에는 이성적으로 설명되지도 않고, 납득할 수 없는 부분도 많습니다. 어떤 점이 이별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는지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겪으며 우리는 사랑을 주고받는 행위 속에서 기쁨과 환희를 느끼기도 하고, 아픈 상처가 남기도 합니다. 또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나와 타인, 관계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며 내면적으로 한층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그리고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하며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순간도 마주하게 됩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특히나 연애를 하면서 불안감이나 취약한 점이 건드려졌을 때 ‘서운함’과 ‘불안감’, ‘화’라는 감정을 자주 느끼지만, 막상 이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말없이 꽁해 있거나 짜증으로 표출해 오셨던 듯합니다.
그런데 사연자님께서는 이렇게 불만스러움을 표출하는 것이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갈등을 덜 야기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이러한 생각의 이면에는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안 좋은 것이고, 또 이에 대한 두려움과 갈등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사람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분명 갈등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조금 불편하고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더욱이 연인이나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어느 커플이든 서로 간에 친밀해지는 과정에서, 또 애정을 확인하고, 서로의 욕구와 바람을 채워 주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거나 실망감을 느끼기도 하니까요.
다만 상대와의 관계에서 서운하고 불만족스러운 점이 있을 때는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분출하기에 앞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은 어떤 상태인지 인식해서 명확하게 표현해야 소통의 오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사연에서 예시를 들었던 상황에 대해 한번 살펴볼까요? 사연자님께서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했는데 남자 친구가 전화를 받지 못했고, 이후에 콜백을 하지 않고 카톡으로 답장했을 때 막 화가 난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화가 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감정에는 잘못이 없고 자연스러운 반응이니까요.
그러나 이때의 ‘화’라는 감정을 잘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더 뿌리 깊은 핵심 감정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서 ‘핵심 감정’이란, 한 사람의 행동과 사고, 정서를 지배하는 중심 감정으로, 주로 초기 아동기 경험에 의해, 정서적 영향을 많이 받는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됩니다. ‘화’라는 감정은,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지 못하거나 자주 좌절되었을 때 강하게 일어나는 감정이죠.
사연자님께서 연인과의 관계에서 불안감이나 취약점이 건드려졌을 때 ‘화’나 ‘짜증’이라는 감정이 빈번하게 또 과도하게 올라오는 것이 불안정 애착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 나름의 이유나 성장 배경이 있을 것입니다.
불안정 애착을 형성하는 이유는 다양하고도 복합적입니다. 부모님의 양육 태도가 비일관적이거나, 강압적일 때, 충분한 애정을 보여 주지 않고 방관적인 태도로 일관할 때도 형성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부모님의 양육 태도에 큰 문제가 없음에도 기질적으로 무척 예민한 것이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나 불안정 애착이 형성된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내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애착 유형이 언제까지나 고정되는 것은 아니며,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가까운 사람과 친밀하고 신뢰로운 관계를 경험하며 안정 애착으로 변화가 가능합니다. 그러니 스스로가 불안정 애착인 것 같다며 속상해하고 슬퍼하기보다 앞으로 관계에서 안정적인 경험을 통해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다시 이전의 ‘핵심 감정’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앞선 예시에서 남자 친구분이 콜백을 하지 않고 카톡으로 답했을 때 표면적으로 드러난 감정적 반응은 ‘화’나 ‘짜증’이었지만, 사연자님의 더 깊숙한 내면 안에는 ‘남자 친구의 사랑이 변했다.’거나, ‘이제는 날 떠나려 한다.’는 신호로 인지적인 왜곡을 거쳐서 ‘혼자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불안감, 외로움과 같은 감정이 자극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지적 왜곡이나 핵심 감정을 명확히 인식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남자 친구에게 분노나 짜증을 그대로 분출한다면, 상대는 사연자님이 느끼는 두려움이나 불안감, 외로움과 같은 좀 더 핵심적인 감정에 대한 이해 없이 상대가 나를 비난하고 공격한다고 느껴져 스스로를 방어하는 반응을 보이게 될 확률이 커집니다. 이는 서로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소통의 결여로 인해 오해나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태도는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니 누구나 그 상황에서 느낄 법한 서운함, 불만족감 수준에 적절한 정도로 감정을 말로 표현하시는 연습을 해 보셨으면 합니다. “자기에게 전화했을 때 통화가 안 돼서 서운했는데, 그래서 전화를 기다렸는데 메시지만 와서 좀 서운하더라. 다음부터는 이런 상황에서 전화를 해 주면 덜 서운할 것 같은데.” 정도가 어떨까 싶습니다.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부정적인 감정의 폭탄을 그대로 던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므로 나의 감정과 이를 표현하는 행위에 대한 책임도 나에게 있습니다. 물론 상대가 연인으로서 정말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했다거나 잘못을 했을 때는 당연히 상대에게도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 주어질 것입니다만, 여기서는 딱히 상대가 잘못했다고도 볼 수 없지만, 내가 기분이 상하는 일들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드린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어쨌거나 남자 친구가 단순히 ‘콜백을 하지 않고 카톡으로 답하는 것’에 대해서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까지 생각과 감정이 치닫는 것은 분명 과한 측면이 있습니다. 아마도 사연자님의 핵심 감정이 자극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이번 기회를 통해 스스로의 핵심 감정은 무엇인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것이 사연자님의 일상과 관계,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 행동 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불만스럽거나 바꿔 줬으면 하는 행동이 있을 때는 가능한 한 짧고 명확한 문장으로 전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구구절절 말이 길어지다 보면 이야기가 딴 데로 새거나, 다른 부정적인 감정까지 자극돼 과거에 안 좋았던 일이나 감정까지 끄집어내서 서로의 감정만 더 상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친밀한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신뢰’일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깊은 불안감이 자리할 때 우리는 때로 그 불안감을 상대방에게 투영해 관계를 그르치곤 합니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신뢰감 부족은 ‘당신도 언젠가는 나를 떠나겠지.’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무의식적으로 발동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불안정 애착형은 이렇듯 사람과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이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는 자신에 대한 신뢰감도 포함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와 친밀해지는 과정에서 불안감과 혼란감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느낌은 그 누구도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상대가 나를 떠나거나 또다시 이별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믿지 말아야 할 사람을 믿은 대가로 내가 치러야 할 이별의 아픔이 아니라, 일어날 일이었기에 일어난 일일 뿐이지 않을까요.
다음번 사랑이 찾아올 때는 사연자님 스스로와 상대 연인을 믿고, 생각과 감정을 잘 조절하셔서 좀 더 성숙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어 나가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조언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