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트라우마’는 교통사고, 폭력, 재난, 소중한 사람의 상실 등 정신과 신체에 깊은 상흔을 남기는 다양한 형태의 사건, 사고들을 말합니다. 트라우마는 단순히 불쾌한 경험을 넘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같이 일상생활에 심각한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트라우마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라고 생각하시지만, 임상 현장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건강한 삶을 되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트라우마 극복의 가능성을 한 환자분의 사례를 통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이 환자분은 중대한 교통사고를 겪은 후 심각한 트라우마 증상에 시달렸습니다. 사고 당시의 충격적인 기억이 계속해서 플래시백으로 떠올랐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며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밤에는 악몽에 시달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으며, 사고와 유사한 상황을 극도로 회피하여 일상생활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직장 생활은 물론, 가까운 지인들과의 만남도 피하게 되면서 사회생활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환자분은 처음에는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극복하려 노력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증상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결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하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습니다. 면담 결과, 환자분은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들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트라우마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스스로 안전하고 지지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첫 단계로 약물 치료를 통해 수면 장애와 불안 증상을 조절하여 환자가 기본적인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항우울제와 불안 완화제를 병행하여 신체적 긴장과 정서적 고통을 완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약물 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후, 인지행동치료(CBT)와 안구 운동 둔감화 및 재처리 요법(EMDR)을 시도했습니다.
이 분은 사고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다른 길로 갔더라면 사고가 안 났을 텐데’하는 생각이 자주 떠오른다고 하셨지요. 인지행동치료(CBT)를 통해 이러한 자동적이고 부정적인 사고를 현실적인 생각으로 재구성하도록 도왔습니다. 또 점진적 노출 기법을 통해 운전석에 앉아보는 것, 짧은 거리의 운전을 시도해보는 것을 조금씩 마주하도록 했습니다. 환자분이 회피했던 상황을 단계적으로 시도하면서 불안감을 줄여나가도록 한 것입니다.
안구 운동 둔감화 및 재처리 요법(EMDR)은 트라우마 기억이 뇌에 저장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데 효과적인 치료 기법입니다. 환자분은 전문의의 지시에 따라 눈을 움직이면서 동시에 트라우마 기억에 집중하는 과정을 통해, 고통스러웠던 사고 기억이 점차 무뎌지고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은 과거의 일로 재처리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플래시백의 빈도와 강도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악몽도 점차 사라졌습니다.
치료가 진행되면서 환자분의 증상은 눈에 띄게 변화했습니다. 불안감 때문에 피했던 사람들과의 만남, 외출 등 일상적인 활동들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특히 가장 힘들었던 운전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하고 이제는 혼자서도 안전하게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트라우마는 한 번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치료 과정을 통해 대처 능력을 키웠기 때문에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트라우마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심리적 요인이 얽혀있는 문제이므로 전문적인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아 극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장승용 원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