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일러스트_freepik
일러스트_freepik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얘기는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양한 만큼 이 질문에 대한 답도 다양할 텐데요. 그럼에도 아마 ‘연애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데는 많은 분이 동의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친밀한 관계에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애착인데요. 어떤 애착유형을 보이는지에 따라 상대방과의 상호작용이 매우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이 연애나 결혼생활 과정에서 자신과 연인 또는 배우자의 애착유형이 무엇인지 관심갖고, 관계에서 겪는 갈등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에 관한 답을 얻고자 합니다.

 애착유형은 크게 안정형과 불안정형으로 나눠집니다. 안정형 애착은 애착 대상에 대한 신뢰와 함께 관계에서 일관적이고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들은 상대방에게 꾸준하고 깊이 있는 애정을 보이며, 관계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적절한 안전거리를 잘 유지합니다. 즉, 친밀하면서도 서로가 독립적인 존재임을 인정하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을 배려하고, 적절한 공감과 위로를 제공합니다. 또, 힘들 때 방어적이거나 상대를 비난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며 성숙한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안정애착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관계에서 비교적 안정감을 가지고 지지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또, 자신과 상대방을 모두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이에 반해 불안정 애착의 경우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어린 시절 애착 대상에게 느꼈던 불안감이나 혼란 등을 경험하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편입니다. 집착형의 경우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상대방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기도 하고, 회피형은 친밀한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으로 지나치게 독립적이거나 가까운 사람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로 인해 상대방은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혹은 ‘내가 노력해도 이 사람과 더는 가까워질 수 없겠구나’하는 무기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혼란형의 경우 가까운 관계에서 혼란과 불안을 모두 경험하면서 가까워지기를 원하면서도 상대방을 밀어내고,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런 불안정 애착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 <옥씨부인전>의 주인공들을 통해서도 애착유형에 따른 관계 패턴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요. 원래 노비 출신이었던 주인공 구덕이와, 구덕이의 여주인과 혼인이 예정되어 있던 양반집 대감마님 아들인 송서인은 우연히 장터에서 마주칩니다. 그리고 첫만남에서 송서인은 구덕이에게 반합니다. 그러나 신분의 차이로 이들은 이어지지 못하고, 오랜 기간에 이어 재회와 아쉬운 이별을 반복합니다. 그 과정에서 남자주인공은 여자주인공에게 함께 떠나자고 이야기하지만, 여자주인공은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이들은 각자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서 부부의 인연을 맺습니다.

 노비 구덕이는 양반 옥태영 아씨가 되어 양반 도령과 혼인했고, 옥씨 부인 마님이 되었습니다. 대감마님의 서자였던 송서인은 집을 나와 전기수(책 읽어주는 사람, 예술인)가 되어 평민천승희로 살다가, 위험에 빠진 옥씨 부인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간 그의 남편 성윤겸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렇게 구덕이는 옥씨 부인이, 천서인은 성윤겸이 되어 오랜 어긋남 끝에 마침내 부부가 됩니다.

 오랜 시간 연모한 옥씨 부인을 위해 성윤겸(천서인)은 최선을 다합니다. 집안을 돌보며 아내의 부담을 덜어주려 하고, 계속해서 ‘가짜 부부’일 뿐이라며 밀어내는 옥씨 부인에게 변함없는 애정과 신뢰를 보여줍니다. 함께 하고 싶으면서도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자꾸 마음과 반대되는 말만 하는 옥씨 부인을 나무라지 않고, 사랑으로 감싸줍니다. 그러면서 언제나 떠나지 않고 곁을 지키겠노라 말합니다. 이런 모습에 옥씨 부인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둘은 어느새 진짜 부부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옥씨 부인은 노비 시절 주인으로부터 모진 학대와 위협을 받았고, 도망치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헤어져 아버지의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늘 언젠가 원래 주인인 소혜 아씨가 추노꾼을 풀어 자신을 잡으리라는 불안감에 편안하게 잠을 이룬 적이 없었습니다. 또, 남편 역시 오랜 기간 집을 떠나 있으면서 혼자 집안을 이끌고 일하며 늘 강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강인하고 독립적인 모습이었지만, 사실 내면에는 늘 불안과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 내면의 약함과 고단함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변함없이 옥씨 부인을 사랑한 송서인은 그의 마음을 모두 헤아리며 안쓰러워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려고 하죠.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불안정 애착을 가진 사람이 친밀한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혼란스러움과 불안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또, 그런 불안과 혼란이 있는 사람이라도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애착을 보여주는 상대방을 통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보게 됩니다. 불안정 애착이라고 언제까지나 친밀한 관계를 피하거나 건강하지 않은 관계 속에 매몰되어 있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옥씨 부인처럼 안정적인 애착의 대상을 만나면서 변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를 전문용어로는 ‘획득된 안정애착(earned secure attachment)’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부분에서 발전과 성숙을 이루어 갑니다. 직업적으로 필요한 기술(skill)을 익히기도 하고,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사회적 기술(social skill)을 기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연애와 사랑, 결혼과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갈등이나 오해를 겪기도 합니다. 또,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며 실망하고 바꾸려고 하지만 잘되지 않는 스스로에게 좌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부족함이 반드시 영원히 이어지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에게 안정감과 신뢰를 줄 수 있는 연인, 배우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언젠가 그 노력이 결실 맺을 수 있지 않을까요? 구덕이었던 옥씨 부인이 송서인이었던 성윤겸을 통해 변화된 것처럼 말이죠. 그러니, 조금 더 희망을 가져봐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전문의 홈 가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