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는 살면서 한두 번쯤 마음이 너무 아파 몸까지 쑤시는 듯한 경험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이들은 아픈 몸을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들은 주변의 관심과 돌봄을 받기 위해 거짓으로 질병을 꾸며내거나, 실제로 몸에 해로운 행동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러한 증상을 ‘뮌하우젠 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뮌하우젠 증후군이라는 이름은 1951년 미국 정신과 의사인 리처드 애셔(Richard Asher)가 18세기 독일의 군인이자 관료였던 폰 뮌하우젠 남작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뮌하우젠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은 거짓된 증상을 꾸며내 의료진과 주변 사람들을 속입니다. 이들은 마치 연극 무대의 배우처럼, 실제로는 없는 증상을 호소하며 병원을 전전합니다. 그 과정에서 반복적인 검사와 불필요한 수술을 받기도 합니다.
뮌하우젠 증후군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이 증후군이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양한 원인 중 가장 먼저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은 애정 결핍입니다. 이 증후군을 겪는 이들은 어린 시절 주 양육자로부터 충분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은 아플 때만 비로소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던 경험을 통해 ‘아파야 사랑받을 수 있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하게 됩니다.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지극정성 어린 보살핌, 가족과 친구들의 걱정 섞인 눈빛이 이들에게는 마치 갈증을 해소해 주는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극심한 자존감 저하를 꼽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해 병이라는 수단을 택합니다. 환자라는 역할은 이들에게 일종의 ‘안전지대’를 제공합니다. 환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지 않고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유일한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심한 스트레스, 경계선 인격장애를 비롯한 인격장애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정서적, 신체적 학대 경험이나 심각한 질병 경험, 심하게 아팠던 가족이나 친척이 있었던 경험 등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이 뮌하우젠 증후군을 거짓말을 하는 ‘꾀병’으로 오해하시곤 합니다. 그러나 이 증후군은 환자가 의식적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들은 돈이나 직업적 이익, 군 복무 회피와 같은 외적인 목적이 아니라 오직 주변의 관심과 보살핌이라는 심리적 보상을 얻기 위해 행동합니다.
문제는 이들의 행위가 자기 자신을 해치는 위험한 방식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질병을 가장하기 위해 스스로 상처를 내거나 독극물을 복용하는 등 자신을 해치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혹은 의료 기록을 바꾸거나, 검사 결과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되게끔 하기 위해 임의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합니다. 이는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자신을 속이는 과정에서 오는 심리적 고통까지 감내하게 만듭니다.
만약 주변에 뮌하우젠 증후군이 의심되는 분이 있다면, 여러분께서는 큰 혼란과 당혹감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왜 거짓말을 하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뮌하우젠 증후군을 겪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1. 이들의 행동을 거짓말이나 기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뮌하우젠 증후군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질환입니다.
2. 행동 뒤에 숨겨진 깊은 외로움과 고통에 공감해 주세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라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3. 뮌하우젠 증후군은 정신의학 전문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질환입니다. 스스로 병을 인정하고 치료받으려 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권유하는 것이 좋습니다.
뮌하우젠 증후군은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그 기저에는 아픈 사람 역할을 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느끼는 잘못된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갈구하지만, 적절한 표현 방식을 알지 못하기에 뮌하우젠 증후군으로 그런 욕구가 표출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 이면에는 깊은 외로움과 불안,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뮌하우젠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의 행동을 비난하기보다는, 그가 얼마나 외롭고 사랑을 필요로 하는지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들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들이 더 이상 병이라는 가면 뒤에 숨지 않고, 온전한 자신으로 사랑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장승용 원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